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삼성물산 합병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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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7년, 삼성맨들의 최후진술
진솔하고 가슴 아픈 내용 '먹먹'
모두 "합병 불가피" 소신 피력
국정농단과 연결된 사법적 단죄
투옥, 사면 등으로 사실상 일단락
허업 같은 법정 공방 끝내야
조일훈 논설실장
진솔하고 가슴 아픈 내용 '먹먹'
모두 "합병 불가피" 소신 피력
국정농단과 연결된 사법적 단죄
투옥, 사면 등으로 사실상 일단락
허업 같은 법정 공방 끝내야
조일훈 논설실장
인간의 기억은 위태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부가 흐릿해진다. 혹여 기억을 흔드는 반대의 주장이 쏟아지면 비교적 또렷한 장면들도 의심과 망각의 어둠으로 빠져든다. 타인의 불신이 운명론적 체념과 맞물리면 진실은 어느새 라쇼몽의 안갯속으로 흩어진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던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의 결정판이었던가, 아니면 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내놓으라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기습에 맞선 승부수였던가. 그것도 아니면, 건설사업 부실과 호주 광산 투자 실패에 휩싸인 물산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나. 이제 오래전 그 사건의 수순과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당시 취재 일선에 있었던 필자조차 복잡하게 뒤섞인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합병 과정의 숨가쁜 호흡과 거센 찬반 논란을 떠올릴 뿐이다.
그 오랜 사건의 1심 마지막 공판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이 ‘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명명한 사건으로 공판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세상은 거꾸로 뒤집어졌다. 과거 삼성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검사는 이제 법무장관으로 엘리엇과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을 다투고 있다. 엘리엇 측에 한 푼의 세금도 내줄 수 없다는 법무부는 이제야 “물산 합병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는 삼성 측 방어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위치와 역할에 따라 생각과 주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전복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정농단 재판으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이 회장은 “기업활동에 전념해 국민경제에 기여해 달라”는 여론에 따라 양대 정부에 걸쳐 가석방과 사면을 받았다. 더욱이 검사 출신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년 전 검찰수사권조정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받아들였더라면 지금 재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법조계는 이번 재판이 허업(虛業) 같은 법률 전문가들의 공방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검찰은 경주마처럼 무작정 달린다. 그게 많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이 회장 등에 대한 구형량(자본시장법 위반 등)을 당초 예상보다 늘렸다. 검찰은 최후진술에서 ‘반칙의 초격차’라는 표현까지 들고나왔다. 이 말이 경제계에 미친 반향은 제법 컸다. 초격차라는 단어가 삼성식 경영용어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성기를 이끌었던 권오현 전 회장이 2018년 <초격차>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간 말이다. 사법적 단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화법이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언어로 사건을 조롱하고 희화화한 것은 선을 넘은 느낌이다. ‘1등 기업 삼성’ ‘살아있는 경제 권력’ 등을 활용한 공격도 다분히 비사법적이었다.
이 회장과 함께 고초를 겪은 전직 삼성 경영진의 최후진술은 진솔하고 절절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 김신·최치훈·이영호 전 삼성물산 사장 등 10여 명은 이날 오후 6시50분부터 8시까지 각자 준비한 원고를 통해 답답함과 회한 어린 심경을 토해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어떤 불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았고, 100명이 넘는 그룹 조직에서 은밀하게 추진할 수도 없으며, 합병이 없었더라면 물산은 지금처럼 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검찰은 자신들이 짜놓은 유죄 시나리오에 반하는 사실은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요지였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김신 전 사장의 얘기였다. “저는 소신껏 합병에 찬성했고 비록 그 때문에 재판받고 있지만 지금도 제가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회사와 주주를 위해서라면 같은 결정을 할 것입니다.” 삼성 수사가 시작된 지 8년, 국정농단 재판 기점으로는 벌써 7년이 지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들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해 왔다. 서슬 퍼런 특검 수사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수감생활, 인생 정점에서 추락한 절망감과 불의의 암 투병 속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했다. 이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맞출 이유도 없다. 그러기엔 진실을 소명하려는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김 전 사장 최후진술의 진정성을 믿는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던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의 결정판이었던가, 아니면 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내놓으라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기습에 맞선 승부수였던가. 그것도 아니면, 건설사업 부실과 호주 광산 투자 실패에 휩싸인 물산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나. 이제 오래전 그 사건의 수순과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당시 취재 일선에 있었던 필자조차 복잡하게 뒤섞인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합병 과정의 숨가쁜 호흡과 거센 찬반 논란을 떠올릴 뿐이다.
그 오랜 사건의 1심 마지막 공판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이 ‘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명명한 사건으로 공판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세상은 거꾸로 뒤집어졌다. 과거 삼성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검사는 이제 법무장관으로 엘리엇과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을 다투고 있다. 엘리엇 측에 한 푼의 세금도 내줄 수 없다는 법무부는 이제야 “물산 합병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는 삼성 측 방어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위치와 역할에 따라 생각과 주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전복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정농단 재판으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이 회장은 “기업활동에 전념해 국민경제에 기여해 달라”는 여론에 따라 양대 정부에 걸쳐 가석방과 사면을 받았다. 더욱이 검사 출신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년 전 검찰수사권조정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받아들였더라면 지금 재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법조계는 이번 재판이 허업(虛業) 같은 법률 전문가들의 공방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검찰은 경주마처럼 무작정 달린다. 그게 많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이 회장 등에 대한 구형량(자본시장법 위반 등)을 당초 예상보다 늘렸다. 검찰은 최후진술에서 ‘반칙의 초격차’라는 표현까지 들고나왔다. 이 말이 경제계에 미친 반향은 제법 컸다. 초격차라는 단어가 삼성식 경영용어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성기를 이끌었던 권오현 전 회장이 2018년 <초격차>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간 말이다. 사법적 단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화법이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언어로 사건을 조롱하고 희화화한 것은 선을 넘은 느낌이다. ‘1등 기업 삼성’ ‘살아있는 경제 권력’ 등을 활용한 공격도 다분히 비사법적이었다.
이 회장과 함께 고초를 겪은 전직 삼성 경영진의 최후진술은 진솔하고 절절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 김신·최치훈·이영호 전 삼성물산 사장 등 10여 명은 이날 오후 6시50분부터 8시까지 각자 준비한 원고를 통해 답답함과 회한 어린 심경을 토해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어떤 불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았고, 100명이 넘는 그룹 조직에서 은밀하게 추진할 수도 없으며, 합병이 없었더라면 물산은 지금처럼 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검찰은 자신들이 짜놓은 유죄 시나리오에 반하는 사실은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요지였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김신 전 사장의 얘기였다. “저는 소신껏 합병에 찬성했고 비록 그 때문에 재판받고 있지만 지금도 제가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회사와 주주를 위해서라면 같은 결정을 할 것입니다.” 삼성 수사가 시작된 지 8년, 국정농단 재판 기점으로는 벌써 7년이 지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들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해 왔다. 서슬 퍼런 특검 수사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수감생활, 인생 정점에서 추락한 절망감과 불의의 암 투병 속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했다. 이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맞출 이유도 없다. 그러기엔 진실을 소명하려는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김 전 사장 최후진술의 진정성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