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싱가포르에 지은 글로벌혁신센터(HMGICS) 내 첨단 제조 시설엔 ‘자동차 공장의 상징’인 컨베이어벨트가 없다. 대신 타원 모양의 독립 작업장 ‘셀(cell)’에서 한 대씩 맞춤형으로 차를 만든다. 자율주행 로봇이 차종별 부품을 셀까지 실어 나른다. 회사 관계자는 “셀 시스템으로 HMGICS에선 10개 차종까지 동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 컨베이어벨트→도요타 '저스트인타임'→여러 차종 동시제작 '셀생산'
자동차산업이 ‘다차종 유연 생산’ 체제로 변하고 있다. 현재까지 자동차 생산 방식은 1910년대 미국 포드가 도입한 ‘연속 흐름 생산’ 시스템 기반이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각 공정을 이동하는 자동차에 작업자가 부품을 장착하는 식이다. 한자리에 고정된 차체에 작업자가 부품을 일일이 가져가 조립하던 종전 방식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이 방식으로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1900년 200여 대에서 1920년대 초 2만여 대로 100배 급증했다. 대량 생산으로 자동차 대중화도 가능해졌다.

포드식 생산 체제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게 도요타의 ‘린(lean) 생산’ 방식이다. 부품을 쌓아두는 대신 시장 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조달해 원가를 낮추는 ‘적시 생산(JIT:Just In Time)’ 시스템을 표준화했다. 군살이 없다는 말뜻처럼 재고를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 생산 방식도 도요타가 정립했다. 대량 생산과 다차종 생산을 결합하려는 시도의 산물이었다.

이제 자동차업계는 아예 컨베이어벨트 없애기에 나섰다. 자율주행차, 목적기반차량(PBV) 등 시장의 수요에 맞춤형으로 대응하려면 유연성이 떨어지는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컨베이어벨트는 소량 차종을 대량 생산하기엔 좋지만 차종 배분과 생산 조정, 결함 대응 등에는 불리하다. 차종 하나만 바꾸고 싶어도 라인 전체를 멈추고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유연 생산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면서 부품 수가 줄고 모듈화가 쉬워진 것도 한몫했다. 테슬라와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등은 컨베이어벨트 대신 무인운반차량(AGV)에 자동차를 한 대씩 올려 조립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도요타도 전기차가 센서를 따라 스스로 공장을 돌며 조립되는 ‘자체 추진 조립 라인’을 최근 선보였다. 도요타는 이 방식으로 신차 투입이 유연해지고 생산 준비 기간과 투자비, 공정을 모두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