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벌금 180억원을 선고하며 “일당 1650만원짜리 노역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또 한 번 ‘황제노역’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최장 노역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한 형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형사12부(김상규 부장판사)는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 안모씨(40)에게 특별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세 포탈 범죄는 조세질서를 어지럽히면서 조세 수입도 감소시킨다”며 “국민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가중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벌금 180억6750만원을 낼 것도 명령했다. 다만 벌금을 내지 않으면 1650만원을 일당으로 환산해 1095일(3년)간 노역장에 유치하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현행법상 노역이 가능한 최장 기간이다.

안씨는 2017~2019년 태국 등 해외에 사무실을 차려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 그가 이를 통해 받은 도박자금은 총 1821억여원이다. 안씨는 세무 신고 등을 하지 않은 채 3년간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세금 약 180억원을 내지 않았다. 안씨는 이미 불법 도박장 개설과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이번에 조세 탈루 혐의로 추가 기소돼 형기가 늘었다.

대규모 세금 포탈에도 안씨가 일당 1650만원짜리 노역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법조계 안팎에선 ‘황제노역’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형법 69조는 벌금 미납자가 노역장에 유치되면 노역 기간을 3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미납금액별 최소 노역 기간은 △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이면 300일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500일 △50억원 이상이면 1000일로 정해져 있다.

과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 사태 후 노역 기간 하한선이 생겼지만, 일당이 수천만원 이상인 노역형은 여전히 가능한 구조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