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는 얍 판 츠베덴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seoulphil
내년부터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는 얍 판 츠베덴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seoulphil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의 음악을 작업한 프로듀서 정재일(41)과 손을 잡는다. 국내 1위 오케스트라와 K콘텐츠의 음악 선봉장이 합작 무대를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내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는 얍 판 츠베덴(63·사진)은 2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내년 계획을 밝혔다. 그는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서의 첫 목표로 '협력'(콜라보레이션)을 꼽으며 "정재일을 비롯해 신진 작곡가들과 오페라, 발레 등 서울의 다양한 음악 단체들과 협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츠베덴이 협력을 강조하는 건 서울시향의 파급력을 넓히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일반 서울시민들도 사랑하는 예술단체가 되기 위해선 다른 예술분야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츠베덴은 "서울은 단순히 음악의 도시가 아닌 예술의 도시"라며 "서울이 가지고 있는 재능있는 음악가, 예술단체들을 강화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재일이) 자신은 클래식 작곡가가 아니라며 망설였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뉴욕필에서 19번의 초연 무대를 했어요, 서울시향에서도 많은 초연곡을 선보일 겁니다. "
20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츠베덴이 음악감독으로서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seoulphil
20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츠베덴이 음악감독으로서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seoulphil
츠베덴은 서울시향과 5년간 함께할 주요 프로젝트들을 발표했다. 그는 "국제적인 사운드를 지닌 오케스트라"를 내걸며 아시아 미국 유럽 등 해외 투어 공연을 계획중이라고 했다.

이뿐 아니라 그가 매년 스위스 메뉴힌 페스티벌에서 운영하던 신인 지휘자 육성 프로그램도 서울에서 런칭할 예정이다. 이르면 내후년부터 공개오디션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한국 젊은 지휘자들을 키우고, 그들에게 훌륭한 DNA를 심어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말러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작업도 프로젝트에 포함된다. 말러가 쓴 10개의 교향곡을 녹음하려면 악단은 매년 최소 2개 이상의 말러 교향곡을 연주해야 한다. 말러 교향곡은 규모가 크고 어렵기로 정평 나 있다. 말러의 곡 중 가장 긴 곡인 제3번은 100분이 넘는다.

"사파리 여행을 떠나는 느낌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악단의 실력, 퀄리티입니다. 앞으로 서울시향과 함께하는 5년 간 매주, 매시간, 매분 우리의 실력을 입증해 나갈 것입니다. ”

바이올리니스트로 음악을 시작한 얍 판 츠베덴은 19세에 세계 최정상급 악단 로열콘세트르헤바우(RCO) 최연소 악장으로 17년간 일했다. 이후 미국 댈러스 심포니,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에서 지휘하며 악단의 실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미국 대표 오케스트라인 뉴욕필하모닉도 이끌었다. 그는 강도높은 훈련과 완벽주의적 카리스마로 단기간에 연주 실력을 끌어올려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로 불린다.

올해는 서울시향과의 호흡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2024년 프로그램은 클래식 대표 레퍼토리로 구성했다. 바그너의 '발퀴레', 브람스 2번, 모차르트 40번, 베토벤 5번 '운명' 등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기 있는 작품들로 채웠다.

객원 지휘자로도 세계적인 거장들을 섭외했다. 올해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을 이끈느 투간 소키예프를 비롯해 동양인 여성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김은선,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 등이 포디움에 선다.

협연자들 또한 화려하다. 내년 1월 취임연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함께하며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레이 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등 스타 연주자들이 무대에 선다.

"서울시향은 다양한 곡을 주무르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바흐를 연주했다가 (전혀 성격이 다른) 스트라빈스키를 연주하는 것처럼요.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니까요.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