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A사는 최근 고객사 직원이 사내 복지, 회사 규정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업무용 AI 챗봇 개발 사업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달 6일 열린 오픈AI의 개발자 대회를 보고 해당 사업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A사 대표는 “AI 챗봇 개발은 개발자 두 명이 달라붙어도 꼬박 2주가 걸리는데 오픈AI는 일반인이 1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고 말했다.
"챗GPT 새 기능 넣을 때마다, 韓 스타트업 수십 개 증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최후의 날.’

지난 6일 열린 오픈AI의 첫 개발자대회(OpenAI DevDay)에 대한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의 분석이다. 국내외 AI 개발자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오픈AI가 생성형 AI의 핵심 기술인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성능 강화에 그치지 않고 각종 AI 파생 서비스까지 내놓으면서 상당수 국내외 AI 스타트업이 생존을 위한 사업 전환의 고비에 맞닥뜨렸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 영역까지 사업 확대

오픈AI는 이번에 챗GPT에 입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을 기존 약 3000단어에서 300페이지로 확대했다. 1년 전 챗GPT 출시 이후 제한된 LLM의 입력값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PDF 등 문서 파일을 AI가 학습할 수 있게 하는 솔루션을 개발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챗GPT의 데이터 입력 규모가 대폭 늘어나면서 피벗(사업 모델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오픈AI가 개발한 최신 LLM GPT-4터보는 텍스트의 음성 변환 기능까지 지원한다. ‘AI성우’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스타트업과 핵심 사업이 겹친다. 미국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인 AI 음성생성 업체 일레븐랩스의 제품보다 챗GPT 이용료가 20% 이상 저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멀티모달 AI 전문기업 액션파워의 조홍식 공동대표는 “오픈AI가 큰 것(LLM)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작은 것(하위 파생 서비스)까지 공격적으로 빠르게 개발하고 있다”며 “탄력받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오픈AI 속성 진화에 속수무책

오픈AI가 LLM의 성능을 높이고 사용료를 낮춘 것도 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GPT-4터보의 이용료는 이전 버전(GPT-4)의 36% 수준으로 낮아졌다. 벤처캐피털(VC)업계 관계자는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국내 한 AI 스타트업은 최근 차별화한 경쟁력도 갖추지 못하고 오픈AI를 따라갈 엄두도 못 내 LLM 개발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국내 AI 스타트업 상당수는 LLM 개발보다 오픈AI의 GPT, 메타의 라마2 등 빅테크 LLM을 차용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오픈AI는 GPT를 활용한 서비스를 누구나 챗GPT 플랫폼에서 판매할 수 있는 ‘GPT 스토어’도 이달 출시한다. 국내에서 비슷한 플랫폼을 운영하는 뤼튼테크놀로지, 달파 등 AI 스타트업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AI가 뭔가 발표할 때마다 상당수 AI 스타트업이 사업 모델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AI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국내 스타트업 수십 개가 사라진다는 얘기까지 있다.

“기술 물줄기 놓치지 말아야”

반대로 오픈AI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국내 AI 생태계 확장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AI 챗봇 등을 직접 판매하는 대신 오픈AI가 구축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매개로 쉽게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15년 전 생긴 애플의 모바일 앱 마켓플레이스인 앱스토어를 통해 해외에 진출한 국내 앱 개발사들처럼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GPT 기반 타로 서비스 앱인 마이타로를 개발한 원지랩스의 곽근봉 대표는 “더 좋은 성능의 GPT를 더 싸게 사용할 수 있는 데다 해외 판매처를 확보할 기회”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빅테크의 기술 물줄기에 과감히 올라타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제일 성능이 좋다는 LLM조차 GPT-3.5를 따라잡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AI 주권론’에 갇혀 시야를 국내에만 두지 말고 오픈AI와의 서비스 질 격차를 줄이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