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싱가포르에 글로벌 혁신센터를 구축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차는 이 센터에 기존 대량생산 방식의 핵심인 컨베이어벨트를 없애고 소규모 작업장인 셀에서 근로자 한 명과 조립 로봇이 들어가 맞춤형 차량을 만들도록 했다. 로보택시, 항공모빌리티 등 현대차의 미래 전략 제품군도 이곳에서 시험 생산을 거친다. 현대차는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이런 중차대한 테스트베드를 왜 한국이 아니라 땅덩어리도 작은 도시국가에 마련했을까.

싱가포르는 물류·금융의 대표적인 글로벌 허브 국가인 데다 배후에 거대한 동남아시아 시장이 있다. 기업 투자에 대한 각종 혜택도 남다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전 세계 모빌리티 분야의 혁신 기업들이 몰려드는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 싱가포르는 나라 전체가 거대한 모빌리티 실험장이다. 자동차 회사는 물론 인공지능(AI), 양방향 통신, 라이다 등 모빌리티 인프라 분야의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도심 곳곳에서 테스트를 벌인다. 독일의 항공모빌리티 회사인 볼로콥터는 에어택시를 띄우고,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NXP반도체는 칩 성능을 검증하고, BMW는 자율주행 실험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혁신 산업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담대한 인식이다. 2019년 영토의 절반을 뚝 떼어내 자율주행 실험 공간으로 삼았을 정도다. 항공모빌리티 관련 규제도 기업의 요청에 앞서 정부가 먼저 풀고 있다. 여기에 아시아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꼽히는 난양공대와 싱가포르국립대가 인재 공급원 역할을 한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그동안 모빌리티 분야에 규제 딱지를 덕지덕지 붙여온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싱가포르의 그랩이 동남아 최대 모빌리티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 정부는 비슷한 서비스를 가로막아왔다. 2014년에 우버가, 2018년엔 카풀 앱이, 2020년엔 타다가 철퇴를 맞았다. 그뿐인가. 자율주행 운송산업은 기존 운송업계의 반발에 발목을 잡히고 있고, 전기차 충전 인프라 규제 개선도 더디다. 셀 방식의 차량 생산 실험도 한국에서 했다면 노동계가 어떤 트집을 잡았을지 눈에 선하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