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선례가 없어서 안 돼요"…테슬라에선 못 듣는 소리
애플과 테슬라에는 신입사원 교육이 없다. 바로 업무에 투입한다. 상사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도 없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실현해야 할 ‘목표’만 주어질 뿐이다. 모든 직원은 최고경영자(CEO)처럼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나는 테슬라에서 인생 주행법을 배웠다>는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한 한국인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 박규하는 ‘토종 국내파’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예일대 MBA(경영학 석사) 유학을 계기로 애플과 테슬라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가 배터리 공급망 관리자로 일했던 테슬라는 모든 게 도전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상품인 전기차를 전 세계에 팔아야 했고, 네바다사막에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지어야 했다. 그만큼 더 역동적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강조하는 ‘제1원칙 사고’는 테슬라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의 뼈대가 된다.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기존의 관습이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근본적인 원리부터 다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남들보다 조금만 더 잘하자’가 아니라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자’라는 마인드로 일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국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비교하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에선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면 실무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새 없이 그대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 답답함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의견을 내면 관련 부서에서 ‘이 디자인은 설계해보지 않아서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견적은 내본 적이 없어서 가격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같은 ‘안 되는 이유’를 들이밀며 반대할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미국 직장 생활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번아웃’을 겪을 위험이 크다. 언제 어떻게 일하든 터치를 안 하지만, 그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일과 삶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기도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번아웃이 찾아온다”며 “본인이 능동적으로 워라밸을 설계할 자신이 없다면 한국의 사원증 태그 문화가 더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 유학이나 취직을 꿈꾸는 사람들, 실리콘밸리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은 기업인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