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영방송 이사회 확대, 지배구조 개선 아닌 개악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변경을 위한 이른바 방송3법 개정안이 거대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지금의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는 여야 합의를 거쳐 2000년부터 20년 넘게 시행돼 왔는데, 하루아침에 전격 변경된 것이다.

야당은 공영방송 이사의 수를 늘리고 그 참여를 다양화해 어떤 정치 세력도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사장을 선출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법 개정의 취지를 밝혔다. 또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 정치적 후견주의를 벗어나도록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안의 정당성을 수려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새로운 제도가 실행 과정에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게 하는 일이다.

야당은 공영방송 이사 수 확대로 다양성과 전문성을 보완했다고 주장한다. 다양성은 방송업계 종사자의 참여 확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제·교육·문화·법률 등 사회 각 분야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국민 대표성을 확장할 때 이뤄질 수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 미디어 관련 학회와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방송 직능단체에서 전체 이사 21명의 4분의 3이 넘는 16명을 뽑도록 했는데, 다양성 제고가 아니라 방송 미디어가 과잉 대표되는 문제가 있다.

이사 수를 늘리고 참여를 다양화함으로써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나겠다고 공언하지만, 오히려 이를 더욱 심화 내지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론되는 방송 직능단체들은 정치 성향이 늘 한쪽에 치우진다는 지적을 많이 받던 곳이다. 더 교묘한 정치적 후견주의가 팽배해져 공영방송 이사회가 기존 정치판의 행태를 좇아 반목과 질시의 난장판이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정치적 후견주의가 더 공고해진 21명으로 이사진이 확대 구성되면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이사회의 비효율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이 있지만 산으로 가기도 전에 배가 물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작금의 우리 공영방송은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미디어와 콘텐츠 그리고 신기술이 결합하는 등 콘텐츠-미디어산업이 융합 구조로 변모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현실에서 너무나도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콘텐츠 시장은 우리나라의 약 14배, 디지털 미디어 시장은 약 7배가 넘는 수준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고 숙제는 산적해 있다. 공영방송이 대한민국 미디어산업의 맏형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한 서비스·재원·인력 구조까지 아우르는 청사진이 먼저 제시돼야 하는데 그런 공론의 장이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대한민국 공영방송이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피며 다시 건설적 논의를 시작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