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서 페론주의는 암입니다. 이제 질렸어요. 가난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번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에게 투표한 나초 라라나가(50·작가)는 선거 결과를 페론주의에 대한 심판이라고 평가했다.

페론주의는 24~25대, 34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후안 페론의 철학을 계승하는 정치 운동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페론주의와 군부독재 세력 간 경쟁의 역사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군인 출신인 페론 전 대통령은 1943년 군부 쿠데타에 가담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군부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을 지내며 노동자를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후 1946년 대선에 출마해 노동자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권력을 잡았다.

페론 전 대통령은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를 경제 정책의 세 축으로 삼았다. 1947년부터 2년 연속 아르헨티나 노동자 임금은 연 25% 상승했다. 이런 정책은 아르헨티나 빈곤층이 줄어들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인위적인 임금 인상은 곧 후폭풍을 불러왔다. 1948년 공공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서며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줬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임금 인상은 수출 경쟁력의 발목을 잡았다. 1949년부터 무역 적자가 발생했다. 경기 확장기에 노동자를 지지 기반으로 삼아 인기를 구가한 페론주의는 경기 침체에 접어들며 점차 무너졌다. 20세기 초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수시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빠지는 나라가 된 배경이다.

페론 전 대통령은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에도 국외에서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1950~1960년대 군부 정권은 페론주의 정치인의 정치 참여를 금지했지만 1972년 민주화의 일환으로 페론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페론 전 대통령은 1973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듬해 노환으로 별세했다.

군사 독재가 종식된 이후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 정치를 지배하는 주요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이 페론주의를 계승·발전한 ‘신페론주의’(키르치네르주의)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민영화된 우편 등 공공서비스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사회보장 등 공공지출을 늘렸다.

페론주의 정당인 정의당은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를 대선 후보로 내세워 2007년부터 8년간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2015년 대선에서 공화주의제안당 소속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에게 임기를 내줬으나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이 정권을 되찾았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