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초록보물'이 품은 천년의 비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Cover Story
우리가 몰랐던 스페인 올리브 세계
우리가 몰랐던 스페인 올리브 세계
지중해에는 초록의 보물이 산다. 인류가 대량 재배를 시작한 최초의 과수이자 지중해 일대의 문명과 산업을 일으켜 풍요와 번성을 가져온 ‘올리브 열매’다.
올리브 나무는 강하다. 복숭아의 사촌쯤 되는 이 나무의 수명은 500~700년, 어떤 곳에선 수천 년을 산다. 아무리 더워도, 물이 부족해도, 땅이 얼어붙어도 올리브는 견뎌낸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살아남은 올리브 나무는 오랜 시간 부와 장수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 신화 속 올리브 나무는 첫 번째 언어를 창조한 여신 아테나가 땅을 내려치며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수천 년을 지나오며 지중해 식단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보물인 올리브는 이제 한국인에게도 익숙하다. 유럽의 식문화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온 올리브 오일은 이제 집집마다 두고 쓰는 필수 식재료가 됐다. 연간 1만t 이상이 수입되며 매년 늘고 있다고. 올리브 열매는 와인이 대중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여러 품종을 비교해가며 맛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궁금했다. 신화와 이야기로 둘러싸인 ‘오래된 것들’이 대개 그렇듯,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에 관해서도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정보가 넘쳐난다. 당장 올리브유만 해도 그렇다. 어떤 품종에서 무슨 맛이 나는지, 정말로 가열하는 요리엔 쓰면 안 되는 건지, 녹색과 노란색 올리브유는 뭐가 다른 건지…. 스페인에서 11년째 올리브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한국인을 알게 됐다. 양으로 승부하는 스페인 남부와 달리 뛰어난 품질을 자부하는 스페인 중부의 톨레도. 라 구아르디아라는 산속에서 3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심고 가꾸는 여인이다. 올리브유에 꽂혀 현재 스페인 공인 테이스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번 웨이브는 그가 들려주는 ‘올리브와 올리브유의 모든 것’이다. 당신이 더 이상 과장된 광고 속에 헤매지 않기를, 지중해에서 온 그 귀한 한 방울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기원전 14세기 투탕카멘 무덤서 발견
건강 상징으로 왕과 귀족이 즐겨먹어
스페인이 글로벌 생산량의 절반 차지
오히블랑카 품종 '하얗고 예쁜 느낌'
코르니카브라는 염소 뿔처럼 뾰족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며 11년째 올리브를 키우는 중이다. 스포츠 에이전트로 스페인에 건너와 좋은 선수를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비던 20대 때. 내가 배운 건 “협상은 책상이 아니라 밥상 위에서 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좋은 선수를 찾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찾는 데 더 진심이 됐다. 그러다 올리브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아이의 아토피 때문이었다. 올리브밭을 탐험하다 스페인 국제올리브오일협회의 공식 테이스터 ‘카타도르(Catador)’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올리브 오일을 알게 된 뒤 식생활과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흔해진 올리브 오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내가 발견한 올리브 오일의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류의 역사와 올리브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며 엉뚱하게도 ‘그렇다면 사냥을 기원하던 저들의 주식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중에 올리브 열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발견된 올리브잎 화석으로 추정할 때 올리브는 약 1만2000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해왔다는 기록을 읽었기 때문이었을까.
올리브는 신화와 역사 속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된 올리브유 항아리, 노아의 방주에서 7일째 되는 날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잎, 아테네 여신이 자신을 수호신으로 선택해준 아테나 시민들에게 선물로 줬다는 올리브 나무…. 역사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올리브나무의 기원은 소아시아다.
올리브 나무는 지금 유럽을 넘어 남아프리카, 호주, 일본, 중국에서도 재배된다. 기원전 16세기부터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전역에 올리브 나무를 퍼뜨렸다. 스페인의 올리브 나무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번졌다. 스페인의 영광과 함께 ‘태양이 허용하는 모든 곳’에 올리브 나무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오래 산다. 평균 수명 500년. 평균 너비 1m, 높이 1.5m의 올리브 나무는 혹독한 여름과 척박한 겨울을 견디고도 열매를 잘 맺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힘과 젊음의 상징이었다. 올리브 오일이 건강과 장수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머리에 바르는 것뿐만 아니라 세례와 장례 등 종교의식,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올리브의 종류
국제올리브협회는 세계 23개국에서 재배되는 139종의 올리브가 생산된다고 추정한다. 그중 90%는 오일로 생산되며 나머지 10%는 테이블 올리브로 가공된다. 오일로는 단일 품종 오일이나 쿠파주(두 가지 이상의 품종으로 만든 블렌딩 오일)를 만드는데, 전 세계 올리브 생산량을 보면 스페인이 압도적 1위(50%)다. 2위와 3위가 이탈리아(10%)와 그리스(10%)다.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나는 올리브는 피쿠알이다. 모든 종류의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스페인 올리브 오일의 기준이다. 나쁘게 말하면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데 농가와 지역마다 그들의 고유성을 가진 곳이 많아 흥미롭다.
아르베키나는 알이 작고 바나나 향이 나는 올리브 오일이다. 맵고 쓴 맛이 약해서 스페인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올리브 오일이다. 물론 테이블 올리브로도 만든다. 오히블랑카는 꽃향기가 나는 올리브오일이다. 스페인어로 오하(hoja)는 잎사귀, 블랑카(blanca)는 하얀색이라는 뜻. 이 품종의 잎은 하얗다. 오일 테이스팅 수업에선 항상 ‘예쁜 느낌’의 오일이라고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코르니카브라가 있다. 스페인 중부 특산품인 코르니카브라는 뿔이라는 뜻의 코르니와 숫염소라는 뜻의 카브라가 합쳐진 이름. 염소 뿔처럼 올리브 끝이 뾰족하고 부드러운 사과 향이 난다. 아주 쓰고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맛이 매우 굵고 남성적이다.
올리브 수확 시기는
모든 농사가 그렇듯 올리브 역시 수확의 최적기를 결정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다. 품종, 기후, 올리브밭의 위치와 가지치기 유형 등 농법에 따라 매년 달라진다. 질병과 해충 등까지 감안해 열매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가장 적합한 수확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평균적으론 9월부터 11월까지가 올리브 수확 시기다. 연둣빛 녹색에서 시작해 적갈색까지 변해가는데, 9~10월 연둣빛 올리브 열매는 과일 맛의 오일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11월엔 열매의 색이 알록달록해진다. 노란색, 분홍색, 적갈색까지 다양한 색의 과수원으로 물든다. 11월 말이 되면 강렬한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서서히 변한다. 이때부턴 올리브의 향과 풍미 등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후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올리브 수확 시기는 농부만 안다. 통상 가을이지만, 다양한 변수로 인해 열매가 익는 과정에 따라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엑스트라버진 오일용 올리브는 보통 10월이나 11월에 시작해서 12월까지 수확한다. 이때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이 되는 것은 올리브 과일 무게의 10~20%에 불과하다.
엑스트라버진부터 람판테까지
올리브유는 국제올리브협회에서 엄격히 등급을 정한다. 추출 방식과 산도에 따라 결정하는데,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은 수확 후 24시간 이내 신선한 올리브의 첫 과즙이다. 화학적 수단을 쓰지 않고 기계적 방식으로, 28도 이하에서 추출한다. 산도는 0.8% 미만이어야 한다. 버진 올리브 오일은 첫 추출 오일이지만 산도가 2% 미만인 것, 람판테 올리브 오일은 산도 3.3% 이상의 결함이 있는 오일이다. 과거엔 먹지 않고 램프를 켜는 데 사용됐기 때문에 이름도 ‘lampante oil’로 지어졌다. 포마스 올리브 오일(위 세 가지 오일 추출 후 찌꺼기로 만든 오일)은 튀김 등에 이용한다.
한국에서 이제 너무 흔해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발연점이 낮아 볶거나 튀기는 요리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사실 이건 잘못됐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의 발연점은 210도다. 정제 해바라기씨 오일이 220도. 가정용 화구의 불 세기로는 150도 이상 가열에 어렵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도 튀김용으로 쓸 수 있다. 다만 그 비싼 오일로 튀김을 한다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녹색이 최상급인가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인간의 눈은 노란색보다 초록색이 더 좋은 것이라 인식한다고. 테이스터 공부를 할 때 색을 구분할 수 없는 파란색, 초록색 잔으로 시음했었다. 올리브 품종과 수확 시기에 따라 오일의 색깔이 다르다. 무조건 초록색이라고 최상급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쓰고 매콤하면 좋은 오일이냐”고도 묻는다. 쓰고 매운 맛은 올리브 열매의 폴리페놀 성분 때문인데 이 역시 품종과 수확 시기에 따라 함량이 다르다. 이렇게 올리브 오일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 우리를 현혹하는 잘못된 마케팅 문구도 너무 많다. 실패 없이 올리브 오일을 고르는 법을 다섯 가지 질문과 답으로 정리했다. (1)올리브 손으로 직접 딴다?
시간 오래 걸려 올리브 ‘본래 성질’ 잃어
“올리브는 과일이고 올리브 오일은 주스다.” 올리브 오일 테이스터 학교에서 첫날에 배웠다. 가장 좋은 주스를 추출하려면 가장 좋은 상태의 과일을 빨리 따서 빨리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알 한 알 손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딴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된다. 정말 그렇게 했다면, 이미 많이 산화됐을 테니 피해야 한다.
(2)전통적인 방법으로 짠다?
기계로 추출한 올리브유가 품질 더 좋아
오일 추출법은 주로 올리브 농장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인 방법도, 현대적인 방법도 있다. 올리브 오일 판매 상세 페이지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오일을 짭니다’라고 나와 있다면 마케팅을 위한 판매자의 상상력이거나 작은 농가라 정말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짜는 경우다. 솔직히 말해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최고 수준의 오일이 나오기는 어렵다. 대부분 올리브나무를 50그루 이하로 가진 소농가들은 ‘알마자라’라고 부르는 자체 오일 방앗간 시설을 구축하기 어렵다. 높은 수준의 자동화가 가능한 지역 협동조합 시설에서 추출한다. 농장에서 협동조합 방앗간까지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과 추출 기계에서의 대기 시간까지 감안하면 오일 짜는 데 하루 이상 걸릴 수 있다. 산화되기 쉽다는 얘기다. 만약 선택해야 한다면 전통 방식보다는 기계적인 방법, 냉추출 방식으로 만든 오일을 고르시길.
(3)건강을 위한 언필터 오일?
영양성분 더 많다는 건 ‘부풀려진 마케팅’
올리브 오일 추출 과정 제일 마지막이 필터링이다. 필터링은 산화를 막아 안정적으로 장기간 보관을 위한 것. 언필터 오일을 두 달 안에 섭취한다면 나쁘지 않겠지만 그 이상은 추천하지 않는다. 오일 속 부유물들이 점차 썩기 때문이다. 필터링된 오일보다 영양성분이 더 많다는 광고 역시 부풀려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4)오래된 올리브나무가 더 좋다?
비싸게 파는 곳도 있으나 진귀한 약은 아냐
실제로 1000년 된 올리브나무에서 나오는 올리브 오일을 매우 비싼 가격에 파는 곳도 있다. 특이하긴 하다만 진귀한 명약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농업계에선 그루당 50~60㎏의 열매가 맺히는 50년 미만의 올리브나무가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한 표본이다.
(5)병이냐, 알루미늄 틴이냐?
어두우면 상관없어…운송 방법이 더 중요
많은 사람이 산화된 오일은 독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햇빛과 열로부터 오일을 보호하기 위해 어두운 병 또는 틴으로 된 것을 고르고, 사용 후엔 어둡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운송 방법을 따져봐야 한다. 두 달 가까이 배로 운송하는 방법(유럽에서 한국에 오려면 50도 이상 적도를 지난다)보다 항공으로 운송한 상품을 고르는 편이 현명하다. 한 병 따서 오래도록 아껴먹지 말고 차라리 작은 병을 사서 두 달 안에 소비하는 게 좋다. 지중해 사람들은 1~2주면 엑스트라 버진 한 병을 다 쓴다.
양은 밥숟갈 반정도
혀에 펴바르는 느낌 올리브 오일 본연의 맛과 향을 느끼고 싶다면 이른 아침 공복 시간을 택하는 게 좋다. 집에 오일 테이스팅 잔이 있다면 좋지만, 와인잔이나 커피잔도 무방하다. 밥숟갈 하나 반 정도의 양을 채우고 잔을 손바닥에 감싸쥔다. 따뜻하게 데운다는 느낌으로 돌려 아로마가 충분히 퍼지면 먼저 코로 향을 맡으며 관찰한다. 오일을 입 안에 머금고 혓바닥에 모두 골고루 퍼지도록 한 다음 이는 다물고 입은 네모 모양으로 벌려 공기를 들이마신다. 혓바닥에 퍼진 올리브오일의 맛을 느껴본다. 커피나 와인 테이스팅과도 비슷하다.
올리브 오일 특유의 매운맛과 쓴맛 이외에도 과일과 풀, 견과류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일 테이스팅 과정을 이수할 때 좋은 테이스팅을 위해선 여러 가지 향기를 수집해보라고 배웠다. 무화과 잎에서 나는 향, 토마토 꼭지에서 나는 진한 냄새, 허브 풀마다 다른 향기가 있다는 즐거움을 올리브 오일 테이스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럼 오일 테이스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이 시험 문제를 틀렸는데, 그 답은 ‘편안한 마음가짐’이었다. 60세부터 미뢰와 감각이 상실된다고 하지만 배움을 위한 관심과 집중, 인내심이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당시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김보라 기자/마드리드=염수연 라퐁 대표·국제 공인 오일 테이스터
올리브 나무는 강하다. 복숭아의 사촌쯤 되는 이 나무의 수명은 500~700년, 어떤 곳에선 수천 년을 산다. 아무리 더워도, 물이 부족해도, 땅이 얼어붙어도 올리브는 견뎌낸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살아남은 올리브 나무는 오랜 시간 부와 장수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 신화 속 올리브 나무는 첫 번째 언어를 창조한 여신 아테나가 땅을 내려치며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수천 년을 지나오며 지중해 식단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보물인 올리브는 이제 한국인에게도 익숙하다. 유럽의 식문화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온 올리브 오일은 이제 집집마다 두고 쓰는 필수 식재료가 됐다. 연간 1만t 이상이 수입되며 매년 늘고 있다고. 올리브 열매는 와인이 대중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여러 품종을 비교해가며 맛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궁금했다. 신화와 이야기로 둘러싸인 ‘오래된 것들’이 대개 그렇듯,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에 관해서도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정보가 넘쳐난다. 당장 올리브유만 해도 그렇다. 어떤 품종에서 무슨 맛이 나는지, 정말로 가열하는 요리엔 쓰면 안 되는 건지, 녹색과 노란색 올리브유는 뭐가 다른 건지…. 스페인에서 11년째 올리브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한국인을 알게 됐다. 양으로 승부하는 스페인 남부와 달리 뛰어난 품질을 자부하는 스페인 중부의 톨레도. 라 구아르디아라는 산속에서 3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심고 가꾸는 여인이다. 올리브유에 꽂혀 현재 스페인 공인 테이스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번 웨이브는 그가 들려주는 ‘올리브와 올리브유의 모든 것’이다. 당신이 더 이상 과장된 광고 속에 헤매지 않기를, 지중해에서 온 그 귀한 한 방울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꽃향기는 여자, 사과향은 남자…올리브에도 '암수'가 있다
올리브의 모든 것기원전 14세기 투탕카멘 무덤서 발견
건강 상징으로 왕과 귀족이 즐겨먹어
스페인이 글로벌 생산량의 절반 차지
오히블랑카 품종 '하얗고 예쁜 느낌'
코르니카브라는 염소 뿔처럼 뾰족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며 11년째 올리브를 키우는 중이다. 스포츠 에이전트로 스페인에 건너와 좋은 선수를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비던 20대 때. 내가 배운 건 “협상은 책상이 아니라 밥상 위에서 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좋은 선수를 찾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찾는 데 더 진심이 됐다. 그러다 올리브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아이의 아토피 때문이었다. 올리브밭을 탐험하다 스페인 국제올리브오일협회의 공식 테이스터 ‘카타도르(Catador)’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올리브 오일을 알게 된 뒤 식생활과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흔해진 올리브 오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내가 발견한 올리브 오일의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류의 역사와 올리브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며 엉뚱하게도 ‘그렇다면 사냥을 기원하던 저들의 주식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중에 올리브 열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발견된 올리브잎 화석으로 추정할 때 올리브는 약 1만2000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해왔다는 기록을 읽었기 때문이었을까.
올리브는 신화와 역사 속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된 올리브유 항아리, 노아의 방주에서 7일째 되는 날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잎, 아테네 여신이 자신을 수호신으로 선택해준 아테나 시민들에게 선물로 줬다는 올리브 나무…. 역사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올리브나무의 기원은 소아시아다.
올리브 나무는 지금 유럽을 넘어 남아프리카, 호주, 일본, 중국에서도 재배된다. 기원전 16세기부터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전역에 올리브 나무를 퍼뜨렸다. 스페인의 올리브 나무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번졌다. 스페인의 영광과 함께 ‘태양이 허용하는 모든 곳’에 올리브 나무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오래 산다. 평균 수명 500년. 평균 너비 1m, 높이 1.5m의 올리브 나무는 혹독한 여름과 척박한 겨울을 견디고도 열매를 잘 맺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힘과 젊음의 상징이었다. 올리브 오일이 건강과 장수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머리에 바르는 것뿐만 아니라 세례와 장례 등 종교의식,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올리브의 종류
국제올리브협회는 세계 23개국에서 재배되는 139종의 올리브가 생산된다고 추정한다. 그중 90%는 오일로 생산되며 나머지 10%는 테이블 올리브로 가공된다. 오일로는 단일 품종 오일이나 쿠파주(두 가지 이상의 품종으로 만든 블렌딩 오일)를 만드는데, 전 세계 올리브 생산량을 보면 스페인이 압도적 1위(50%)다. 2위와 3위가 이탈리아(10%)와 그리스(10%)다.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나는 올리브는 피쿠알이다. 모든 종류의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스페인 올리브 오일의 기준이다. 나쁘게 말하면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데 농가와 지역마다 그들의 고유성을 가진 곳이 많아 흥미롭다.
아르베키나는 알이 작고 바나나 향이 나는 올리브 오일이다. 맵고 쓴 맛이 약해서 스페인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올리브 오일이다. 물론 테이블 올리브로도 만든다. 오히블랑카는 꽃향기가 나는 올리브오일이다. 스페인어로 오하(hoja)는 잎사귀, 블랑카(blanca)는 하얀색이라는 뜻. 이 품종의 잎은 하얗다. 오일 테이스팅 수업에선 항상 ‘예쁜 느낌’의 오일이라고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코르니카브라가 있다. 스페인 중부 특산품인 코르니카브라는 뿔이라는 뜻의 코르니와 숫염소라는 뜻의 카브라가 합쳐진 이름. 염소 뿔처럼 올리브 끝이 뾰족하고 부드러운 사과 향이 난다. 아주 쓰고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맛이 매우 굵고 남성적이다.
올리브 수확 시기는
모든 농사가 그렇듯 올리브 역시 수확의 최적기를 결정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다. 품종, 기후, 올리브밭의 위치와 가지치기 유형 등 농법에 따라 매년 달라진다. 질병과 해충 등까지 감안해 열매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가장 적합한 수확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평균적으론 9월부터 11월까지가 올리브 수확 시기다. 연둣빛 녹색에서 시작해 적갈색까지 변해가는데, 9~10월 연둣빛 올리브 열매는 과일 맛의 오일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11월엔 열매의 색이 알록달록해진다. 노란색, 분홍색, 적갈색까지 다양한 색의 과수원으로 물든다. 11월 말이 되면 강렬한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서서히 변한다. 이때부턴 올리브의 향과 풍미 등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후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올리브 수확 시기는 농부만 안다. 통상 가을이지만, 다양한 변수로 인해 열매가 익는 과정에 따라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엑스트라버진 오일용 올리브는 보통 10월이나 11월에 시작해서 12월까지 수확한다. 이때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이 되는 것은 올리브 과일 무게의 10~20%에 불과하다.
엑스트라버진부터 람판테까지
올리브유는 국제올리브협회에서 엄격히 등급을 정한다. 추출 방식과 산도에 따라 결정하는데,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은 수확 후 24시간 이내 신선한 올리브의 첫 과즙이다. 화학적 수단을 쓰지 않고 기계적 방식으로, 28도 이하에서 추출한다. 산도는 0.8% 미만이어야 한다. 버진 올리브 오일은 첫 추출 오일이지만 산도가 2% 미만인 것, 람판테 올리브 오일은 산도 3.3% 이상의 결함이 있는 오일이다. 과거엔 먹지 않고 램프를 켜는 데 사용됐기 때문에 이름도 ‘lampante oil’로 지어졌다. 포마스 올리브 오일(위 세 가지 오일 추출 후 찌꺼기로 만든 오일)은 튀김 등에 이용한다.
1000년 된 거목에서 따면 보약?…50년 안된 올리브나무가 이상적!
올리브에 대한 오해와 편견한국에서 이제 너무 흔해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발연점이 낮아 볶거나 튀기는 요리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사실 이건 잘못됐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의 발연점은 210도다. 정제 해바라기씨 오일이 220도. 가정용 화구의 불 세기로는 150도 이상 가열에 어렵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도 튀김용으로 쓸 수 있다. 다만 그 비싼 오일로 튀김을 한다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녹색이 최상급인가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인간의 눈은 노란색보다 초록색이 더 좋은 것이라 인식한다고. 테이스터 공부를 할 때 색을 구분할 수 없는 파란색, 초록색 잔으로 시음했었다. 올리브 품종과 수확 시기에 따라 오일의 색깔이 다르다. 무조건 초록색이라고 최상급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쓰고 매콤하면 좋은 오일이냐”고도 묻는다. 쓰고 매운 맛은 올리브 열매의 폴리페놀 성분 때문인데 이 역시 품종과 수확 시기에 따라 함량이 다르다. 이렇게 올리브 오일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 우리를 현혹하는 잘못된 마케팅 문구도 너무 많다. 실패 없이 올리브 오일을 고르는 법을 다섯 가지 질문과 답으로 정리했다. (1)올리브 손으로 직접 딴다?
시간 오래 걸려 올리브 ‘본래 성질’ 잃어
“올리브는 과일이고 올리브 오일은 주스다.” 올리브 오일 테이스터 학교에서 첫날에 배웠다. 가장 좋은 주스를 추출하려면 가장 좋은 상태의 과일을 빨리 따서 빨리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알 한 알 손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딴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된다. 정말 그렇게 했다면, 이미 많이 산화됐을 테니 피해야 한다.
(2)전통적인 방법으로 짠다?
기계로 추출한 올리브유가 품질 더 좋아
오일 추출법은 주로 올리브 농장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인 방법도, 현대적인 방법도 있다. 올리브 오일 판매 상세 페이지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오일을 짭니다’라고 나와 있다면 마케팅을 위한 판매자의 상상력이거나 작은 농가라 정말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짜는 경우다. 솔직히 말해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최고 수준의 오일이 나오기는 어렵다. 대부분 올리브나무를 50그루 이하로 가진 소농가들은 ‘알마자라’라고 부르는 자체 오일 방앗간 시설을 구축하기 어렵다. 높은 수준의 자동화가 가능한 지역 협동조합 시설에서 추출한다. 농장에서 협동조합 방앗간까지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과 추출 기계에서의 대기 시간까지 감안하면 오일 짜는 데 하루 이상 걸릴 수 있다. 산화되기 쉽다는 얘기다. 만약 선택해야 한다면 전통 방식보다는 기계적인 방법, 냉추출 방식으로 만든 오일을 고르시길.
(3)건강을 위한 언필터 오일?
영양성분 더 많다는 건 ‘부풀려진 마케팅’
올리브 오일 추출 과정 제일 마지막이 필터링이다. 필터링은 산화를 막아 안정적으로 장기간 보관을 위한 것. 언필터 오일을 두 달 안에 섭취한다면 나쁘지 않겠지만 그 이상은 추천하지 않는다. 오일 속 부유물들이 점차 썩기 때문이다. 필터링된 오일보다 영양성분이 더 많다는 광고 역시 부풀려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4)오래된 올리브나무가 더 좋다?
비싸게 파는 곳도 있으나 진귀한 약은 아냐
실제로 1000년 된 올리브나무에서 나오는 올리브 오일을 매우 비싼 가격에 파는 곳도 있다. 특이하긴 하다만 진귀한 명약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농업계에선 그루당 50~60㎏의 열매가 맺히는 50년 미만의 올리브나무가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한 표본이다.
(5)병이냐, 알루미늄 틴이냐?
어두우면 상관없어…운송 방법이 더 중요
많은 사람이 산화된 오일은 독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햇빛과 열로부터 오일을 보호하기 위해 어두운 병 또는 틴으로 된 것을 고르고, 사용 후엔 어둡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운송 방법을 따져봐야 한다. 두 달 가까이 배로 운송하는 방법(유럽에서 한국에 오려면 50도 이상 적도를 지난다)보다 항공으로 운송한 상품을 고르는 편이 현명하다. 한 병 따서 오래도록 아껴먹지 말고 차라리 작은 병을 사서 두 달 안에 소비하는 게 좋다. 지중해 사람들은 1~2주면 엑스트라 버진 한 병을 다 쓴다.
아침 공복때 "킁킁" 향 먼저 맡아보세요
올리브유 테이스팅 어떻게 하나양은 밥숟갈 반정도
혀에 펴바르는 느낌 올리브 오일 본연의 맛과 향을 느끼고 싶다면 이른 아침 공복 시간을 택하는 게 좋다. 집에 오일 테이스팅 잔이 있다면 좋지만, 와인잔이나 커피잔도 무방하다. 밥숟갈 하나 반 정도의 양을 채우고 잔을 손바닥에 감싸쥔다. 따뜻하게 데운다는 느낌으로 돌려 아로마가 충분히 퍼지면 먼저 코로 향을 맡으며 관찰한다. 오일을 입 안에 머금고 혓바닥에 모두 골고루 퍼지도록 한 다음 이는 다물고 입은 네모 모양으로 벌려 공기를 들이마신다. 혓바닥에 퍼진 올리브오일의 맛을 느껴본다. 커피나 와인 테이스팅과도 비슷하다.
올리브 오일 특유의 매운맛과 쓴맛 이외에도 과일과 풀, 견과류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일 테이스팅 과정을 이수할 때 좋은 테이스팅을 위해선 여러 가지 향기를 수집해보라고 배웠다. 무화과 잎에서 나는 향, 토마토 꼭지에서 나는 진한 냄새, 허브 풀마다 다른 향기가 있다는 즐거움을 올리브 오일 테이스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럼 오일 테이스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이 시험 문제를 틀렸는데, 그 답은 ‘편안한 마음가짐’이었다. 60세부터 미뢰와 감각이 상실된다고 하지만 배움을 위한 관심과 집중, 인내심이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당시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김보라 기자/마드리드=염수연 라퐁 대표·국제 공인 오일 테이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