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바꿀 세상은 너무나 무궁무진합니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인데요. AI 디지털 교과서가 곧 도입되는 등 에듀테크업계에도 '디지털 전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이 바람 속에서, 교육계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또 미래 교육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바뀔까요? '설탭' 운영사 오누이의 고예진 대표가 한경 긱스(Geeks)에 전해 온 생각입니다.
AI가 바꾼 교육의 패러다임, 이제 ‘블렌디드 러닝’ 시대[긱스]
변화는 줄곧 우연에서 비롯되곤 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지금의 공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세탁기의 발명이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물리학에서 X선의 발견이 의학에 획기적인 영향을 준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제도나 시스템의 변화는 우연한 것에서 출발한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코로나와 같은 대격변의 시기는 디지털 전환의 발판이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비즈니스도, 소비방식도, 인간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비대면 거래가 이어지고 원격 근무, 언택트 서비스가 가속화됐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산업보다 변화가 느린 교육 업계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되면서 온라인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혁신이 필요했던 교육 현장이 빠르게 디지털화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생들은 종이 교과서가 아닌 AI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지식을 전달받을 것입니다.

이처럼 교육의 디지털화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트렌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급변하는 흐름 속에 무작정 몸을 맡기고 흘러가도 괜찮은 것일까요? AI라는 파도에 떠밀려 교육이 가진 상위의 목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점검해볼 때인 것 같습니다.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초개인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명확합니다. 바로 개인이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시공간적 한계와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개인의 성향과 잠재력을 온전히 배양하는 것은 숙제로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챗GPT를 필두로 각 산업에서 정보의 처리와 검색, 결과물을 도출하는 AI가 그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로서 각광받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도 이를 즉각 현장에 반영하고자 입장을 내놨습니다. 지난 2월 교육부에서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2025년부터 학교 현장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교육 업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학습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대기업과 IT 기업에서도 에듀테크에 힘을 실어 새로운 교육 시대를 위한 발돋움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움직임들은 모두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초개인화된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AI가 바꾼 교육의 패러다임, 이제 ‘블렌디드 러닝’ 시대[긱스]

AI가 가져올 미래 교육의 모습


AI는 기존 전통적인 교육 환경이 가진 제약들을 대폭 혁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인 우리 학생들이 AI 툴을 통해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장점을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학습 기록을 데이터화할 수 있습니다. AI 툴을 활용하면 모든 수업 자료를 저장해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습니다. 자료 저장의 한계가 없어지고 분실로 인해 학습이 단절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의 필기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 수업 시간에 놓친 내용 때문에 못다 쓴 노트 필기를 걱정하거나 책이나 유인물을 두고 와서 곤란해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보유 지식이나 취약점 등을 정량화하여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게 돕습니다. 그동안 같은 교수법, 통일된 교재, 조절이 불가능한 속도로 진행되던 획일화된 교육이 보다 구체화되고 개별화되며 다양화될 것입니다. 점점 초개인화 사회로 변하는 이 시점에 AI 디지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셋째는 시공간 제약이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AI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합니다. 비용도 훨씬 저렴하죠. 자다가도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화면을 켜고 질문을 하고 답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는 한 한결같은 태도로 학생의 공부 루틴을 따라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즉시 가져다줄 것입니다. 학습된 정보를 통해 정확한 결과물을 빠르게 산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I 만능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AI가 가져올 미래 교육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기록된 학습 데이터를 통해 시공간을 뛰어 넘어 맞춤형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대의 태블릿 기기 안에 나의 학업 성취도와 취약 과목을 속속들이 아는 개인 과외 선생님을 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AI 교육이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입니다. AI가 모든 일을 해결한다고 생각하고 손을 놓았다가는 우리 아이들의 ‘멘토’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죠. AI는 분명 ‘진단’과 ‘지식 전달’에 특화된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교육이 해야될 역할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지식과 함께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어려움을 극복하는 의지, 실패를 성공으로 만드는 슬기로움을 가르쳐 줄 멘토가 필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4C 개념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4C는 교육 전문가 찰스 파델이 저서 '21세기 핵심 역량'을 통해 소개한 개념입니다. 저자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으로 창의력(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그리고 협업(Collaboration)을 꼽았습니다. 이런 역량은 급변하는 시대 속 학교나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준비돼야 합니다.

한 사람의 잠재력이 발현된다는 것은 4C의 핵심 역량들이 골고루 발달한다는 것이며, 이런 역량들은 지식의 함양만으로는 해결될 수는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미리 인생을 살아본 ‘멘토’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합니다.

'휴먼 터치'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디지털 교육 시대에 사람이 줄 수 있는 교육의 효과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는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2024년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를 선정했습니다. 프롬프트는 사용자의 입력 준비를 알리는 컴퓨터의 메시지로, 인간의 질문 능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신조어입니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답을 AI가 알아서 찾아줍니다. 따라서 질문을 잘하는 능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받는다고 해서 창의력과 호기심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습니다.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이러한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실제로 알버트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수많은 리더를 배출한 유대인은 ‘하브루타(Havruta)’ 교육을 중요시 여깁니다.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하는 토론 방식이죠. 교실 내에서 사람의 온기가 줄어들수록 질문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식전달을 AI가 담당해줄 동안, 선생님은 학생의 창의력과 호기심을 높여주는 파트너가 돼야 합니다.

둘째는 멘털 케어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진로 탐색이나 고민 상담을 하며 그 시기에 필요한 조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간 관리를 위한 노하우를 배우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학교나 전공으로 진학하겠다는 동기부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학생이 능동적으로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수업에 참여시키려면 나의 잠재력을 믿어준다는 인간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어른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 컨트롤이 어려운 학생들은 ‘교사의 기대에 따라서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현상’을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더해져야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학생들의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아 주고,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입시 경험이나 시행착오 등을 공유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은 AI보다는 앞서 그 길을 걸어간 선배의 몫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예절, 즉 인성 교육과 사회성 교육입니다. AI를 통해 교육을 받는 미래사회라고 해서 대인관계의 중요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은 백과사전을 줄줄 외우는 컴퓨터가 아닙니다. 똑똑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나가는 바랄 것입니다. 건강한 감정표현 방법과 올바른 언어 사용, 협동심과 갈등 해결 등의 인성교육은 AI가 전부 책임져줄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글로 배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AI가 바꾼 교육의 패러다임, 이제 ‘블렌디드 러닝’ 시대[긱스]

새로운 패러다임은 '블렌디드 러닝'


세계 최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의 공동 창업자인 대프니 콜러 스탠퍼드 교수는 지난 10월 제1회 태재미래교육포럼에 참석해 “논문 자료 조사 같은 단순 업무를 챗GPT에 맡기면 사람들은 더 수준 높은 질문을 고민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람, 각각의 역할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최고의 효율이 나타날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재 설탭에서 개발 중인 지식맵(Knowledge Component, 이하 KC) 역시 기존 교육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선생님과 학생의 성장을 돕는 형태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KC를 활용하면 개별 학생이 가진 지식의 구조를 지도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데이터를 통해 학업성취를 진단하는 일은 AI가, 학생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선생님이 담당하는 선순환을 그려 나가는 데에 그 방점이 있습니다.

설탭은 2023년 하반기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진행했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휴먼터치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모두가 기술의 고도화를 외칠 때 휴먼터치도 중요하다는 것이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고 불안한 현실에서 안도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설탭을 처음 시작할 때도 저의 목표는 태블릿을 통한 선생님과의 연결로 학생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개발하는 AI 역시 그렇게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혁신이 등장해도 그 목표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휴먼터치의 개념이 결코 과거처럼 선생님 1인 체제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육에는 휴먼터치와 디지털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와 설탭이 그리는 미래 교육 환경 또한 AI가 선생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선생님과 학생의 동반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AI가 바꾼 교육의 패러다임, 이제 ‘블렌디드 러닝’ 시대[긱스]
고예진 | 오누이 대표
고예진 대표는 중앙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습니다. 10대에 느꼈던 입시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 그리고 대학생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생들에게는 강사를 넘어 멘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지금의 ‘오누이’를 탄생시켰습니다. 대표 서비스로는 시공간 제약 없이 검증된 SKY출신 튜터를 고도화된 매칭 알고리즘으로 연결하는 ‘설탭’이 있습니다. 2021년 1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해 누적 투자액은 160억원을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