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치 히라코. /스페이스K 제공
유이치 히라코. /스페이스K 제공
일본은 현대미술 강국이다. 일단 ‘슈퍼스타 3인방’, 쿠사마 야요이(94), 나라 요시토모(64), 무라카미 다카시(61)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세 작가 모두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수십~수백억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을 사고야 말겠다는 컬렉터들이 전 세계에 넘쳐난다.

이들의 뒤를 잇는 작가군도 탄탄하다. ‘허리’에 해당하는 Mr.(미스터·54)와 이즈미 카토(54), 시오타 치하루(51) 등은 물론이고 젊은 작가들도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차세대 슈퍼스타’ 자리를 노리고 있다.

젊은 작가인 유이치 히라코(41) 역시 다음 세대의 슈퍼스타 후보 중 하나다.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지만 그의 대형 회화 작품은 세계 시장에서 수억원대를 호가한다. 특히 최근 들어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한국에서 작품을 직접 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히라코의 한국 팬들이 서울 마곡 스페이스K에서 16일부터 열리고 있는 개인전 ‘여행’을 반기는 이유다.
'Green Master 84'(2023). /스페이스K 제공
'Green Master 84'(2023). /스페이스K 제공
히라코의 트레이드 마크는 일명 ‘트리맨’이라 불리는 캐릭터다. 인간의 몸에 나무 머리, 사슴 뿔처럼 생긴 나뭇가지가 달려 있는 친근한 모양새다. 일본 민속 설화의 나무 정령을 참고해 만들어 일본적인 느낌도 물씬 풍긴다. 화풍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히라코는 요시토모와 다카시 등 ‘일본 팝아트’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꼽힌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릴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 작품을 수백번씩 봤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총 30여점.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대형 작품들이 여럿 나와 있다. 네 개의 각기 다른 작품을 이어 붙인 듯한 가로 10m, 높이 3m의 회화 'The Journey(Traveling Plants)'(2023)를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떨어트린 씨앗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자연의 순환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Wooden Wood 49'(2023)에서는 높이 2.5m의 트리맨 나무조각 두 점과 함께 원색의 만화풍 과일 조각들이 배치돼 있어 ‘보는 맛’이 있다.
'Traveling Plants'(2023). /스페이스K 제공
'Traveling Plants'(2023). /스페이스K 제공
'Wooden Wood 49'(2023). /스페이스K 제공
'Wooden Wood 49'(2023). /스페이스K 제공
그를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는 이를 부인한다. “환경 파괴는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환경을 보호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자연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본다면 만족합니다.”

작가가 전시장 입구에 직접 만든 핀볼 기계가 눈에 띈다. 입장권과 함께 지급되는 코인을 넣고 기계를 작동시키면 트리맨 모양의 작은 기념품이 1~2개 나온다. 작가는 “미술을 좀 더 많이 접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