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출제위원이 택한 'K-판타지소설'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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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
작자미상 <김원전>
작자미상 <김원전>
김원이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어른들에게는 낯선 인물이지만 며칠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수험생이라면 틀림없이 이 사내의 이름을 알겁니다. 202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 조선시대 영웅소설 <김원전>이 출제됐기 때문이죠. 올해 EBS 수능 모의고사 교재에 실려 있어 '예상문제'였던 작품이라고 하네요.
<김원전>은 정확히 언제, 누가 창작한 작품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소설 독자들은 세책점이라는 일종의 소설 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소설책을 빌려 읽었어요. 소설이 귀한 대접을 받던 시대가 아니라 작가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놓았어요. 때로는 다른 작품을 베끼기도 하고요.
요즘 웹소설과 비슷하죠? 사람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웹소설을 한 편씩 사서 읽다 보니, 웹소설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계속해서 끌어야만 하죠.
조선시대 소설 중에서도 <김원전>은 '종합소설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당대 유행했던 온갖 이야기가 다 녹아 있어요. 기본적으로 영웅 소설인데, 지하국도 나오고 용궁도 나오고 변신도 해요. 조선에서 창작된 소설이지만 배경은 명나라 헌종 시절이에요. 아이가 없어 슬퍼하던 좌승상 김규와 부인 유씨는 선녀가 옥동자를 안겨주는 꿈을 꾼 뒤 아들을 낳아요. 오색빛깔 구름이 집을 감싸면서 축복 속에 아이를 낳는데, 아이 모습이 기이해요. 마치 수박처럼 검고 둥근 몸에 입 대신에 부리가 달렸어요. 이 아이 이름이 바로 김원입니다.
김원이 10살이 되자 신선이 나타나 "이제 네가 천상에서 저지른 죄를 다 씻었으니 허물을 벗겨주겠다"고 해요. 의젓한 소년이 된 김원은 활도 잘 쏘고 영특하고 용감한 데다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깊어요.
어느날 머리 아홉 달린 아귀가 공주 셋을 납치하자 김원은 지하국으로 가서 공주들을 구출해냅니다. 도중에 배신 당해 죽을 위기를 겪지만, 오히려 그 위기 덕에 용궁으로 가서 아름다운 용녀(용왕의 딸)와 결혼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김원과 용녀는 김원의 부모를 만나러 육지로 갔다가 주막 주인에게 강도를 당해요. 용궁의 보배인 연적을 빼앗기고 살해당합니다. 그랬다가 다시 기적처럼 부활해요.
집으로 돌아간 김원은 부모와 눈물의 재회를 합니다. 김원의 은혜를 갚겠다며 김원의 부모를 봉양하고 있던 셋째 공주도 부인으로 맞고요. 김원과 두 부인은 여러 자손과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구름처럼 사라집니다.
혹시 중간중간 익숙하단 기분 느끼지 않으셨나요? <김원전>에는 여러 인기 작품의 흔적이 보여요. 금방울 모습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금방울전>과 비슷하고, 주인공이 흉한 허물을 벗고 변신하는 대목에선 <박씨전>이 떠오릅니다. 괴물의 소굴로 찾아가서 괴물을 물리치고 여인을 구출해 혼인하는 내용은 <홍길동전>에도 나오는 장면이에요.
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중 하나는 고난과 행복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이야기거든요. 수능 출제위원들이 많은 고전소설 중에서 <김원전>을 고른 데에는 이런 까닭도 있지 않을까요.
올해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였죠. 양광모 시인의 시 '가장 넓은 길' 중 일부였습니다. 이 시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 눈이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고단한 수험 생활 끝에 수능을 치렀지만 모두가 결과에 만족할 수는 없겠죠. 수능이 끝났다고 어렵고 험난한 일이 끝난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날마다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는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도 행복도 희망도 있을 테지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조선시대 소설 독자들은 세책점이라는 일종의 소설 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소설책을 빌려 읽었어요. 소설이 귀한 대접을 받던 시대가 아니라 작가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놓았어요. 때로는 다른 작품을 베끼기도 하고요.
요즘 웹소설과 비슷하죠? 사람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웹소설을 한 편씩 사서 읽다 보니, 웹소설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계속해서 끌어야만 하죠.
조선시대 소설 중에서도 <김원전>은 '종합소설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당대 유행했던 온갖 이야기가 다 녹아 있어요. 기본적으로 영웅 소설인데, 지하국도 나오고 용궁도 나오고 변신도 해요. 조선에서 창작된 소설이지만 배경은 명나라 헌종 시절이에요. 아이가 없어 슬퍼하던 좌승상 김규와 부인 유씨는 선녀가 옥동자를 안겨주는 꿈을 꾼 뒤 아들을 낳아요. 오색빛깔 구름이 집을 감싸면서 축복 속에 아이를 낳는데, 아이 모습이 기이해요. 마치 수박처럼 검고 둥근 몸에 입 대신에 부리가 달렸어요. 이 아이 이름이 바로 김원입니다.
김원이 10살이 되자 신선이 나타나 "이제 네가 천상에서 저지른 죄를 다 씻었으니 허물을 벗겨주겠다"고 해요. 의젓한 소년이 된 김원은 활도 잘 쏘고 영특하고 용감한 데다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깊어요.
어느날 머리 아홉 달린 아귀가 공주 셋을 납치하자 김원은 지하국으로 가서 공주들을 구출해냅니다. 도중에 배신 당해 죽을 위기를 겪지만, 오히려 그 위기 덕에 용궁으로 가서 아름다운 용녀(용왕의 딸)와 결혼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김원과 용녀는 김원의 부모를 만나러 육지로 갔다가 주막 주인에게 강도를 당해요. 용궁의 보배인 연적을 빼앗기고 살해당합니다. 그랬다가 다시 기적처럼 부활해요.
집으로 돌아간 김원은 부모와 눈물의 재회를 합니다. 김원의 은혜를 갚겠다며 김원의 부모를 봉양하고 있던 셋째 공주도 부인으로 맞고요. 김원과 두 부인은 여러 자손과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구름처럼 사라집니다.
혹시 중간중간 익숙하단 기분 느끼지 않으셨나요? <김원전>에는 여러 인기 작품의 흔적이 보여요. 금방울 모습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금방울전>과 비슷하고, 주인공이 흉한 허물을 벗고 변신하는 대목에선 <박씨전>이 떠오릅니다. 괴물의 소굴로 찾아가서 괴물을 물리치고 여인을 구출해 혼인하는 내용은 <홍길동전>에도 나오는 장면이에요.
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중 하나는 고난과 행복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이야기거든요. 수능 출제위원들이 많은 고전소설 중에서 <김원전>을 고른 데에는 이런 까닭도 있지 않을까요.
올해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였죠. 양광모 시인의 시 '가장 넓은 길' 중 일부였습니다. 이 시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 눈이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고단한 수험 생활 끝에 수능을 치렀지만 모두가 결과에 만족할 수는 없겠죠. 수능이 끝났다고 어렵고 험난한 일이 끝난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날마다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는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도 행복도 희망도 있을 테지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