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옷 입은 듯 전두환 연기한 황정민···그가 재현한 44년 전 '그날'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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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최초로 영화화한 '서울의 봄'
김성수 연출·각색 "인물 성격·행적 재창작"
김성수 연출·각색 "인물 성격·행적 재창작"
“요즘 입만 벙긋하면 보안사로 바로 끌려간다던데. 그 말이 맞습니까? 세상이 ‘서울의 봄’이다 뭐다 해서 분위기 좋아지고 있는데, 각하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 잡아다 족친다고 뭐가 나오겠습니까.”(이태신)
"이 장군, 난 말입니다. 이참에 우리 둘이 친해볼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좀 있어요. 뭐 이런 어려운 시국에 서로 같은 편하면 큰 힘이 되고 그럴 텐데요."(전두광)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극을 이끄는 두 축인 전두광(황정민 분)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과 곧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될 이태신(정우성) 소장이 처음 대면할 때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자 영화 제목이기도 한 ‘서울의 봄’이란 말이 대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태신이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 아닌가요?"하고 대꾸하자 전두광이 “와~그렇습니까?” 하며 실없이 웃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시나리오를 각색한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군사 쿠데타, 이른바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최초의 극영화다. 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회고록이나 평전, 기사 등 자료는 많지만 정작 군사반란이 본격 전개된 이날 밤 ‘운명의 9시간’ 동안, 반란군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와 모의가 오갔는지, 진압군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김 감독은 사건의 큰 틀은 사실(史實)에 맞게 구축하되, 주요 인물들의 성격과 구체적인 행적은 영화적으로 재창작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 각색의 큰 방향을 잡았다. 사건을 잘 모르는 관객들까지 12.12 현장 속으로 빠져들도록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극적 재미를 위해 허구를 가미한 극영화의 특성상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단 김 감독이 재창작한 범위에 따라 변형의 정도가 다르다. 전두광과 그의 최측근이자 친구이면서 함께 반란군을 이끄는 노태건(박해준)은 이름만 들어도 두 전직 대통령이 안 떠오를 수 없다. 반면 연출 의도에 따라 전두광과 정반대의 유형으로 재창조된 이태신은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영화는 10.26 사건 직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계엄법에 따라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가 계엄사령관,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는 것으로 시작된다. ‘12.12 전사(前史)’가 전개되는 초반부는 정상호와 전두광의 갈등과 대립이 주를 이룬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중·후반부는 전두광과 이태신의 공방이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배우들의 호연이 잘 짜인 시나리오의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대머리 가발을 뒤집어쓴 황정민은 ‘탐욕의 아이콘’이자 ‘권모술수의 대가’인 전두광을 제 옷 입은 듯 연기한다. 때때로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이는 하나회 무리를 휘어잡는 장면에선 보는 이를 오싹하게 할 만큼 카리스마가 넘친다. 정우성은 감독이 요구하는 모범적인 군인 정신의 모습을 안정적으로 표출한다. 정상호 역의 이성민, 노태건 역의 박해준, 이태신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는 헌병감 역의 김성균과 특전사령관 역의 정만식 등 조연들의 존재감도 두드러진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의상과 무기, 소품뿐 아니라 포격전과 총격전, 군사적 대치 등 고증을 거쳐 그날의 현장을 가급적 사실대로 재현한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양 진영의 설득과 겁박, 폭력으로 공수가 수시로 뒤바뀌는 전개는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더없이 치열하고 중요했던 그날의 긴박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묘사해 깊은 여운과 함께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다만 지나치게 극적인 설정과 캐릭터가 영화적 재미를 더했을 지는 모르지만,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 만큼 “정말 저랬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마지막 대결 장소인 세종로 장면이 대표적이다.
오랜 공방 끝에 반란군의 승리로 귀결된 직후 이태신은 부하들에게 “아무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한 뒤 혼자서 바리케이드를 뚫고 진압군을 향해 나아간다. 피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반란군 진영에 다가간 이태신은 전두광에게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고는 순순히 붙잡힌다. 전두광은 부하들에게 다가오는 이태신을 “쏘지 말라”고 명하고, 그를 소리내어 비웃는 부하들에게는 “웃지 마라”고 잘라 말한다.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는 몰라도, 극히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역시나 100% 창작된 장면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이 장군, 난 말입니다. 이참에 우리 둘이 친해볼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좀 있어요. 뭐 이런 어려운 시국에 서로 같은 편하면 큰 힘이 되고 그럴 텐데요."(전두광)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극을 이끄는 두 축인 전두광(황정민 분)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과 곧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될 이태신(정우성) 소장이 처음 대면할 때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자 영화 제목이기도 한 ‘서울의 봄’이란 말이 대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태신이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 아닌가요?"하고 대꾸하자 전두광이 “와~그렇습니까?” 하며 실없이 웃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시나리오를 각색한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군사 쿠데타, 이른바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최초의 극영화다. 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회고록이나 평전, 기사 등 자료는 많지만 정작 군사반란이 본격 전개된 이날 밤 ‘운명의 9시간’ 동안, 반란군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와 모의가 오갔는지, 진압군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김 감독은 사건의 큰 틀은 사실(史實)에 맞게 구축하되, 주요 인물들의 성격과 구체적인 행적은 영화적으로 재창작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 각색의 큰 방향을 잡았다. 사건을 잘 모르는 관객들까지 12.12 현장 속으로 빠져들도록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극적 재미를 위해 허구를 가미한 극영화의 특성상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단 김 감독이 재창작한 범위에 따라 변형의 정도가 다르다. 전두광과 그의 최측근이자 친구이면서 함께 반란군을 이끄는 노태건(박해준)은 이름만 들어도 두 전직 대통령이 안 떠오를 수 없다. 반면 연출 의도에 따라 전두광과 정반대의 유형으로 재창조된 이태신은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영화는 10.26 사건 직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계엄법에 따라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가 계엄사령관,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는 것으로 시작된다. ‘12.12 전사(前史)’가 전개되는 초반부는 정상호와 전두광의 갈등과 대립이 주를 이룬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중·후반부는 전두광과 이태신의 공방이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배우들의 호연이 잘 짜인 시나리오의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대머리 가발을 뒤집어쓴 황정민은 ‘탐욕의 아이콘’이자 ‘권모술수의 대가’인 전두광을 제 옷 입은 듯 연기한다. 때때로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이는 하나회 무리를 휘어잡는 장면에선 보는 이를 오싹하게 할 만큼 카리스마가 넘친다. 정우성은 감독이 요구하는 모범적인 군인 정신의 모습을 안정적으로 표출한다. 정상호 역의 이성민, 노태건 역의 박해준, 이태신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는 헌병감 역의 김성균과 특전사령관 역의 정만식 등 조연들의 존재감도 두드러진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의상과 무기, 소품뿐 아니라 포격전과 총격전, 군사적 대치 등 고증을 거쳐 그날의 현장을 가급적 사실대로 재현한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양 진영의 설득과 겁박, 폭력으로 공수가 수시로 뒤바뀌는 전개는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더없이 치열하고 중요했던 그날의 긴박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묘사해 깊은 여운과 함께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다만 지나치게 극적인 설정과 캐릭터가 영화적 재미를 더했을 지는 모르지만,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 만큼 “정말 저랬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마지막 대결 장소인 세종로 장면이 대표적이다.
오랜 공방 끝에 반란군의 승리로 귀결된 직후 이태신은 부하들에게 “아무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한 뒤 혼자서 바리케이드를 뚫고 진압군을 향해 나아간다. 피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반란군 진영에 다가간 이태신은 전두광에게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고는 순순히 붙잡힌다. 전두광은 부하들에게 다가오는 이태신을 “쏘지 말라”고 명하고, 그를 소리내어 비웃는 부하들에게는 “웃지 마라”고 잘라 말한다.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는 몰라도, 극히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역시나 100% 창작된 장면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