'K드라마' 덕질하던 싱가포르 아줌마의 한국 어드벤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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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영화 '아줌마' 시사회
싱가포르 신예 감독 허슈밍 장편 데뷔작
"한류팬인 어머니 보며 영화 구상"
싱가포르 신예 감독 허슈밍 장편 데뷔작
"한류팬인 어머니 보며 영화 구상"
3년 전 사별한 남편,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 이제는 하나있는 아들마저 미국에서 취직을 하겠다며 자신의 곁을 떠난다고 한다.
58세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 분)는 중년의 전형답게 '공백이 늘어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그를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그가 귀찮게 할 사람도 없지만 일상은 허전하기만 하다. 가족들을 돌보면서 흘려보낸 시간은 그의 젊음도, 직업도 가져가 버렸으니까. 돌볼 대상이 떠난 지금은 시간도 남고, 마음 쓸 곳도 없다.
중년의 고독을 달래주는 건 오직 'K드라마', 그리고 그의 '최애 배우' 한류스타 여진구(여진구 분)다. 영화 초반부 텅 빈 집에서 텔레비전 속 한국어 대사를 어눌하게 따라하는 그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무력한 모습이다. 영화는 림메이화가 한국 여행을 떠나면서 본격화된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터지며 림메이화는 한국에서 길을 잃게 된다. 영화는 혼자가 된 림메이화가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 분)의 도움을 받아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우연찮게 인연을 맺게 된 정수와 림메이화, 그리고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여행 가이드 '권우'(강형석 분),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수와 권우는 림메이화와 다른 시기를 살고있다. '노년기'를 살고있는 정우는 이미 많은 것들을 떠나 보냈고, 그런 삶에 익숙하다. 부인은 오래 전 사별했고, 두 아들은 모두 해외에서 산다. 그의 반려견 두키는 공교롭게도 림메이화를 만난 다음날 세상을 떠난다. 정수는 나름대로 삶의 공백을 메우며 살아가고 있다. 취미활동으로 나무 공예를 하고 경비원 업무를 하면서. 림메이화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귀인이자, 인생 선배인 정수를 보며 고마움과 공감을 느낀다. '떠나보내는 자들'의 연대는 그렇게 형성된다.
반면 '청년기'의 권우는 30대 여행 가이드로, 어린 딸을 키워야하는 아버지다. 그럼에도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등 가정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수가 노년의 적적함을 앓고있다면 권우는 청년의 버거움을 겪고있는 셈이다. 갑작스럽게 이들의 인생에 등장한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 그로인해 이들의 삶도 영향을 받게된다. 강원도 산기슭에 죽은 반려견을 묻으며 슬퍼하던 정수는, 흰 눈을 맞으며 소녀같이 춤 추는 림메이화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권우에게는 사채업자들로부터 구해주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림메이화와 정수는 중간중간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의도치 않은 '썸'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로맨스의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따스하고 소박한 우정을 보여준다.
일상의 권태로움에 지친 아줌마는 이번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남편이 싫어해서 술을 잘 먹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는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었고, 위험에 빠진 권우를 구하기 위해 영화 '분노의 질주' 뺨치는 자동차 추격전을 펼치는 사람이었다. 공허한 눈빛으로 TV를 보던 초반의 무력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소재나 스토리 전개 방식은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년의 외로움은 비교적 흔한 소재다. 하지만 싱가포르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택한 점, 그가 한류팬이라는 점이란 설정은 참신하다. 정수와 림메이화의 탁월한 연기 호흡, 림메이화 역을 맡은 싱가포르 국민 배우 홍휘팡의 사랑스러운 연기는 익숙한 스토리에도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화 아줌마는 싱가포르·한국 합작 영화로 허슈밍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K드라마의 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허 감독은 지난 16일 용산 CGV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고 '아줌마'란 단어의 부정적 뉘앙스를 없앴으면 한다"며 "중년 여성들이 '그래, 나 아줌마야'라며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예 감독을 발굴하는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됐다. 홍휘팡은 제8회 아시아 월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개봉은 오는 29일, 상영 시간은 90분.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58세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 분)는 중년의 전형답게 '공백이 늘어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그를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그가 귀찮게 할 사람도 없지만 일상은 허전하기만 하다. 가족들을 돌보면서 흘려보낸 시간은 그의 젊음도, 직업도 가져가 버렸으니까. 돌볼 대상이 떠난 지금은 시간도 남고, 마음 쓸 곳도 없다.
중년의 고독을 달래주는 건 오직 'K드라마', 그리고 그의 '최애 배우' 한류스타 여진구(여진구 분)다. 영화 초반부 텅 빈 집에서 텔레비전 속 한국어 대사를 어눌하게 따라하는 그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무력한 모습이다. 영화는 림메이화가 한국 여행을 떠나면서 본격화된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터지며 림메이화는 한국에서 길을 잃게 된다. 영화는 혼자가 된 림메이화가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 분)의 도움을 받아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우연찮게 인연을 맺게 된 정수와 림메이화, 그리고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여행 가이드 '권우'(강형석 분),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수와 권우는 림메이화와 다른 시기를 살고있다. '노년기'를 살고있는 정우는 이미 많은 것들을 떠나 보냈고, 그런 삶에 익숙하다. 부인은 오래 전 사별했고, 두 아들은 모두 해외에서 산다. 그의 반려견 두키는 공교롭게도 림메이화를 만난 다음날 세상을 떠난다. 정수는 나름대로 삶의 공백을 메우며 살아가고 있다. 취미활동으로 나무 공예를 하고 경비원 업무를 하면서. 림메이화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귀인이자, 인생 선배인 정수를 보며 고마움과 공감을 느낀다. '떠나보내는 자들'의 연대는 그렇게 형성된다.
반면 '청년기'의 권우는 30대 여행 가이드로, 어린 딸을 키워야하는 아버지다. 그럼에도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등 가정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수가 노년의 적적함을 앓고있다면 권우는 청년의 버거움을 겪고있는 셈이다. 갑작스럽게 이들의 인생에 등장한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 그로인해 이들의 삶도 영향을 받게된다. 강원도 산기슭에 죽은 반려견을 묻으며 슬퍼하던 정수는, 흰 눈을 맞으며 소녀같이 춤 추는 림메이화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권우에게는 사채업자들로부터 구해주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림메이화와 정수는 중간중간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의도치 않은 '썸'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로맨스의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따스하고 소박한 우정을 보여준다.
일상의 권태로움에 지친 아줌마는 이번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남편이 싫어해서 술을 잘 먹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는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었고, 위험에 빠진 권우를 구하기 위해 영화 '분노의 질주' 뺨치는 자동차 추격전을 펼치는 사람이었다. 공허한 눈빛으로 TV를 보던 초반의 무력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소재나 스토리 전개 방식은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년의 외로움은 비교적 흔한 소재다. 하지만 싱가포르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택한 점, 그가 한류팬이라는 점이란 설정은 참신하다. 정수와 림메이화의 탁월한 연기 호흡, 림메이화 역을 맡은 싱가포르 국민 배우 홍휘팡의 사랑스러운 연기는 익숙한 스토리에도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화 아줌마는 싱가포르·한국 합작 영화로 허슈밍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K드라마의 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허 감독은 지난 16일 용산 CGV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고 '아줌마'란 단어의 부정적 뉘앙스를 없앴으면 한다"며 "중년 여성들이 '그래, 나 아줌마야'라며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예 감독을 발굴하는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됐다. 홍휘팡은 제8회 아시아 월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개봉은 오는 29일, 상영 시간은 90분.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