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후 PTSD로 병가 내…촬영기기 최초 발견 교사도 병가

최근 제주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한 학생이 수사받는 가운데 학교 측이 피해 당사자일 수도 있는 여교사에게 해당 학생을 가정을 방문하도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정방문을 다녀온 교사와 불법촬영 기기를 최초 발견한 교사는 심리적 충격과 2차 피해를 호소하며 출근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피해자일수도 있는데…여교사에 불법촬영 학생 가정방문 시켜
제주교사노동조합은 22일 성명서를 내 "A고교가 학교 안 화장실에 10회에 걸쳐 불법촬영 기기를 설치한 학생에 대해 피해 당사자일 가능성이 있는 여교사 2명에게 가정방문 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학교에서는 앞서 지난달 18일 체육관 여자 화장실에서 교사가 바닥에 놓인 갑티슈 안에 불법촬영 기기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으며, 이후 B군이 자수했다.

노조 등에 따르면 A고교 교감은 사건 발생 후 지난달 26일께 B군 담임인 C교사와 학생부장 등 여교사 2명에게 학교 여자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한 학생 B군의 가정방문을 지시했다.

두 여교사는 가정방문 직전 차에서 '혹시나 가해 학생이든 아버지든 달려들면 한 명이라도 빠져나와서 112에 신고하자'고 하는 등 충격과 공포를 겪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교직 3년 차인 C교사는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3개월 진단을 받고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학교전담경찰관(SPO) 동행 협조도 없이 여교사들에게 피의자인 남학생과 학생 아버지만 있는 집에 방문하도록 지시했다"고 문제를 규탄했다.

이어 "교감은 '나는 보고받는 입장이라 가정방문을 갈 수 없다'고 했고, 이후 '학교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본인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는 여교사를 보호하지 않고 2차 피해 위험에 노출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피해 교사가 공무상 병가 요청도 하지 못해 일반 병가를 신청하고 사비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등 학교와 교육청 차원의 보호조치와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라고 노조는 주장했다.

또한 해당 불법 촬영기기를 처음 발견한 D교사 역시 사건의 충격과 사후에 받은 2차 피해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D교사는 노조를 통해 "학교 측은 사건 내용이나 처리 과정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고, 해당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가자 제보자를 색출하려고 했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이 사건으로 전국의 교사들은 강력범죄에 해당하는 성폭력 사건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일해야 하는 데 대해 충격과 분노를 느낀다"며 교장·교감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 피해 교사에 대한 공무상 병가와 치료 지원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해당 학교장은 "이미 여성 교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소통이 미흡했고 불안함을 주게 돼 죄송하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며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 사과는 당연히 할 것이고, 더이상 선생님들이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병가를 낸 교사를 포함해 모든 교사들에게 심리상담 등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이미 안내했다고 전했다.

여교사 2명이 가정방문을 가게 된 것에 대해서는 "학생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해서 확인차 방문하도록 했다"며 "해당 학생이 담임인 C교사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상황이고, 학생부장은 업무 당사자여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청은 피해 교사들에 대한 심리 상담과 마음치유 프로그램, 교육청과 연계된 병원 심리치료를 안내하는 등 피해 교원 보호를 위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B군은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