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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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인상은 비슷하다. 대개 검정색 양복이나 드레스를 차려입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 '거장'이나 '대가', '콩쿠르 스타'란 수식어가 붙은 연주자들은 예외 없이 이런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손짓 하나, 표정 하나 튀는 법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클래식 음악계라고 해도 '아웃라이어'가 없을 리 없다. 자유로운 복장은 기본. "연주자는 오직 무대에서만 말한다"거나 "앙코르는 2~3곡 정도가 적당하다"는 통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치 사회활동가처럼 무대 밖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앙코르로 무려 18곡을 연주하는 등 기존 질서를 깨뜨리기도 한다.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연주자들이 잇따라 한국 무대에 선다. '사회 비평가'란 별명이 붙은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36)와 '대중가수보다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유자 왕(36)이 주인공이다.

○비평가 레비트…팬데믹의 좌절 표현

이고르 레비트. (c) Peter Meisel / 빈체로 제공
이고르 레비트. (c) Peter Meisel / 빈체로 제공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연주를 하는 레비트는 독특한 캐릭터의 음악가다. 정장이 아닌 평상복을 입구 무대에 오르는 그는 '유러피안, 시민, 피아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강조한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상대측과 논쟁하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음악 외엔 입을 닫는 거의 모든 클래식 아티스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팬데믹 시기에는 트위터로 53차례의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을 선보이는가 하면, 네 줄의 악보를 840번 반복하는 곡인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짜증)을 16시간동안 연주해 온라인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의 좌절을 표현하는 취지로, '소리없는 비명'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이런 '기행'만으론 레비트가 지금 같은 명성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건 뛰어난 피아노 실력 때문이다. 레비트는 빈 필, 뉴욕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최정상급 악단과 손을 맞추는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다.

이번 공연에서는 부소니가 편곡한 브람스의 여섯 개의 합창 전주곡과 재즈 작곡가인 프레드 허쉬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 등을 들려준다. 22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을 연주한다.

○'인플루언서' 유자 왕…즉흥성 강조

25일 내한하는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36)은 레비트와 전혀 다른 캐릭터다. 리모와, 롤렉스, 라메르 등 명품 브랜드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는 그는 전세계가 인정하는 클래식계 슈퍼스타다. 미니스커트, 하이힐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모습으로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충격을 줬다.
유자 왕. (c)Kirk Edwards / 마스트미디어 제공
유자 왕. (c)Kirk Edwards / 마스트미디어 제공
남 다른 건 의상만이 아니다. 유자 왕은 작년 내한 공연에서 앙코르로 18곡을 쏟아냈다. "유자 왕이 보너스로 '3부 공연'을 선물했다"는 말이 클래식 음악계에 돌 정도였다.

그만큼 왕은 연주 현장에서의 즉흥성을 매우 중시하는 연주자로, 프로그램도 사전에 공개하지 않기도 한다. 그는 끊임없는 음악활동과 공연, SNS 활동으로 클래식 음악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 소속 아티스트이기도 한 유자 왕은 최근에 발매한 '아메리칸 프로젝트' 음반으로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릴레이·마라톤…다양해진 공연

공연장과 기획사들도 다양한 연주 컨셉트로 색다른 클래식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 마포문화재단은 내달 5~7일 한국·대만·일본 등 아시아 3국의 실력파 피아니스트들의 릴레이 공연을 연다. 각 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도현, 킷 암스트롱, 타케자와 유토가 나선다.

킷 암스트롱 공연 2부에서는 이들 셋이 한 대의 피아노로 같이 연주한다. 이들은 라흐마니노프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를 통해 아시아 3국의 화합을 완성할 예정이다.
스콧 브라더스 왼쪽이 동생 톰, 오른쪽이 조너선. 롯데문화재단 제공
스콧 브라더스 왼쪽이 동생 톰, 오른쪽이 조너선. 롯데문화재단 제공
'듀오'로 이색 연주를 선보이는 이들도 있다.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스콧 브라더스 듀오 이야기다. 영국에서 온 이들은 피아노, 오르간, 하모니움(인도의 건반악기) 등 다양한 건반악기 조합으로 함께 연주한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에 자신들의 연주 영상을 올리며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음악회는 재미있어야 하고, 모두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스콧 브라더스의 철학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너선 스콧이 오르간 연주를, 톰 스콧이 피아노 연주를 맡는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드뷔시 ‘달빛’,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등 유명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이진상 윤소영 듀오 연주. 롯데문화재단
이진상 윤소영 듀오 연주. 롯데문화재단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도 오는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특별한 듀오 연주를 선보인다. 15년지기 친구인 이들은 현재 롯데 인하우스 아티스트로 활동중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아트 디렉터 차진엽과 협력해 클래식과 미디어 공연의 콜라보 무대를 꾸민다.

'마라톤 프로젝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는 지난 9월부터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한국 대표 피아니스트 3인(신창용·백혜선·박재홍)이 각각 프로코피예프, 브람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마치 마라톤처럼 장시간 연주하는 게 콘셉트다. 신창용과 백혜선에 이어 내달 17일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 박재홍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1번부터 5번까지 다섯 곡을 연달아 연주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같은달 러시아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도 KBS 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다섯 곡을 나눠서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은 앞서 한국 피아니스트 임현정도 이달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바 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