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 지원 빼면 '만성 적자' 건강보험…'아묻따' 1.4조 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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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복지위, 내년 건보 국고 지원 예산 대거 증액
2007년 도입된 지원 규정, 정치권 압박에 2027년까지 연장
지출 규모 관계 없이 건보 수입액의 20%까지 자동 예산 투입
올해 1조3000억원 흑자 예상 건보...국고지원 빼면 10조 적자
OECD "정부, 국회가 지출 통제 못하는데 예산 자동 투입은 비정상적"
보사연 " 수입에 지출 맞추는 식으로 재정 체계 개편해야"
2007년 도입된 지원 규정, 정치권 압박에 2027년까지 연장
지출 규모 관계 없이 건보 수입액의 20%까지 자동 예산 투입
올해 1조3000억원 흑자 예상 건보...국고지원 빼면 10조 적자
OECD "정부, 국회가 지출 통제 못하는데 예산 자동 투입은 비정상적"
보사연 " 수입에 지출 맞추는 식으로 재정 체계 개편해야"
정치권이 만성화된 건강보험 수지 적자를 메꾸는데 국고 1조5000억원을 추가 투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국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내년도 건강보험료를 7년 만에 동결하면서 그 대신 국고 지원 예산을 1조4000억원 가량 늘렸음에도 추가 증액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국회 요구분을 포함한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규모는 14조원에 달한다.
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은 2007년 한시 조항으로 도입됐으나 4차례 일몰 연장으로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3000만명이 넘는 국민들로부터 소득의 7%가 넘는 보험료를 걷으면서도 건보는 국고 지원을 빼면 매년 조단위 적자를 보고 있다. 고령화와 함께 폭증하는 건보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2007년 이후 당해 건보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한 국고지원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와 국민건강증진법 부칙 제2항에 따라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를 국고(14%)와 건강증진기금(6%) 재원으로 지원한다. 20%는 정부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의무는 아니다. 관련법엔 '예산의 범위'에서 '20% 상당'을 지원하도록 돼 있어 정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복지위는 정부가 짠 예산이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된 국고지원액인 14%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증액의 근거로 들었다. 정부안인 10조5262억원은 내년도 건보료 예상수입액인 86조4283억원의 12.2% 수준이다.
정부는 건전재정 원칙에 따라 내년 예산을 올해(638조7000억원)보다 2.8%(18조2000억원) 늘린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하면서도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 예산(일반회계)은 지난해 약 9조1000억원의 15% 수준인 1조4000억원 가량을 늘렸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이 부족한 1.8%포인트에 해당하는 1조5737억원을 늘려 14%를 채운 셈이다.
건강증진기금에선 건보 수입의 6%(5조2000억원)를 충당하게 돼 있으나, 국고 지원액이 기금의 재원인 부담금 수입액의 6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투입액은 올리지 않았다. 일반회계와 건강증진기금을 합친 총 국고지원금이 내년도 건보료 예상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1% 수준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뒷받침한다는 취지지만 한편으론 방만한 의료 지출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2007년 일몰 기한 4년의 한시법으로 도입된 건보 국고지원은 2011, 2016, 2017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4차례 일몰이 연장됐다.
한해 정부 예산의 2%에 달하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결정하는 작업에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보건 분야 지출은 의학 전문성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는 이유로 의약업계가 주도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가 건보 수입 및 지출을 스스로 정하기 때문이다. 건정심은 의사, 한의사 협회 등 ‘공급자’ 대표 8명과 경영계, 자영업자,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 ‘가입자’ 대표 8명, 그리고 위원장인 복지부 차관을 비롯한 공무원, 건보공단, 학자 등 ‘공익위원’ 9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공급자와 의료 혜택을 누리는 가입자 측도 정부의 국고 지원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건보를 운영하는 복지부와 건보공단 역시 국고 지원에 찬성하고 있고, 2명의 전문가 위원은 의대나 보건대학 교수로 사실상 공급자 측이나 다름 없는 인물들이다. 건정심 구성원 가운데 건보의 재정 건전성이 조직 목표와 부합하는 측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정도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의료복지 확대 요구와 보상을 확대해달라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지출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예정처에 따르면 건보의 지출 증가 흐름이 그대로 이어질 경우, 현재 소득의 7.09%인 보험료율이 법적 상한선인 8%까지 오르고, 2027년 이후에도 국고지원이 계속되더라도 전체 재정수지는 2024년이면 적자로 전환해 2032년엔 적자 규모가 20조원까지 늘어난다. 2032년 기준 누적 적자액만 61조6000억원에 달한다. 수입의 20%를 꽉 채워 지원해도 2026년부턴 적자를 보기 시작하고 2032년엔 한 해에 8조800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된다. 국고 지원을 늘린다해서 건보 재정이 건전해지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건보의 재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지난 2월 기재부와 ‘보건분야 예산회의’를 개최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정부가 보험 지출을 전혀 모니터링할 수 없고 지출 증가율도 결정할 수단이 없는데도 정부가 자동적으로 건보 재정에 예산을 투입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매우 특이하다(highly unique)’”고 했다. 대다수 OECD 회원국들이 세금이 들어가는 건보의 지출 항목과 증가율 등을 정부와 국회가 통제하는 데 비해 한국은 지출을 통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부 예산이 ‘자동적으로’ 투입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연내 복지부가 발표 예정인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자문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역시 최근 공개한 용역 보고서 초안을 통해 지출을 먼저 결정한 뒤 이에 맞게 수입을 정하는 ‘양출제입(量出制入)’ 방식에서 벗어나 수입에 지출을 맞추는 ‘양입제출(量入制出)’ 방식으로 건보 재정관리 체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은 2007년 한시 조항으로 도입됐으나 4차례 일몰 연장으로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3000만명이 넘는 국민들로부터 소득의 7%가 넘는 보험료를 걷으면서도 건보는 국고 지원을 빼면 매년 조단위 적자를 보고 있다. 고령화와 함께 폭증하는 건보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시 도입 국고 지원 규정...20년 간 연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4일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를 열고 2024년도 건강보험에 대한 일반회계 국고지원 예산을 정부안(10조5262억원)대비 1조5000억원 가량 늘어난 12조1000억원으로 늘리기로 의결했다.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들어가는 국고지원금(1조9000억원)을 포함하면 내년도 국고지원금은 14조원 수준으로 올해(11조원)보다 약 3조원이 늘어난다.한국은 2007년 이후 당해 건보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한 국고지원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와 국민건강증진법 부칙 제2항에 따라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를 국고(14%)와 건강증진기금(6%) 재원으로 지원한다. 20%는 정부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의무는 아니다. 관련법엔 '예산의 범위'에서 '20% 상당'을 지원하도록 돼 있어 정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복지위는 정부가 짠 예산이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된 국고지원액인 14%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증액의 근거로 들었다. 정부안인 10조5262억원은 내년도 건보료 예상수입액인 86조4283억원의 12.2% 수준이다.
정부는 건전재정 원칙에 따라 내년 예산을 올해(638조7000억원)보다 2.8%(18조2000억원) 늘린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하면서도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 예산(일반회계)은 지난해 약 9조1000억원의 15% 수준인 1조4000억원 가량을 늘렸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이 부족한 1.8%포인트에 해당하는 1조5737억원을 늘려 14%를 채운 셈이다.
건강증진기금에선 건보 수입의 6%(5조2000억원)를 충당하게 돼 있으나, 국고 지원액이 기금의 재원인 부담금 수입액의 6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투입액은 올리지 않았다. 일반회계와 건강증진기금을 합친 총 국고지원금이 내년도 건보료 예상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1% 수준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뒷받침한다는 취지지만 한편으론 방만한 의료 지출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2007년 일몰 기한 4년의 한시법으로 도입된 건보 국고지원은 2011, 2016, 2017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4차례 일몰이 연장됐다.
한해 정부 예산의 2%에 달하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결정하는 작업에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보건 분야 지출은 의학 전문성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는 이유로 의약업계가 주도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가 건보 수입 및 지출을 스스로 정하기 때문이다. 건정심은 의사, 한의사 협회 등 ‘공급자’ 대표 8명과 경영계, 자영업자,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 ‘가입자’ 대표 8명, 그리고 위원장인 복지부 차관을 비롯한 공무원, 건보공단, 학자 등 ‘공익위원’ 9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공급자와 의료 혜택을 누리는 가입자 측도 정부의 국고 지원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건보를 운영하는 복지부와 건보공단 역시 국고 지원에 찬성하고 있고, 2명의 전문가 위원은 의대나 보건대학 교수로 사실상 공급자 측이나 다름 없는 인물들이다. 건정심 구성원 가운데 건보의 재정 건전성이 조직 목표와 부합하는 측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정도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의료복지 확대 요구와 보상을 확대해달라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지출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다.
○OECD "지출 통제 못하는데 예산 투입하는 '이상한' 제도"
이로 인해 건보는 국고 지원 없이는 붕괴될 수준에 만성 적자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10월 발표한 ’2023~2032년 건강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올해 건보 재정수지는 수입(93조3000억원)이 지출(92조원)을 넘겨 1조3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하지만 11조원에 달하는 국고지원금을 빼고 보험료 수입과 급여 지출만 감안하면 9조7000억원이 적자다. 지난해 일몰이 예정돼있었지만 그에 대비한 지출 구조조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예정처에 따르면 건보의 지출 증가 흐름이 그대로 이어질 경우, 현재 소득의 7.09%인 보험료율이 법적 상한선인 8%까지 오르고, 2027년 이후에도 국고지원이 계속되더라도 전체 재정수지는 2024년이면 적자로 전환해 2032년엔 적자 규모가 20조원까지 늘어난다. 2032년 기준 누적 적자액만 61조6000억원에 달한다. 수입의 20%를 꽉 채워 지원해도 2026년부턴 적자를 보기 시작하고 2032년엔 한 해에 8조800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된다. 국고 지원을 늘린다해서 건보 재정이 건전해지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건보의 재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지난 2월 기재부와 ‘보건분야 예산회의’를 개최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정부가 보험 지출을 전혀 모니터링할 수 없고 지출 증가율도 결정할 수단이 없는데도 정부가 자동적으로 건보 재정에 예산을 투입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매우 특이하다(highly unique)’”고 했다. 대다수 OECD 회원국들이 세금이 들어가는 건보의 지출 항목과 증가율 등을 정부와 국회가 통제하는 데 비해 한국은 지출을 통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부 예산이 ‘자동적으로’ 투입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연내 복지부가 발표 예정인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자문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역시 최근 공개한 용역 보고서 초안을 통해 지출을 먼저 결정한 뒤 이에 맞게 수입을 정하는 ‘양출제입(量出制入)’ 방식에서 벗어나 수입에 지출을 맞추는 ‘양입제출(量入制出)’ 방식으로 건보 재정관리 체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