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실험미술 선구자' 정강자, 화가로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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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구겐하임미술관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展 개최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 정강자 설치작품 ‘키스 미’
런던 프리즈 ‘모던 우먼’ 섹션의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선정
서울 아라리오에서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 열려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 정강자 설치작품 ‘키스 미’
런던 프리즈 ‘모던 우먼’ 섹션의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선정
서울 아라리오에서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 열려
정강자(1942~2017)는 지난 1년간 가장 극적으로 재조명을 받은 작가다. 1960년대 국내 최초로 누드 퍼포먼스를 벌이며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때만 해도 그는 미술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였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을 피해 10여년간 해외로 이주했다. 미술계는 그를 금세 잊었고, 1980년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타계할 때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전이 찾아온 건 올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이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를 개최하면서다. 관객들이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으로 꼽은 작품이 바로 정강자의 설치작품 ‘키스 미’.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재평가 바람과 여성 작가들이 조명되는 최근 세계 미술계의 분위기가 겹치면서 그는 순식간에 다시 ‘핫한 작가’가 됐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주요 여성 작가를 기리는 ‘모던 우먼’ 섹션에 정강자가 유일한 아시아인 참여 작가로 선정됐던 것도 이런 맥락 덕분이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정강자: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는 그의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전시에는 정강자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제작한 회화 40점이 나왔다.
지하 1층과 1층에는 정강자의 1990년대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작가가 중남미와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태평양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받은 영감을 투영한 그림들이다. ‘뜨개질로 우주를’(1996),‘거미’(1995), ‘무제’(1997) 등 이국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화풍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반면 3~4층의 2000년대 작품들에서는 만물을 반원이라는 모양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던 기하학적 실험의 흔적이 눈에 띈다. ‘숲 속을 부유하는 여인’(2010)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화풍이다. 지하 1층에 걸린 그의 1990년대 작품들과 4층의 2010년 작품들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게 단적인 예다. 같은 시기에 그렸지만 마치 서로 다른 작가가 그린 것처럼 딴판인 그림들도 있다. 화풍이 다양한 만큼 작품 수준이 다소 들쭉날쭉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미술평론가는 “세련된 선구자적 작품이 있는 반면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쉬운 그림도 있다”고 평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실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감동도 있다. “비록 미완으로 끝나더라도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했던 작가답게, 주목받고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했던 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반전이 찾아온 건 올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이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를 개최하면서다. 관객들이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으로 꼽은 작품이 바로 정강자의 설치작품 ‘키스 미’.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재평가 바람과 여성 작가들이 조명되는 최근 세계 미술계의 분위기가 겹치면서 그는 순식간에 다시 ‘핫한 작가’가 됐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주요 여성 작가를 기리는 ‘모던 우먼’ 섹션에 정강자가 유일한 아시아인 참여 작가로 선정됐던 것도 이런 맥락 덕분이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정강자: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원시였다’는 그의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전시에는 정강자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제작한 회화 40점이 나왔다.
지하 1층과 1층에는 정강자의 1990년대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작가가 중남미와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태평양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받은 영감을 투영한 그림들이다. ‘뜨개질로 우주를’(1996),‘거미’(1995), ‘무제’(1997) 등 이국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화풍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반면 3~4층의 2000년대 작품들에서는 만물을 반원이라는 모양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던 기하학적 실험의 흔적이 눈에 띈다. ‘숲 속을 부유하는 여인’(2010)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화풍이다. 지하 1층에 걸린 그의 1990년대 작품들과 4층의 2010년 작품들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게 단적인 예다. 같은 시기에 그렸지만 마치 서로 다른 작가가 그린 것처럼 딴판인 그림들도 있다. 화풍이 다양한 만큼 작품 수준이 다소 들쭉날쭉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미술평론가는 “세련된 선구자적 작품이 있는 반면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쉬운 그림도 있다”고 평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실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감동도 있다. “비록 미완으로 끝나더라도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했던 작가답게, 주목받고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했던 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