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빙 크로스비와 '기타' 레스 폴은 음반산업을 바꾼 혁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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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디오가이의 글로 쓰는 소리
아날로그 녹음의 역사①
아날로그 녹음의 역사①
현존하는 아날로그 녹음 기기 중 가장 음질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고 있는 아날로그 릴 테이프 (analog reel tape). 방송뿐 아니라 LP나 음반 제작에도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 이 릴 테이프의 역사도 축음기 역사와 크게 멀지 않습니다.
1877년 미국 공학자 오벌린 스미스가 음성 신호를 자성을 띈 물체에 자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전기 신호로 재생하는 부분에 관한 논문을 내놓으며 자기 녹음 (magnetic recording)에 관한 첫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898년, 덴마크의 기술자 발데마르 폴센이 피아노선을 자성체로 이용한 텔레그라폰을 발명하고 특허를 받지요. 이 텔레그라폰을 이용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자기 녹음 테이프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였던 프란츠 조세프 카를 1세의 목소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상당한 화제였던 자기 녹음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린더 녹음 및 SP의 출시로 사람들에게는 잊혀져갔습니다. 1920년에는 영국 기술자 루이스 블래트너가 자 텔레그라폰의 자성체로 사용하던 피아노선이 너무 가늘고 쉽게 끊어지는 걸 보완하기 위해 강철 와이어로 대체한 블래트너폰을 개발했습니다. BBC에서 방송용 장비로 쓰이지만, 녹음 가능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강철 와이어가 필요하다는 단점으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합니다.
BBC 또한 이탈리아 공학자인 굴리엘모 마르코니와 함께 연구하여 3mm 굵기의 강철 레이저 와이어를 이용한 마르코니-스틸 자기 녹음기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 녹음기의 특징은 100Hz 부터 6kHz에 이르는 주파수 대역을 녹음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죠. 그러던 중, 독일의 담배종이 제작회사 사장이었던 프리츠 플뢰머는 1928년 얇은 두루마리 종이에 래커칠을 한 후 산화철을 입히는 방식으로 최초의 자기 테이프를 발명합니다. 1932년에는 독일 AEG와 BASF가 플뢰머의 기술을 보안해 자기녹음 방식을 적용한 첫 번째 아날로그 테이프 녹음기인 마그네토폰 K1을 개발합니다. 다만, 마그네토폰 K1은 여러 단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기당 무게가 거의 300kg에 가까웠고, 30ips로 재생되던 이 기기는 처음 나왔을 당시 노이즈가 너무 심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지요.
이러한 단점은 1940년 월터 웨버에 의해 크게 개선됩니다. 월터 웨버는 작은 레벨에서의 자기 뒤틀림 등 자기 이력 현상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시키는 AC Bias를 개발하여 마그네타폰의 노이즈 문제를 크게 개선시킵니다. 덕분에 당시 방송국에서 주로 사용하던 아세테이트 디스크나 와이어 레코더보다 훨씬 깨끗하고 뛰어난 음질을 갖게 되었지요.
또, 이런 자기 테이프 녹음 방식은 녹음·재생 시간도 훨씬 길었고 편집도 용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AC Bias가 적용된 개량형 자기 테이프 녹음기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지요. 나치 독일은 이 기기를 철저히 비밀로 한 채 라디오 방송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독일이 패전한 후에야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는 미군부대 소속 공학자 잭 뮬린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를 크게 관심가진 회사는 산프란시스코의 암펙스였고, 1946년 봄부터 ‘Ampex Model 200A’이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기 시작합니다. 이 개량형 자기 테이프 녹음기가 미국 전역에 쓰이기 시작한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잭 뮬린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로 유명했던 빙 크로스비의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기 위해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를 사용합니다. 때 마침 미국 동부와 서부의 시간차와 그로 인한 주 시청 시간대를 맞추는데 고민하고 있었던 빙 크로스비는 녹음·재생 시간이 길고 편집도 쉬운 자기 테이프 녹음기에 관심을 가졌고, 사비로 Ampex Model 200A 2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여파로 다른 방송국들과 제작사들도 자연스럽게 동일 모델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죠.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는 빙 크로스비의 친구이자 기타리스트인 레스 폴에 의해 현대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1945년 레스 폴은 헐리우드에 있던 본인의 집 창고에 녹음실을 만드는데, 그런 그에게 빙 크로스비는 가지고 있던 Ampex Model 200A를 주게 되죠. 레스 폴은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를 가지고 녹음된 소스 위에 겹쳐 녹음하는, 이른바 멀티 트랙 녹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Sound on Sound’ 기술을 만들어 냅니다. 현대에까지 이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모든 멀티 녹음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죠. 또한, 그는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자기 테이프 녹음기의 발전을 이끌어 냅니다.
레스 폴은 즉시 이 기술을 음반 녹음에 사용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음반은 1948년에 발매된 ‘Lover’, 8번의 기타 연주를 녹음한 음반이 탄생하죠. 다시 말해 8 트랙의 멀티 트랙 녹음인 것인데, 여기서 그는 자기 테이프 녹음기가 아닌 아세트 판 (acetate disk) 혹은 래커 판 (lacquer)을 사용해 녹음합니다. 한번 연주를 해 녹음하고, 그 위에 다시 녹음해 멀티 트랙 녹음을 한 것이죠. 그는 여기서 멀티 트랙 녹음과 자기 테이프 녹음기를 통해 음의 시간차를 이용한 테이프 딜레이와 위상 효과 기법을 만들어 냅니다.
1953년, 레스 폴은 Ampex의 엔지니어 로스 스나이더와 함께 멀티 트랙 자기 테이프 녹음기 개발에 들어가고, 1957년 ‘Ampex Sel-Sync 1-inch 8-track machines’ 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멀티 트랙 녹음기가 탄생합니다. 이는 Ampex에서 1967년에 출시한 ‘MM 1000 model’ 16 멀티 트랙 녹음기와 그 당시 최고의 녹음기라고 일컬어지는 1970년대의 ‘MM 1200 2-inch’ 16 멀티 트랙 녹음기 그리고 24 멀티 트랙 녹음기 출시의 발판이 됩니다.
게다가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의 발전은 전자 음악의 탄생, 그리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계기도 만듭니다. 프랑스의 작곡가였던 피에르 앙리 마리 셰페르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들을 기계적으로 변형하여 멀티 트랙 녹음을 한 ‘구체 음악’ 이란 장르를 만들어 냅니다. 그 당시, 일정한 박자에 따라 음정을 붙인 음악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새로운 음악 장르였죠. 이후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나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영향을 받아 전자 음악을 발전시켰으며, 현대의 모든 전자 음악은 이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Ampex에서만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가 시판된 것은 아닙니다. 1949년, 엔지니어이자 오디오 기기 개발자인 빌리 스튜더는 ‘Dynavox’라는 그의 첫 테이프 레코더를 만듭니다. 1951년에 빌리 스튜더와 한스 윈즐러가 ‘ELA AG’사를 세운 뒤에는 ‘Revox T26’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지요. ‘Revox T26’는 1952년에 대량 생산되며 1960년에는 고르고 넓은 주파수 대역으로 인기가 있었던 ‘Studer C37’ 모델의 개발로 이어집니다. 특히, 빌리 스튜더의 ‘Studer J37 4-track’ 레코더는 그 당시 가장 보수적인 회사였던 EMI로 하여금 비틀즈 음반 녹음에 사용하게 만듭니다. 미국에 Ampex와 Studer가 있었다면, 일본에서는 Otari, Sony, 그리고 TEAC·TASCAM 이 있었습니다. 특히, TEAC·TASCAM은 일부 성능을 낮춰 가격은 낮추지만 그와 동시에 기능이 뛰어난 기기들로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의 두 회사와 경쟁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SMPTE 컨트롤러가 달린 ‘Fostex E16 1/2-inch’ 녹음기와 1990년대 디지털 녹음의 활성화 직전까지 팔렸던 ‘TASCAM TSR 24 1-inch’ 녹음기가 있었죠.
이러한 경쟁 속에서 위기감을 느낀 Ampex는 1979년에 ‘ATR-124’ 모델을 출시합니다. ‘ATR-124’ 모델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아날로그 릴 테이프 녹음기로 불려진 기기이지만 비싼 가격 탓에 많이 쓰이지 못했고, 결국 Ampex는 1983년에 테이프 녹음기 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됩니다. 스튜더 또한 1970년에 2인치 24트랙 멀티 테이프 녹음기를 출시하며 1978년에는 자동 연산 기억 장치가 달린 ‘Studer A800’ 모델까지 출시합니다. 이의 개량형인 ‘Studer A820’을 마지막으로 스튜더 또한 테이프 녹음기 시장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BBC 또한 이탈리아 공학자인 굴리엘모 마르코니와 함께 연구하여 3mm 굵기의 강철 레이저 와이어를 이용한 마르코니-스틸 자기 녹음기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 녹음기의 특징은 100Hz 부터 6kHz에 이르는 주파수 대역을 녹음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죠. 그러던 중, 독일의 담배종이 제작회사 사장이었던 프리츠 플뢰머는 1928년 얇은 두루마리 종이에 래커칠을 한 후 산화철을 입히는 방식으로 최초의 자기 테이프를 발명합니다. 1932년에는 독일 AEG와 BASF가 플뢰머의 기술을 보안해 자기녹음 방식을 적용한 첫 번째 아날로그 테이프 녹음기인 마그네토폰 K1을 개발합니다. 다만, 마그네토폰 K1은 여러 단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기당 무게가 거의 300kg에 가까웠고, 30ips로 재생되던 이 기기는 처음 나왔을 당시 노이즈가 너무 심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지요.
이러한 단점은 1940년 월터 웨버에 의해 크게 개선됩니다. 월터 웨버는 작은 레벨에서의 자기 뒤틀림 등 자기 이력 현상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시키는 AC Bias를 개발하여 마그네타폰의 노이즈 문제를 크게 개선시킵니다. 덕분에 당시 방송국에서 주로 사용하던 아세테이트 디스크나 와이어 레코더보다 훨씬 깨끗하고 뛰어난 음질을 갖게 되었지요.
또, 이런 자기 테이프 녹음 방식은 녹음·재생 시간도 훨씬 길었고 편집도 용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AC Bias가 적용된 개량형 자기 테이프 녹음기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지요. 나치 독일은 이 기기를 철저히 비밀로 한 채 라디오 방송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독일이 패전한 후에야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는 미군부대 소속 공학자 잭 뮬린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를 크게 관심가진 회사는 산프란시스코의 암펙스였고, 1946년 봄부터 ‘Ampex Model 200A’이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기 시작합니다. 이 개량형 자기 테이프 녹음기가 미국 전역에 쓰이기 시작한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잭 뮬린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로 유명했던 빙 크로스비의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기 위해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를 사용합니다. 때 마침 미국 동부와 서부의 시간차와 그로 인한 주 시청 시간대를 맞추는데 고민하고 있었던 빙 크로스비는 녹음·재생 시간이 길고 편집도 쉬운 자기 테이프 녹음기에 관심을 가졌고, 사비로 Ampex Model 200A 2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여파로 다른 방송국들과 제작사들도 자연스럽게 동일 모델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죠.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는 빙 크로스비의 친구이자 기타리스트인 레스 폴에 의해 현대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1945년 레스 폴은 헐리우드에 있던 본인의 집 창고에 녹음실을 만드는데, 그런 그에게 빙 크로스비는 가지고 있던 Ampex Model 200A를 주게 되죠. 레스 폴은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를 가지고 녹음된 소스 위에 겹쳐 녹음하는, 이른바 멀티 트랙 녹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Sound on Sound’ 기술을 만들어 냅니다. 현대에까지 이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모든 멀티 녹음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죠. 또한, 그는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자기 테이프 녹음기의 발전을 이끌어 냅니다.
레스 폴은 즉시 이 기술을 음반 녹음에 사용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음반은 1948년에 발매된 ‘Lover’, 8번의 기타 연주를 녹음한 음반이 탄생하죠. 다시 말해 8 트랙의 멀티 트랙 녹음인 것인데, 여기서 그는 자기 테이프 녹음기가 아닌 아세트 판 (acetate disk) 혹은 래커 판 (lacquer)을 사용해 녹음합니다. 한번 연주를 해 녹음하고, 그 위에 다시 녹음해 멀티 트랙 녹음을 한 것이죠. 그는 여기서 멀티 트랙 녹음과 자기 테이프 녹음기를 통해 음의 시간차를 이용한 테이프 딜레이와 위상 효과 기법을 만들어 냅니다.
1953년, 레스 폴은 Ampex의 엔지니어 로스 스나이더와 함께 멀티 트랙 자기 테이프 녹음기 개발에 들어가고, 1957년 ‘Ampex Sel-Sync 1-inch 8-track machines’ 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멀티 트랙 녹음기가 탄생합니다. 이는 Ampex에서 1967년에 출시한 ‘MM 1000 model’ 16 멀티 트랙 녹음기와 그 당시 최고의 녹음기라고 일컬어지는 1970년대의 ‘MM 1200 2-inch’ 16 멀티 트랙 녹음기 그리고 24 멀티 트랙 녹음기 출시의 발판이 됩니다.
게다가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의 발전은 전자 음악의 탄생, 그리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계기도 만듭니다. 프랑스의 작곡가였던 피에르 앙리 마리 셰페르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들을 기계적으로 변형하여 멀티 트랙 녹음을 한 ‘구체 음악’ 이란 장르를 만들어 냅니다. 그 당시, 일정한 박자에 따라 음정을 붙인 음악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새로운 음악 장르였죠. 이후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나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영향을 받아 전자 음악을 발전시켰으며, 현대의 모든 전자 음악은 이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Ampex에서만 이 자기 테이프 녹음기가 시판된 것은 아닙니다. 1949년, 엔지니어이자 오디오 기기 개발자인 빌리 스튜더는 ‘Dynavox’라는 그의 첫 테이프 레코더를 만듭니다. 1951년에 빌리 스튜더와 한스 윈즐러가 ‘ELA AG’사를 세운 뒤에는 ‘Revox T26’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지요. ‘Revox T26’는 1952년에 대량 생산되며 1960년에는 고르고 넓은 주파수 대역으로 인기가 있었던 ‘Studer C37’ 모델의 개발로 이어집니다. 특히, 빌리 스튜더의 ‘Studer J37 4-track’ 레코더는 그 당시 가장 보수적인 회사였던 EMI로 하여금 비틀즈 음반 녹음에 사용하게 만듭니다. 미국에 Ampex와 Studer가 있었다면, 일본에서는 Otari, Sony, 그리고 TEAC·TASCAM 이 있었습니다. 특히, TEAC·TASCAM은 일부 성능을 낮춰 가격은 낮추지만 그와 동시에 기능이 뛰어난 기기들로 시장에 뛰어들며 미국의 두 회사와 경쟁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SMPTE 컨트롤러가 달린 ‘Fostex E16 1/2-inch’ 녹음기와 1990년대 디지털 녹음의 활성화 직전까지 팔렸던 ‘TASCAM TSR 24 1-inch’ 녹음기가 있었죠.
이러한 경쟁 속에서 위기감을 느낀 Ampex는 1979년에 ‘ATR-124’ 모델을 출시합니다. ‘ATR-124’ 모델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아날로그 릴 테이프 녹음기로 불려진 기기이지만 비싼 가격 탓에 많이 쓰이지 못했고, 결국 Ampex는 1983년에 테이프 녹음기 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됩니다. 스튜더 또한 1970년에 2인치 24트랙 멀티 테이프 녹음기를 출시하며 1978년에는 자동 연산 기억 장치가 달린 ‘Studer A800’ 모델까지 출시합니다. 이의 개량형인 ‘Studer A820’을 마지막으로 스튜더 또한 테이프 녹음기 시장에서 물러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