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 보상 재원을 한국전력 예산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19일 파악됐다. 기획재정부와 이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다. 보상 재원은 연간 1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산업부가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 들어설 수도권과 발전소를 잇는 전력망 구축이 시급하지만 한전이 재무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1년부터 올 3분기까지 45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부채 규모는 200조원이 넘는다. 이에 따라 송전망을 건설할 때 주변 지역 보상 재원을 직접 감당하기가 빠듯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당 국회의원들도 산업부 방침과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양금희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10명이 발의한 ‘송·변전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한전 경영난에 주민보상 지연…송전망 '20년째 공사중'인 곳도

전력기금은 전기요금의 3.7%를 전력 사용자에게 부과해 조성하는 일종의 준조세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노후 시설 교체,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등 공익 사업에 쓰도록 돼 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개정안 제안 사유에 대해 “송·변전 설비는 반도체 등 국가첨단산업을 촉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주민 반발로 인해 적기에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며 “발전소 주변 지원 사업처럼 전력기금을 사용해 주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발전소는 주로 해안가에 있지만 전력 수요처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문제는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데 필요한 송전망 구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건설이 재개된 신한울 3·4호기 등 동해안 원전과 수도권을 잇는 중요한 송전망이지만, 지역 주민의 집단 반발로 준공 시점이 당초 2021년 말에서 2027년 상반기로 밀렸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2003년 공사를 시작해 2012년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착공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사 중’이다.

주민 동의를 이끌어내려면 보상 규모의 현실화가 필수다. 그러나 한전 예산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한전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9년 송·변전 설비 규모는 2025년 대비 19.4% 증가할 전망이다. 필요한 지원금 규모는 2025년 1501억원에서 2026년 1635억원, 2027년 1808억원, 2028년 1856억원, 2029년 1859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구체적인 추정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2030년 이후에도 보상 재원은 꾸준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늘어나는 한전의 부담은 결국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의 협의가 변수다. 산업부와 달리 기재부는 송전망 주변 지역 보상에 전력기금을 투입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기재부는 송전망 주변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모든 전력 사용자가 부담하는 전력기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정 공기업이 할 일을 정부가 지원하면 다른 공기업도 자체 사업에 재정 투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 기재부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박한신/황정환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