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위대한 예술 '필사본 책'은 구텐베르크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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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새미의 공예의 탄생
미술공예운동 창시자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 탐험기
: 중세 필사본과 켐스콧 출판사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시대, 사물의 소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대상중 하나가 ‘책’이다. 책을 정보로만 취급한다면 디지털 시대에 책의 소멸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저항이 있다. 그 저항의 뿌리는 19세기 영국에서 형성되었다. 책의 사물로서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련의 사건, 그 중심에 미술공예운동의 창시자 윌리엄 모리스가 있었다.
모리스의 중세 필사본 사랑
모리스에게 활자와 필사본, 책은 사물 그 이상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중세 필사본을 수집, 연구했는데, 전문가를 자처할 만큼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1894년 <미술 잡지 Magazine of Art>에 '필사의 시대: 중세 채색 필사본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모리스가 왜 중세 필사본을 핵심적으로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모리스는 이 글에서 필사본 시대에서 인쇄물 시대로 변화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인쇄 기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완벽한 중세 학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12세기 중반에 등장했고, 이들은 능숙한 솜씨로 인간과 동물 혹은 괴물 같은 형상, 식물 장식과 장식 글자를 제작했다는 것이다.1)
1225년 이후로는 독일 책인지, 이탈리아 책인지, 프랑스–영국 책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채색 장식이 더욱 섬세해졌고, 금색이 전반적으로 더 화려해지고 색채도 더 경쾌해졌다고 주장했다. 15세기 말까지 책의 제작에 있어 화공이나 필경사와 구분되는 장식공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데,2) 모리스는 책 안의 그림과 구분되는 채색 장식이 절정에 이른 시기를 13세기 마지막 4분기로 보았으며, 중세 초기의 모든 다른 예술이 사라진다 해도, 오직 장식 필사본만으로도 중세가 위대한 예술의 시대였다고 주장했다.3)
모리스는 15세기 중반 효율성을 증대시켜 줄 기술적 발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자체로는 하찮다 할 발명이 이루어졌다”4) 더 값싼 책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지면서 구텐베르크(J. Gutenberg, 1398~1468)가 어쩌다 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왜 탐탁지 않은 듯 표현했을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민주적인 기술 아닌가. 그런데 모리스는 마치 활자 인쇄술의 발명이 아름다운 필사본의 멸종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산업 사회의 추악함을 치료할 해독제를 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모리스에게 15세기 혁명적 인쇄 기술이 아름다워 보였을 리 없었기 때문일까.
인쇄술은 들불처럼 유럽 전역에 퍼졌고, 곧 필사본은 대부호들의 한갓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만 화려한 그림과 장식을 실은 기도서의 수요가 줄지 않았기 때문에 필경사, 장식공, 채색공 등 필사본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일정 기간 활동을 이어가긴 했지만,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작업에서 예술적 탁월함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결국 1530년경, 필사본은 종말을 맞이했다.
모리스는 스스로 중세 필사본을 수집했고, 복기했다. 모리스가 완성한 원고 중에 절친한 친구 조지아나 번 존스(Georgiana Burne-Jones. 1840~1920)를 위해 만든 책 <A Book of Verse>(1870)가 있다. 모리스가 시와 필사를, 에드워드 번 존스(Sir Edward Coley Burne-Jones, 1833~1898)와 다른 두 예술가가 삽화를 그렸던 공동 작업이었다.
이 책은 모리스가 원본 필사 방법에 대한 이해가 깊을 뿐만 아니라 글 내용에 적합한 장식을 개발하려는데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모리스 상회를 통해 판매를 목적으로 했던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작업이었다. 제조업의 준비 단계이기보다는 열성적인 취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888년 미술공예전시협회 특별 강의
인쇄가 에머리 워커(Emery Walker, 1851~1933)는 1888년 미술공예전시협회(Arts & Crafts Exhibition Society) 전시와 연계해 ‘활자 인쇄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15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판화가 니콜라 장송(Nicolas Jenson, 1420~1480)의5) 초기 인쇄본 사진을 조판으로 제작해 인쇄하는 기술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모리스는 그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그는 중세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워커는 당시 인쇄 기술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조판, 삽화, 사진 인쇄 복제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던 시기, 워커는 1873년 타이포그라픽 에칭 컴퍼니(Typographic Etching Company)에 입사해 사진 네거티브를 사용해 라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인쇄하기 위한 블록 생산 기술을 익혔다.
1886년, 30대 중반의 워커는 회사를 설립하고 포토그라비아 (Photogravure)6)분야의 전문 기술로 명성을 얻었다. 이 사진 제판 기술은 예술 작품과 사진을 책 삽화로 재현하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그림이 있는 잡지, 표지, 예술 작품 등을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모리스는 이러한 워커의 전문 기술에 의지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켐스콧 출판사와 『켐스콧 초서』
모리스는 워커의 강연 3년 후인 1891년, 그의 나이 50대 중반에 켐스콧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미 모리스 상회를 운영하고 있었고, 사업이 번창하는 가운데 새 도전을 한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일반인의 문해력이 향상되면서 독서 자료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품질이 조악했다. 인쇄 공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숙련공을 고용하지 않았고, 저가의 용지와 잉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켐스콧 출판사는 품질에 있어 타협하지 않았다. 모리스는 ‘분명하게 아름다움을 주장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켐스콧의 목표로 삼았다. 출판사의 존속 기간 1891년부터 1898년까지 7년 동안 모리스는 53종 66권의 책을 200~500부 한정으로 출간했다. 여기에는 모리스의 저작 26권과 그가 번역한 책 3권, 셰익스피어, 키츠 등 시집 16권, 그리고 존 러스킨의 <고딕의 본질 The Nature of Gothic> (1892) 등이 포함된다. 모리스는 맞춤형 서체인 초서 서체(Chaucer Type), 트로이 서체(Troy Type), 골든 서체(Golden Type) 등의 서체를 디자인했고, 머리글자의 장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표지 디자인과 장정 방식에도 장인적 기술의 완벽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고딕의 본질>의 경우, 15세기 인쇄가 니콜라 장송의 서체에서 영감을 받아 모리스가 디자인한 골든 서체를 적용했고, 수제 종이에 수제 인쇄기로 인쇄했다. 원래 러스킨이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쓴 논문 3부작이었던 <베니스의 돌 The Stones of Venice>의 두 번째 장이었던 <고딕의 본질>은 켐스콧에서 다시 출판됨으로써 미술공예운동의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책의 인쇄에는 1891년 런던에서 제작된 철제 수동 앨비온 인쇄기 No. 6551 (Hopkinson & Cope Improved Albion Press No. 6551)을 사용했다.
켐스콧의 대표작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켐스콧 초서> The Kelmscott Chaucer』이다. 이 책은 영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 Tales of Canterbury>를 모리스의 방식으로 제작한 결과였다. 1387년 시작하여 1400년 초서의 사망으로 중단된 <캔터베리 이야기>는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이야기책으로 당시의 생활, 문화를 거울처럼 반영하기에 중요하지만7) 모리스에게 초서는 중세로 가기 위한 문과 같은 존재였다. <켐스콧 초서>를 위해 모리스는 초서 서체를 디자인했고, 화가 번 존스의 문학적인 87점의 삽화가 더해졌다.
1896년에 425부로 한정 인쇄된 <켐스콧 초서>의 제작 기간은 4년이며, 크기 가로 28cm 세로 44cm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디자인은 중세 필사본의 특징을 참고했으며, 서체, 여백의 사용, 이니셜과 테두리 장식, 종이의 품질까지도 중세의 감성을 반영했다. 또한 첫 페이지에서 익숙한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모리스 상회에서 제작했던 벽지와 유사한 패턴을 책 장식 패턴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특별 가죽 장정본은 에머리 워커가 운영했던 도브 제본사(Dove Bindery)에서 진행했는데, 48권만 제작했다. 모리스는 워커로부터 종이, 잉크, 서체 디자인 및 인쇄술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언 받았다. 까칠하고 두툼한 종이의 감촉, 그 종이에 흡수된 풍요로운 먹색의 촉감은 책이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번 존스는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찰스 엘리엇 노던(Charles Eliot Norton)에게 보낸 편지에 <켐스콧 초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서 실제로 책을 완성한다면, 이 책은 소형 대성당과 같을 것입니다. 풍부한 디자인의 이 책, 모리스는 세계 최고의 장식 대가라고 생각합니다.”8)
모리스는 산업혁명 시대, 낭만적인 사회주의자였고, 15세기 필사본의 19세기적 재해석을 통해 중세적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모리스에게 책은 과거의 공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사물이어야 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은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실천으로 귀결되었다.
모리스는 "자존심을 유지하며 적절한 안락함에서 좋은 집과 좋은 책을 즐기는 것이 모든 인류 사회가 이제 투쟁해야 할 즐거운 목표인 것 같다"9) 라고 주장했다. 모리스가 믿었던 유토피아로의 길에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집만큼 핵심적 요소였다. 이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23년 현재 책은 디지털 정보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종이책이 E-Book으로 전환되는 시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글을 쓰고, 디지털 정보량이 폭증하는 시대에 모리스의 중세 필사본의 맥락을 잇는 책 만드는 노력은 신기루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남아있는가? 그리고 그곳에 ‘아름다운 책’이 있는가?
1)윌리엄 모리스, 정소영 옮김, 「필사의 시대, 중세 채색 필사본에 대한 단상」 in: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 온다프레스, 2021 [1894], p. 150.
2)ibid., p. 152.
3)ibid., p. 153.
4)ibid., p. 157.
5)장송은 1470년 베니스에서 인쇄소를 열어 약 150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1477년에 이르러는 12대의 인쇄기를 동시에 작동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6)Photogravure는 요판 판화 또는 광기계적 공정으로 동판에 패턴 추가한 다음 필름 포지티브에 노출된 감광성 젤라틴 조직으로 코팅한 다음 에칭하여 결과를 얻는다. 사진의 섬세한 톤을 연속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고품질 음각판 제작 기술로 영국 기술자 탈봇(Henry Fox Talbot)의 연구를 기반으로 체코 화가 카렐 클리치(Karel Klíč)가 1878년 개발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이 기술을 탈보 클리치 프로세스(Talbot-Klič process)라고 한다. 높은 품질과 풍부한 표현력 덕분에 포토그라비아는 판화와 그림의 작품 사진 복제에 사용되었다.
https://hmn.wiki/ko/Photogravure
7)이 책은 대주교 토머스 베켓의 성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여관에서 만난 30명의 순례자 중 21명이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호사, 의사, 신부, 상인, 선장, 상인, 기사, 요리사, 방앗간 주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순례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모였기에 음탕한 것에서부터 도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유머와 리듬감, 생생한 묘사가 특징적이다.
8)https://exhibitions.lib.umd.edu/williammorris/kelmscott-press/the-kelmscott-chaucer [접속일: 2023년 11월 16일]
9)‘Some Notes on the Illuminated Books of the Middle Ages’, Magazine of Arts, Jan, 1894.
: 중세 필사본과 켐스콧 출판사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시대, 사물의 소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대상중 하나가 ‘책’이다. 책을 정보로만 취급한다면 디지털 시대에 책의 소멸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저항이 있다. 그 저항의 뿌리는 19세기 영국에서 형성되었다. 책의 사물로서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련의 사건, 그 중심에 미술공예운동의 창시자 윌리엄 모리스가 있었다.
모리스의 중세 필사본 사랑
모리스에게 활자와 필사본, 책은 사물 그 이상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중세 필사본을 수집, 연구했는데, 전문가를 자처할 만큼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1894년 <미술 잡지 Magazine of Art>에 '필사의 시대: 중세 채색 필사본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모리스가 왜 중세 필사본을 핵심적으로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림 1>
모리스는 이 글에서 필사본 시대에서 인쇄물 시대로 변화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인쇄 기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완벽한 중세 학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12세기 중반에 등장했고, 이들은 능숙한 솜씨로 인간과 동물 혹은 괴물 같은 형상, 식물 장식과 장식 글자를 제작했다는 것이다.1)
1225년 이후로는 독일 책인지, 이탈리아 책인지, 프랑스–영국 책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채색 장식이 더욱 섬세해졌고, 금색이 전반적으로 더 화려해지고 색채도 더 경쾌해졌다고 주장했다. 15세기 말까지 책의 제작에 있어 화공이나 필경사와 구분되는 장식공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데,2) 모리스는 책 안의 그림과 구분되는 채색 장식이 절정에 이른 시기를 13세기 마지막 4분기로 보았으며, 중세 초기의 모든 다른 예술이 사라진다 해도, 오직 장식 필사본만으로도 중세가 위대한 예술의 시대였다고 주장했다.3)
모리스는 15세기 중반 효율성을 증대시켜 줄 기술적 발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자체로는 하찮다 할 발명이 이루어졌다”4) 더 값싼 책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지면서 구텐베르크(J. Gutenberg, 1398~1468)가 어쩌다 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왜 탐탁지 않은 듯 표현했을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민주적인 기술 아닌가. 그런데 모리스는 마치 활자 인쇄술의 발명이 아름다운 필사본의 멸종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산업 사회의 추악함을 치료할 해독제를 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모리스에게 15세기 혁명적 인쇄 기술이 아름다워 보였을 리 없었기 때문일까.
인쇄술은 들불처럼 유럽 전역에 퍼졌고, 곧 필사본은 대부호들의 한갓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만 화려한 그림과 장식을 실은 기도서의 수요가 줄지 않았기 때문에 필경사, 장식공, 채색공 등 필사본을 제작하는 장인들이 일정 기간 활동을 이어가긴 했지만,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작업에서 예술적 탁월함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결국 1530년경, 필사본은 종말을 맞이했다.
<그림 2>
모리스는 스스로 중세 필사본을 수집했고, 복기했다. 모리스가 완성한 원고 중에 절친한 친구 조지아나 번 존스(Georgiana Burne-Jones. 1840~1920)를 위해 만든 책 <A Book of Verse>(1870)가 있다. 모리스가 시와 필사를, 에드워드 번 존스(Sir Edward Coley Burne-Jones, 1833~1898)와 다른 두 예술가가 삽화를 그렸던 공동 작업이었다.
이 책은 모리스가 원본 필사 방법에 대한 이해가 깊을 뿐만 아니라 글 내용에 적합한 장식을 개발하려는데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모리스 상회를 통해 판매를 목적으로 했던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작업이었다. 제조업의 준비 단계이기보다는 열성적인 취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888년 미술공예전시협회 특별 강의
인쇄가 에머리 워커(Emery Walker, 1851~1933)는 1888년 미술공예전시협회(Arts & Crafts Exhibition Society) 전시와 연계해 ‘활자 인쇄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15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판화가 니콜라 장송(Nicolas Jenson, 1420~1480)의5) 초기 인쇄본 사진을 조판으로 제작해 인쇄하는 기술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모리스는 그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그는 중세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워커는 당시 인쇄 기술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조판, 삽화, 사진 인쇄 복제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던 시기, 워커는 1873년 타이포그라픽 에칭 컴퍼니(Typographic Etching Company)에 입사해 사진 네거티브를 사용해 라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인쇄하기 위한 블록 생산 기술을 익혔다.
1886년, 30대 중반의 워커는 회사를 설립하고 포토그라비아 (Photogravure)6)분야의 전문 기술로 명성을 얻었다. 이 사진 제판 기술은 예술 작품과 사진을 책 삽화로 재현하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그림이 있는 잡지, 표지, 예술 작품 등을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모리스는 이러한 워커의 전문 기술에 의지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켐스콧 출판사와 『켐스콧 초서』
모리스는 워커의 강연 3년 후인 1891년, 그의 나이 50대 중반에 켐스콧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미 모리스 상회를 운영하고 있었고, 사업이 번창하는 가운데 새 도전을 한 것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일반인의 문해력이 향상되면서 독서 자료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지만 안타깝게도 품질이 조악했다. 인쇄 공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숙련공을 고용하지 않았고, 저가의 용지와 잉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림 3>
켐스콧 출판사는 품질에 있어 타협하지 않았다. 모리스는 ‘분명하게 아름다움을 주장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켐스콧의 목표로 삼았다. 출판사의 존속 기간 1891년부터 1898년까지 7년 동안 모리스는 53종 66권의 책을 200~500부 한정으로 출간했다. 여기에는 모리스의 저작 26권과 그가 번역한 책 3권, 셰익스피어, 키츠 등 시집 16권, 그리고 존 러스킨의 <고딕의 본질 The Nature of Gothic> (1892) 등이 포함된다. 모리스는 맞춤형 서체인 초서 서체(Chaucer Type), 트로이 서체(Troy Type), 골든 서체(Golden Type) 등의 서체를 디자인했고, 머리글자의 장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표지 디자인과 장정 방식에도 장인적 기술의 완벽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고딕의 본질>의 경우, 15세기 인쇄가 니콜라 장송의 서체에서 영감을 받아 모리스가 디자인한 골든 서체를 적용했고, 수제 종이에 수제 인쇄기로 인쇄했다. 원래 러스킨이 1851년부터 1853년까지 쓴 논문 3부작이었던 <베니스의 돌 The Stones of Venice>의 두 번째 장이었던 <고딕의 본질>은 켐스콧에서 다시 출판됨으로써 미술공예운동의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책의 인쇄에는 1891년 런던에서 제작된 철제 수동 앨비온 인쇄기 No. 6551 (Hopkinson & Cope Improved Albion Press No. 6551)을 사용했다.
<그림 4>
켐스콧의 대표작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켐스콧 초서> The Kelmscott Chaucer』이다. 이 책은 영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 Tales of Canterbury>를 모리스의 방식으로 제작한 결과였다. 1387년 시작하여 1400년 초서의 사망으로 중단된 <캔터베리 이야기>는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이야기책으로 당시의 생활, 문화를 거울처럼 반영하기에 중요하지만7) 모리스에게 초서는 중세로 가기 위한 문과 같은 존재였다. <켐스콧 초서>를 위해 모리스는 초서 서체를 디자인했고, 화가 번 존스의 문학적인 87점의 삽화가 더해졌다.
<그림 5>
1896년에 425부로 한정 인쇄된 <켐스콧 초서>의 제작 기간은 4년이며, 크기 가로 28cm 세로 44cm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디자인은 중세 필사본의 특징을 참고했으며, 서체, 여백의 사용, 이니셜과 테두리 장식, 종이의 품질까지도 중세의 감성을 반영했다. 또한 첫 페이지에서 익숙한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모리스 상회에서 제작했던 벽지와 유사한 패턴을 책 장식 패턴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특별 가죽 장정본은 에머리 워커가 운영했던 도브 제본사(Dove Bindery)에서 진행했는데, 48권만 제작했다. 모리스는 워커로부터 종이, 잉크, 서체 디자인 및 인쇄술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언 받았다. 까칠하고 두툼한 종이의 감촉, 그 종이에 흡수된 풍요로운 먹색의 촉감은 책이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 6>
번 존스는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찰스 엘리엇 노던(Charles Eliot Norton)에게 보낸 편지에 <켐스콧 초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서 실제로 책을 완성한다면, 이 책은 소형 대성당과 같을 것입니다. 풍부한 디자인의 이 책, 모리스는 세계 최고의 장식 대가라고 생각합니다.”8)
<그림 7>
모리스는 산업혁명 시대, 낭만적인 사회주의자였고, 15세기 필사본의 19세기적 재해석을 통해 중세적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모리스에게 책은 과거의 공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사물이어야 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은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실천으로 귀결되었다.
모리스는 "자존심을 유지하며 적절한 안락함에서 좋은 집과 좋은 책을 즐기는 것이 모든 인류 사회가 이제 투쟁해야 할 즐거운 목표인 것 같다"9) 라고 주장했다. 모리스가 믿었던 유토피아로의 길에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집만큼 핵심적 요소였다. 이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23년 현재 책은 디지털 정보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종이책이 E-Book으로 전환되는 시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글을 쓰고, 디지털 정보량이 폭증하는 시대에 모리스의 중세 필사본의 맥락을 잇는 책 만드는 노력은 신기루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남아있는가? 그리고 그곳에 ‘아름다운 책’이 있는가?
1)윌리엄 모리스, 정소영 옮김, 「필사의 시대, 중세 채색 필사본에 대한 단상」 in: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 온다프레스, 2021 [1894], p. 150.
2)ibid., p. 152.
3)ibid., p. 153.
4)ibid., p. 157.
5)장송은 1470년 베니스에서 인쇄소를 열어 약 150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1477년에 이르러는 12대의 인쇄기를 동시에 작동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6)Photogravure는 요판 판화 또는 광기계적 공정으로 동판에 패턴 추가한 다음 필름 포지티브에 노출된 감광성 젤라틴 조직으로 코팅한 다음 에칭하여 결과를 얻는다. 사진의 섬세한 톤을 연속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고품질 음각판 제작 기술로 영국 기술자 탈봇(Henry Fox Talbot)의 연구를 기반으로 체코 화가 카렐 클리치(Karel Klíč)가 1878년 개발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이 기술을 탈보 클리치 프로세스(Talbot-Klič process)라고 한다. 높은 품질과 풍부한 표현력 덕분에 포토그라비아는 판화와 그림의 작품 사진 복제에 사용되었다.
https://hmn.wiki/ko/Photogravure
7)이 책은 대주교 토머스 베켓의 성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여관에서 만난 30명의 순례자 중 21명이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호사, 의사, 신부, 상인, 선장, 상인, 기사, 요리사, 방앗간 주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순례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모였기에 음탕한 것에서부터 도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유머와 리듬감, 생생한 묘사가 특징적이다.
8)https://exhibitions.lib.umd.edu/williammorris/kelmscott-press/the-kelmscott-chaucer [접속일: 2023년 11월 16일]
9)‘Some Notes on the Illuminated Books of the Middle Ages’, Magazine of Arts, Jan, 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