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기의 개똥法학] 사법부의 지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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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기의 개똥法학] 사법부의 지혜를 기다리며](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07.32347273.1.jpg)
대법원장 공백의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궐위되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선임대법관이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대행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10월 대법관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고, 회의 결과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내년 1월 초 퇴임하는 대법관 2명의 후임 제청은 하지 않기로 의견이 모였다. 신임 대법관 제청 권한은 헌법상 대법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기 전보인사 및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권한대행이 정기 전보인사에서 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고법판사 등 발탁성 인사까지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심리를 하는 것에서 나아가 재판장으로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서도 견해가 나뉜다.
![[민철기의 개똥法학] 사법부의 지혜를 기다리며](https://img.hankyung.com/photo/202311/AA.35141411.1.jpg)
법원마저 與野 정쟁 희생양 되면 안돼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인사청문회는 개인신상에 대한 흠집내기식 검증보다는 대법원장으로서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야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더는 장기화되지 않도록 조속히 인사청문회 일정에 합의해야 한다. 법원마저 여야 정쟁의 희생양이 돼서는 곤란하다.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이 두루 신망이 두텁고, 정치적 성향도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필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대법관이던 조 후보자를 여러 차례 대면한 적이 있는데, 공사 구분이 명확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법관으로 기억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조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 지금까지 대통령이 한 인사 중 가장 잘한 인사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고, 대통령이 아무런 개인적 인연이 없는 조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기존 인사 스타일과 달라진 유의미한 변화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대법원장 '독배' 될 수 있는 엄중한 상황
현재 사법부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신임 대법원장에게는 재판 지연 문제 해결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 상고제도 개편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문제의 진단과 해법에 관해서는 사법부 구성원 사이에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사법부가 직면한 문제 중에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시대 변화나 세대의 문제도 있다. 이제 과거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으로는 사법부를 이끌기 어렵다. 대법원장직이 사법부의 수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성배’이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독배’가 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인 것이다.대법원장직을 한 차례 고사한 뒤 수락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조 후보자가 “한 번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법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라고 답했다는 부분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미국의 윤리학자이자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부어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마땅히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유명한 기도문을 남겼다. 신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부 구성원들에게도 바로 이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법부의 지혜는 법의 울타리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철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