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명이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주연처럼 빛난 조연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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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립심포니 정기연주회
35년 만에 국내서 두번째 초연,
베를리오즈 '로미오와 줄리엣'
라일란트, 명확한 지휘로 곡 살려
클라이맥스는 다소 아쉬움 남아…
35년 만에 국내서 두번째 초연,
베를리오즈 '로미오와 줄리엣'
라일란트, 명확한 지휘로 곡 살려
클라이맥스는 다소 아쉬움 남아…
합창단을 포함해 170명에 달하는 연주자들이 오페라 같은 장엄한 장면을 연출했다.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선보인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1시간 30분이 넘는 장대한 러닝타임 끝에 큰 보상을 받았다.
은발의 바리톤 에드윈 C. 머서는 로렌스 수사 역할을 맡아 분쟁 끝에 두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몬테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에 일침을 가하며 화합의 마무리를 이끌었다. 연극, 오라토리오, 교향곡, 오페라가 합쳐져 신종 교향곡을 형성한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88년 KBS 교향악단의 초연 이후 그간 전곡 연주가 없다시피 했던 곡이다. 일견 난해하게 보일 수도 있는 대곡을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는 활기차고 명확한 연주로 이끌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의 조연과도 같은 합창단을 잘 운영한 게 돋보였다. 이 곡은 중요한 장면을 모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합창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합창 교향곡과는 그 결이 다르다. 심지어 성악진에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곡가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 언어로 표현되는 노래보다는 상징과 추상의 세계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부의 두 가문간 전투를 묘사한 오케스트라의 전주곡 이후 13명 정도의 합창단과 메조소프라노, 테너 독창자가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트레일러처럼 선보이는 역할을 했다. 합창단이 합창석에 미리 앉아 있는 대신 소수의 인원이 등장해 교향곡의 충실한 해설자를 자청한 것이다.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는 깊은 흉성과 정성스러운 프랑스어 딕션으로 인상 깊은 가창을 선보였고 테너 문세훈은 익살스러운 노래로 로미오의 유쾌한 친구 머큐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부의 홀로 있는 로미오와 이어지는 캐퓰릿가의 연회는 짜임새 있는 해석과 활력 있는 연주로 훌륭한 ‘느낌표’를 선사했다. 이날 공연 중 가장 들썩이는 연주로 관객에게 기분 좋은 흥분을 전달했으며 무도회가 무르익을 무렵 중간에 합창단이 입장해 합창석에 착석하는 것도 좋은 시각적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교향곡 전곡의 핵심이자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장면에서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불타오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로미오의 간청과도 같은 첼로의 울림에는 노래적인 요소인 칸타빌레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고 발코니 장면의 정열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 현은 농염함이 부족했다.
2부의 마지막 곡이자 전곡 가운데 오케스트라의 명인기를 뽐내는 스케르초인 ‘맵 여왕’은 비교적 매끄럽게 연주됐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수석주자부터 제3주자까지 번갈아하는 호른 솔로가 난도 높은 것으로 악명 높은데 몇 군데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연주했다. 다만 중간에 플루트와 잉글리시 호른의 나른한 악구에서 프랑스적이라 할 수 있는 고혹적인 뉘앙스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부족한 프랑스적 에스프리(프랑스인 특유의 자존심)는 합창단의 노래 전반에서도 그랬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격정적인 연주가 어우러진 3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죽음 장면을 거쳐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연상하게 하는 대망의 종결부가 왔다. 바리톤 독창은 단순히 노래를 하는 차원을 넘어 합창석으로 몸을 돌려 꾸짖는 듯한 연기를 곁들여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조금 더 성량이 쩌렁쩌렁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성악가의 나이와 로렌스 수사역임을 고려할 때 사소한 투정에 불과하다.
총평을 하자면 디테일에 있어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의 명쾌한 진행과 이에 부응하는 연주자들의 호연이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에, 지휘자는 비제의 '카르멘' 1막 전주곡을 앙코르로 화답했다. 느닷없는 심벌즈의 찬란한 울림에 객석은 술렁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대중적인 가락에 청중들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베를리오즈의 도전적인 대곡에 과연 '카르멘' 전주곡 같은 앙코르가 필요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2023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정기연주회에 즐거운 마무리를 선사한 것만큼은 확실했다.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
은발의 바리톤 에드윈 C. 머서는 로렌스 수사 역할을 맡아 분쟁 끝에 두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몬테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에 일침을 가하며 화합의 마무리를 이끌었다. 연극, 오라토리오, 교향곡, 오페라가 합쳐져 신종 교향곡을 형성한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88년 KBS 교향악단의 초연 이후 그간 전곡 연주가 없다시피 했던 곡이다. 일견 난해하게 보일 수도 있는 대곡을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는 활기차고 명확한 연주로 이끌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이 교향곡의 조연과도 같은 합창단을 잘 운영한 게 돋보였다. 이 곡은 중요한 장면을 모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합창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합창 교향곡과는 그 결이 다르다. 심지어 성악진에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곡가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 언어로 표현되는 노래보다는 상징과 추상의 세계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부의 두 가문간 전투를 묘사한 오케스트라의 전주곡 이후 13명 정도의 합창단과 메조소프라노, 테너 독창자가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트레일러처럼 선보이는 역할을 했다. 합창단이 합창석에 미리 앉아 있는 대신 소수의 인원이 등장해 교향곡의 충실한 해설자를 자청한 것이다.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는 깊은 흉성과 정성스러운 프랑스어 딕션으로 인상 깊은 가창을 선보였고 테너 문세훈은 익살스러운 노래로 로미오의 유쾌한 친구 머큐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부의 홀로 있는 로미오와 이어지는 캐퓰릿가의 연회는 짜임새 있는 해석과 활력 있는 연주로 훌륭한 ‘느낌표’를 선사했다. 이날 공연 중 가장 들썩이는 연주로 관객에게 기분 좋은 흥분을 전달했으며 무도회가 무르익을 무렵 중간에 합창단이 입장해 합창석에 착석하는 것도 좋은 시각적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교향곡 전곡의 핵심이자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장면에서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불타오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로미오의 간청과도 같은 첼로의 울림에는 노래적인 요소인 칸타빌레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고 발코니 장면의 정열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 현은 농염함이 부족했다.
2부의 마지막 곡이자 전곡 가운데 오케스트라의 명인기를 뽐내는 스케르초인 ‘맵 여왕’은 비교적 매끄럽게 연주됐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수석주자부터 제3주자까지 번갈아하는 호른 솔로가 난도 높은 것으로 악명 높은데 몇 군데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연주했다. 다만 중간에 플루트와 잉글리시 호른의 나른한 악구에서 프랑스적이라 할 수 있는 고혹적인 뉘앙스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부족한 프랑스적 에스프리(프랑스인 특유의 자존심)는 합창단의 노래 전반에서도 그랬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격정적인 연주가 어우러진 3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죽음 장면을 거쳐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연상하게 하는 대망의 종결부가 왔다. 바리톤 독창은 단순히 노래를 하는 차원을 넘어 합창석으로 몸을 돌려 꾸짖는 듯한 연기를 곁들여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조금 더 성량이 쩌렁쩌렁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성악가의 나이와 로렌스 수사역임을 고려할 때 사소한 투정에 불과하다.
총평을 하자면 디테일에 있어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의 명쾌한 진행과 이에 부응하는 연주자들의 호연이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에, 지휘자는 비제의 '카르멘' 1막 전주곡을 앙코르로 화답했다. 느닷없는 심벌즈의 찬란한 울림에 객석은 술렁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대중적인 가락에 청중들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베를리오즈의 도전적인 대곡에 과연 '카르멘' 전주곡 같은 앙코르가 필요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2023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정기연주회에 즐거운 마무리를 선사한 것만큼은 확실했다.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