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팀·피플앤컬처팀·탤런트팀… 인사팀 명칭을 보면 조직문화가 보인다
한 유명 가수가 이름을 바꿨다. 널리 알려진 가명 대신 자신의 원래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데 기존에 쓰던 이름이 선입견을 주는 걸 원치 않아서라는 게 개명 이유다. 이유야 어찌됐건 새로 발표한 앨범은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이름을 바꾼 덕을 본 셈일까.

인사 분야 리네이밍(renaming)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인사부서 명칭을 ‘피플팀’으로 변경했다. 인사부서 명칭에 '인사'라는 단어를 뺀 것이 창립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SK그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사부문 이름이 ‘기업문화실‘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이보다 훨씬 다채롭다. 피플팀, 컬처팀 외에 피플랩, 피플부스터팀, HR플래닛팀, 성장관리팀, Experience 디자인팀, Human Relation팀, 공간문화팀 등 인사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인사의 이름은 오랜 기간 논쟁의 여지없이 ‘인사(人事)’였다. 영어로는 HRM(Human Resource Management), 줄여서 HR로 통칭되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왜, 요즘 들어 이렇게 다양한 인사부서 이름이 등장하는 걸까?

인사 기능의 태동기인 산업혁명 초기, 인사는 주로 퍼스널 어드민(Personnel Administration)으로 불렸다. ‘직원 행정관리' 정도로 풀이된다. 당시에는 근로자를 단순 노동력 또는 비용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이에 오류없는 급여지급, 최소한의 직업훈련, 생산성을 높이는 근로환경 등에 초점을 둔 일상적 행정처리가 인사업무의 주를 이뤘다. 인사업무는 근로자를 책임지는 현장관리자의 전반적 관리, 즉 총무성 업무의 일부로 인식되던 시기다.

1940년대 이르러 HR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시장은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로 넘쳐났다. 문제는 이들의 업무능력이 천차만별이라는 데 있었다. 이에 넘쳐나는 노동력 중 업무능력이 우수한 사람을 가려내는 게 중요해진다. 인사업무는 단순 노동력 관리가 아니라 사람을 선별적으로 채용·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사람을 차별적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인식하며 ‘인적자원’이란 용어가 널리 확산된다.

그런데 1960년대에 들어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인적자원이란 명칭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의문이었다. 자원은 인간생활과 경제활동에 사용되는 광물, 산림, 수산물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경영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원료 또는 그 정도 가치의 등가물이다. 이 지점에서 드는 문제의식이, 사람은 기계나 광물처럼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소모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쓸모가 없어지면 처분해도 되는 대상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을 일반적인 자원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된다. 이러한 관점은 곧, 사람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인적자산(Human Capital)‘이란 용어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자원이냐 자산이냐 논쟁은 치열하게 이어지진 않았다. 어떤 명칭을 쓰든 인사가 제공하는 가치에는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적자산이란 용어가 간혹 쓰이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 조직에서 인사를 대표하는 용어로 인적자원, 즉 HR이 자리잡은 모습이다.

이름 붙이기 논쟁의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HR 리네이밍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인사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변화로 해석된다. 인사의 이름을 바꾸는 기업들은 과연 어떠한 서비스와 기능으로 변모하려는 것일까? 국내외 사례를 통해 이들이 지향하는 인사의 가치를 유추해 보자.

HR 리네이밍 유형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사람‘을 강조하는 유형이다. 피플(People)팀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삼성전자, 우아한 형제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구성원을 소모되는 자원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인사 서비스를 구성원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구성원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이들의 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구성원 중심 인사를 표방한다.

다음은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유형이다. 이케아코리아는 사람을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여기고 더 나은 조직문화와 일터를 만들고자 애쓴다. 그래서 인사부서 이름은 피플앤컬처(People & Culture)팀이다. 컬쳐를 인사부서 명칭으로 쓰는 기업들은 구성원이 업무에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더불어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인사운영에 힘쓴다.

세번째는 ‘인재‘를 강조하는 유형이다. 컨설팅기업 EY의 인사부서 이름은 탤런트(Talent)팀이다. 여러 분야 전문컨설턴트가 활약하는 조직인 만큼, 인재가 곧 핵심경쟁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에 우수한 역량의 인재영입에 많은 공을 들인다. 조직에 들어온 이후에는 인재가 보유한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사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메타, 넷플릭스, 어도비 등도 인사부서 이름으로 탤런트를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직원경험‘을 강조하는 유형이다. 직장, 이제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장을 삶의 일부로 바라본다. 조직 안에서 삶의 행복감을 느낄 때 자발적으로 일에 몰입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구성원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긍정적 직원경험을 높이고자 힘쓰는 기업이 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인사 기능을 직원경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HR본부를 EX(Employee Experience)본부로 변경했다. 아마존과 에어비앤비 역시 인사부서를 EX팀이라 부르며 직원경험을 강조하는 인사운영을 펼친다.

HR 리네이밍 물결은, 이름 갈아 끼우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사는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그 답을 찾는 여정의 산물이다. 이름 바꾸기로 대중의 이목은 충분히 끈 듯 하다. 이제 리네이밍을 뛰어넘는 리브랜딩(rebranding)으로 인사의 진정한 가치를 고민할 차례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 HR컨설팅 서비스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