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 대한 선제적 자금 지원 제도인 ‘금융안정계정’ 도입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사후적 구제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금융안정계정과 같은 선제적 자금 지원 제도를 구축한 것과 대비된다.

금융시장 불안 커지는데…표류하는 '금융안정계정' 도입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도입을 추진 중인 금융안정계정은 금융위기로 정상적인 금융사가 자금난을 겪게 되면 위기가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장치다. 지금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금융사를 직접 지원하거나 한국은행이 긴급대출을 내주는 방식의 위기 대응 제도가 있다. 하지만 현행 시장 안정화 조치는 사후적 지원 방식인 탓에 효율성이 떨어지고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금융안정계정은 예금보험공사의 기존 예금보호기금 내에 별도 계정으로 설치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금융사가 유동성 경색을 겪을 조짐이 보이면 예금보호기금의 자금 일부가 금융안정계정으로 차입되고 이 돈이 금융사의 채무 지급보증, 대출, 출자 등에 활용되는 구조다. 가장 큰 장점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은행, 보험사 등 각 금융사가 납입한 보험료와 예보의 보증료 수입, 예보채 발행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이 금융안정계정으로 유입된다.

또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기존 지원 방식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거나 지원기관이 채권을 새로 발행하고 담보를 설정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금융안정계정은 이미 마련된 예금보험기금을 활용해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다. 예보는 현재 가용 예금보험기금만으로도 보증 방식을 통해 담보 없이 124조원 이상을 금융사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안정계정을 신설하려면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금융안정계정 신설을 핵심 내용으로 담은 예금자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도입 필요성엔 여야 모두 공감하지만 실질적 논의는 법안 발의 이후 진척이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1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 예정이지만 금융안정계정 논의는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국민적 관심사인 공매도 금지와 관련한 입법 보완 여부를 우선 검토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위에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논의되지 못하면 금융안정계정은 사실상 내년까지 도입이 불가능하다. 이후로는 여야 모두 내년 4월 총선 준비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