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키' 작가 "20번 넘게 수정, 힘들었지만…필요했던 과정" [인터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U+모바일tv 오리지널 '하이쿠키' 강한 작가
한입만 먹어도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의문의 쿠키 이야기에 시청자들도 홀렸다. U+모바일tv 오리지널 '하이쿠키'는 한입만 먹어도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의문의 수제 쿠키가 엘리트 고등학교를 집어 삼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하이쿠키'를 집필한 강한 작가는 2019년 KBS 단막극 극본공모 우수작 '양들의 침묵'로 등단해 '나의 가해자에게', '그녀들' 등을 KBS 2TV 드라마스페셜로 선보였다. '하이쿠키'는 그의 첫 장편 드라마였다. 하지만 입체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구성, 매회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공개되자마자 U+모바일tv에 신규 가입자를 대거 유입시키는가 하면, 넷플릭스 비오리지널 시리즈 1위, 대한민국 넷플릭스 TOP 10 2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23일 마지막회차가 공개된 '하이쿠키'는 각자의 욕망에 휩싸여 발버둥치는 인간 군상을 마지막까지 그려냈다. 여기에 쿠키의 유혹을 이겨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민영(정다빈 분)과 달리 쿠키를 먹고 사망한 또 다른 학생의 등장으로 수영(남지현 분)이 여전히 쿠키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면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까지 불러 일으켰다.
'하이쿠키'가 선보여지기 전까지 각 회차당 20회 이상 수정했다는 강한 작가는 "그 과정들이 많이 힘들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련이자 과정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함께해주신 감독님과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분들 덕분에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공을 돌렸다.
다음은 강한 작가와 일문일답 ▲ 오랫동안 준비하고, 수없이 퇴고한 '하이쿠키'가 막을 내립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품의 기획부터 종영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긴 시간 준비하면서 작품이 끝날 땐 어떤 마음이 들지, 후련할지 섭섭할지 혼자 생각한 적이 많았었는데, 막상 작품이 끝날 때가 되니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이 제일 앞섭니다. 작품에 함께해주신 감독님과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들 덕분에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 저 혼자 시작했던 일인데 어느새 우리가 됐고, 우리가 함께 끝냈구나. 하는 마음에 벅차기도 하고요.
▲ '하이쿠키'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고,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을까요?
처음 기획할 당시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들도 많고, 작가로서의 불안도 겹치면서 제 인생을 스스로 사막같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도 인생을 좀 쉽게 살 수 있는 치트키가, 오아시스가 있다면 어떨까? 만약 그게 들키지 않는 범죄라면 나는 과연 실행에 옮길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었는데, 허구의 상황에 범죄와 판타지를 더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하이쿠키'라는 드라마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 동안 그 치트키의 결과에 대해 계속해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결국 그 치트키가 이끄는 건 오아시스가 아니라고. 그냥 출구 없는 늪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들키지 않는 범죄란 건 없단 생각과 함께요. 늪에 빠지고 난 뒤엔 그 어떤 서사와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게 됐고요.
▲ '하이쿠키'가 첫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쓴 대본이 장편의 드라마가 돼 OTT로 공개된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컸어요. 몇 번 현장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크레딧 속 담겨있는 이름들을 한 분 한 분 보면서 새삼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주셨는지 크게 체감되더라고요. 사실 방송 첫날은 그 감사함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물론 다음날부턴 덜덜 떨며 반응도 찾아보면서 보냈고요.
▲ '하이쿠키'에 출연한 각각의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보셨을까요?
리딩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최고의 배우분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물이 선악을 오가고, 극한의 사건들을 수없이 마주하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많았는데, 제가 쓴 대사와 지문 그 이상을 매번 표현해주셨거든요. 이젠 아예 각각의 배우분들이 아닌 인물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먼저 수영이는 이 드라마 전체를 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가장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이었는데, 남지현 배우는 대본에 담긴 감정들을 하나하나 놓치는 법이 없었어요. 또 제가 쓴 의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줬고 표현해줬습니다. 극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 수영 역시 쿠키에 중독되면서 부정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필연적이었는데 작품의 의도 역시 너무나 공감해주고 좋은 의견을 주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뽑는 명장면이 너무 많은데 나온 장면들 중에선 언닌 하고 싶은 것도 없냐는 민영의 말에 그런 거 없다는 대사부터, 세탁실 복도에서 처음으로 쿠키를 먹는 신, 그리고 칼부림 신, 옥상, 체육창고 등등 뽑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요. 지현 배우가 수영이어서 너무나 든든했고,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호수를 연기한 최현욱 배우 역시 감독님께 가편본을 받았을 때부터 매번 환호하면서 봤어요. 가끔씩 내가 저 장면 지문을 뭐라고 썼길래 이 복잡한 상황을 저 표정 하나로 다 담아냈을까, 감탄하면서 막상 대본을 보면 평범한 지문이었는데 배우의 해석으로 빛났던 장면이 정말 많아요. 어쩌면 한 줄의 지문으로 담아낼 수 없는 현욱 배우만의 반짝이는 연기가 있는 거 같아요. 성필 역의 김무열 배우는 평소에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던 팬이었는데, 작품을 함께하면서 더 큰 팬이 됐어요. 등장만으로도 작품에 무게감을 더해주셨고. 덕분에 이 작품에서 너무 필요하고 중요했던 긴장감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선악이 불분명한 느낌 역시 너무 잘 살리셔서 대본을 쓴 저까지 헷갈리기도 했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민영 역의 정다빈 배우는 하이쿠키라는 작품을 열고 닫는 역할인데 민영일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분이 있을까 싶어요.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절반 넘게 가린 장면이 많았는데도 눈빛만으로 씬을 압도하더라고요. 부끄럽지만 몇 번 드라마를 보다가 운 장면들이 있는데요. 눈물이 흐르는 장면들엔 꼭 민영이가, 다빈 배우가 있더라고요.
외에도 진우 역의 서범준 배우와, 희진 역의 채서은 배우를 포함한 모든 배우분들께서 너무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해주신 덕분에 작가로서, 시청자로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매 장면을 치열하게 연출해주신 감독님께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 작품을 집필하면서 막힐 땐 어떤 식으로 풀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봤는데요. 인물 별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최악이 무엇일까, 할 수 있는 선택들을 계속해서 정리해봤던 거 같아요. 여기서 이 인물의 최선과 최악은 거짓말이구나, 침묵이구나, 변명이구나, 연대구나 등 많은 선택지들을 나열해놓고 골랐어요. 드라마가 새로운 사건을 더할 때 작품이 나아갈 길이 풀릴 때도 있지만, 인물들의 뜻밖의 선택들로 작품이 나아가기도 하더라고요.
▲ 지난 과정들 중 어떤 부분들이 가장 힘들었을까요? 그 힘든 여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온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감독님과 제작사를 포함한 ‘하이쿠키’ 팀이 꾸려지기 전까지, 각 회당 수정고가 20고를 훌쩍 넘길 정도로 수정을 했었는데 이 과정 속에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수정이 힘들었다기보단 당시 저 스스로 재미와 의미 사이의 어떤 밸런스를 잡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단막극에선 제 소신껏 의미와 메시지를 추구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장편은 또 아예 다른 얘기더라고요. 제아무리 꾹꾹 의미를 눌러담아봐야 재미가 없으면 다음 화를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피드백 속에서 끝없이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당시의 버전들을 다시 보면 그렇다고 의미를 제대로 담았던 것도 아니었지만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던 원동력은 이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련이자 과정이라는 확신이었던 거 같아요. 어차피 치트키는 없고, 열심히 부딪히고, 실패하면서 찾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마 앞으로도 글을 쓰면서 그 적당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수도 없이 부딪힐 거 같은데, 더 나은 글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면 까짓거 겪어볼 생각입니다. ▲ '하이쿠키'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부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의 비밀이나 반전을 공개하면서 극이 전개됩니다. 이런 구성을 어떻게 계획하셨고, 풀어나가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처음부터 10부작(방송상 20회차)으로 정해두고 작업을 시작했고. 총 런닝타임 10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전체 스토리를 재밌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구성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인공들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진다는 설정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쓰는 입장에선 어려움보다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보시는 분들도 점차 패턴을 이해하시면 보시면서 반전을 추리하는 재미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고요.
▲ '하이쿠키'는 현실적인 소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더욱 몰입도를 높인거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신경쓴건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보니 직접 제작사 PD님과 보조작가님과 함께 학교에 방문해서 학생분들과 선생님들께 많은 인터뷰를 했고 실제 수업에 참관해 조용히 수업을 듣기도 했어요. 입시 역시 실제 컨설턴트로 활동하시는 분들과 만나서 궁금한 점들을 여쭤봤고요. 쓰면서 극적인 전개를 위해 현실을 과장하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걸리는 점들에 대해선 써뒀던 대본을 들고 가 대사를 확인받기도 하는 식으로요. ▲ 작가님의 전작 단편들을 보면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구성, 인간성에 화두를 던지는 설정을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작가님의 취향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 취향인 것 같습니다. 학교, 궁궐, 군대 등 아주 익숙한 공간을 조금씩 비틀고. 여기서 갈등을 만들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완벽한 주인공보단 다소 나약하고 흔들리는 주인공을 통해 화두를 던지는 게 쓰는 저한테도 몰입이 쉽더라고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다면 살짝 귀띔 부탁드립니다.
사실 '하이쿠키'를 쓰면서 차기작은 반드시 엄청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요. 또 아이러니하게 현재 기획중인 작품은 살짝 어두운 블랙코미디입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너무 어두운 얘기는 아니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의미를 발견하는, 주인공이 두려움을 딛고 한 발씩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하이쿠키'를 집필한 강한 작가는 2019년 KBS 단막극 극본공모 우수작 '양들의 침묵'로 등단해 '나의 가해자에게', '그녀들' 등을 KBS 2TV 드라마스페셜로 선보였다. '하이쿠키'는 그의 첫 장편 드라마였다. 하지만 입체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구성, 매회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공개되자마자 U+모바일tv에 신규 가입자를 대거 유입시키는가 하면, 넷플릭스 비오리지널 시리즈 1위, 대한민국 넷플릭스 TOP 10 2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23일 마지막회차가 공개된 '하이쿠키'는 각자의 욕망에 휩싸여 발버둥치는 인간 군상을 마지막까지 그려냈다. 여기에 쿠키의 유혹을 이겨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민영(정다빈 분)과 달리 쿠키를 먹고 사망한 또 다른 학생의 등장으로 수영(남지현 분)이 여전히 쿠키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면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까지 불러 일으켰다.
'하이쿠키'가 선보여지기 전까지 각 회차당 20회 이상 수정했다는 강한 작가는 "그 과정들이 많이 힘들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련이자 과정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함께해주신 감독님과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분들 덕분에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공을 돌렸다.
다음은 강한 작가와 일문일답 ▲ 오랫동안 준비하고, 수없이 퇴고한 '하이쿠키'가 막을 내립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품의 기획부터 종영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긴 시간 준비하면서 작품이 끝날 땐 어떤 마음이 들지, 후련할지 섭섭할지 혼자 생각한 적이 많았었는데, 막상 작품이 끝날 때가 되니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이 제일 앞섭니다. 작품에 함께해주신 감독님과 스태프들, 그리고 배우들 덕분에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 저 혼자 시작했던 일인데 어느새 우리가 됐고, 우리가 함께 끝냈구나. 하는 마음에 벅차기도 하고요.
▲ '하이쿠키'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고,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을까요?
처음 기획할 당시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들도 많고, 작가로서의 불안도 겹치면서 제 인생을 스스로 사막같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도 인생을 좀 쉽게 살 수 있는 치트키가, 오아시스가 있다면 어떨까? 만약 그게 들키지 않는 범죄라면 나는 과연 실행에 옮길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었는데, 허구의 상황에 범죄와 판타지를 더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하이쿠키'라는 드라마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 동안 그 치트키의 결과에 대해 계속해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결국 그 치트키가 이끄는 건 오아시스가 아니라고. 그냥 출구 없는 늪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들키지 않는 범죄란 건 없단 생각과 함께요. 늪에 빠지고 난 뒤엔 그 어떤 서사와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게 됐고요.
▲ '하이쿠키'가 첫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쓴 대본이 장편의 드라마가 돼 OTT로 공개된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컸어요. 몇 번 현장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크레딧 속 담겨있는 이름들을 한 분 한 분 보면서 새삼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주셨는지 크게 체감되더라고요. 사실 방송 첫날은 그 감사함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물론 다음날부턴 덜덜 떨며 반응도 찾아보면서 보냈고요.
▲ '하이쿠키'에 출연한 각각의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보셨을까요?
리딩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최고의 배우분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물이 선악을 오가고, 극한의 사건들을 수없이 마주하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많았는데, 제가 쓴 대사와 지문 그 이상을 매번 표현해주셨거든요. 이젠 아예 각각의 배우분들이 아닌 인물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먼저 수영이는 이 드라마 전체를 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가장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이었는데, 남지현 배우는 대본에 담긴 감정들을 하나하나 놓치는 법이 없었어요. 또 제가 쓴 의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줬고 표현해줬습니다. 극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 수영 역시 쿠키에 중독되면서 부정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필연적이었는데 작품의 의도 역시 너무나 공감해주고 좋은 의견을 주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뽑는 명장면이 너무 많은데 나온 장면들 중에선 언닌 하고 싶은 것도 없냐는 민영의 말에 그런 거 없다는 대사부터, 세탁실 복도에서 처음으로 쿠키를 먹는 신, 그리고 칼부림 신, 옥상, 체육창고 등등 뽑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요. 지현 배우가 수영이어서 너무나 든든했고,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호수를 연기한 최현욱 배우 역시 감독님께 가편본을 받았을 때부터 매번 환호하면서 봤어요. 가끔씩 내가 저 장면 지문을 뭐라고 썼길래 이 복잡한 상황을 저 표정 하나로 다 담아냈을까, 감탄하면서 막상 대본을 보면 평범한 지문이었는데 배우의 해석으로 빛났던 장면이 정말 많아요. 어쩌면 한 줄의 지문으로 담아낼 수 없는 현욱 배우만의 반짝이는 연기가 있는 거 같아요. 성필 역의 김무열 배우는 평소에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던 팬이었는데, 작품을 함께하면서 더 큰 팬이 됐어요. 등장만으로도 작품에 무게감을 더해주셨고. 덕분에 이 작품에서 너무 필요하고 중요했던 긴장감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선악이 불분명한 느낌 역시 너무 잘 살리셔서 대본을 쓴 저까지 헷갈리기도 했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민영 역의 정다빈 배우는 하이쿠키라는 작품을 열고 닫는 역할인데 민영일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분이 있을까 싶어요.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절반 넘게 가린 장면이 많았는데도 눈빛만으로 씬을 압도하더라고요. 부끄럽지만 몇 번 드라마를 보다가 운 장면들이 있는데요. 눈물이 흐르는 장면들엔 꼭 민영이가, 다빈 배우가 있더라고요.
외에도 진우 역의 서범준 배우와, 희진 역의 채서은 배우를 포함한 모든 배우분들께서 너무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해주신 덕분에 작가로서, 시청자로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매 장면을 치열하게 연출해주신 감독님께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 작품을 집필하면서 막힐 땐 어떤 식으로 풀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봤는데요. 인물 별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최악이 무엇일까, 할 수 있는 선택들을 계속해서 정리해봤던 거 같아요. 여기서 이 인물의 최선과 최악은 거짓말이구나, 침묵이구나, 변명이구나, 연대구나 등 많은 선택지들을 나열해놓고 골랐어요. 드라마가 새로운 사건을 더할 때 작품이 나아갈 길이 풀릴 때도 있지만, 인물들의 뜻밖의 선택들로 작품이 나아가기도 하더라고요.
▲ 지난 과정들 중 어떤 부분들이 가장 힘들었을까요? 그 힘든 여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온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감독님과 제작사를 포함한 ‘하이쿠키’ 팀이 꾸려지기 전까지, 각 회당 수정고가 20고를 훌쩍 넘길 정도로 수정을 했었는데 이 과정 속에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수정이 힘들었다기보단 당시 저 스스로 재미와 의미 사이의 어떤 밸런스를 잡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단막극에선 제 소신껏 의미와 메시지를 추구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장편은 또 아예 다른 얘기더라고요. 제아무리 꾹꾹 의미를 눌러담아봐야 재미가 없으면 다음 화를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피드백 속에서 끝없이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당시의 버전들을 다시 보면 그렇다고 의미를 제대로 담았던 것도 아니었지만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던 원동력은 이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련이자 과정이라는 확신이었던 거 같아요. 어차피 치트키는 없고, 열심히 부딪히고, 실패하면서 찾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마 앞으로도 글을 쓰면서 그 적당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수도 없이 부딪힐 거 같은데, 더 나은 글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면 까짓거 겪어볼 생각입니다. ▲ '하이쿠키'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부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의 비밀이나 반전을 공개하면서 극이 전개됩니다. 이런 구성을 어떻게 계획하셨고, 풀어나가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처음부터 10부작(방송상 20회차)으로 정해두고 작업을 시작했고. 총 런닝타임 10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전체 스토리를 재밌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구성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인공들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진다는 설정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쓰는 입장에선 어려움보다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보시는 분들도 점차 패턴을 이해하시면 보시면서 반전을 추리하는 재미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고요.
▲ '하이쿠키'는 현실적인 소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더욱 몰입도를 높인거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신경쓴건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보니 직접 제작사 PD님과 보조작가님과 함께 학교에 방문해서 학생분들과 선생님들께 많은 인터뷰를 했고 실제 수업에 참관해 조용히 수업을 듣기도 했어요. 입시 역시 실제 컨설턴트로 활동하시는 분들과 만나서 궁금한 점들을 여쭤봤고요. 쓰면서 극적인 전개를 위해 현실을 과장하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걸리는 점들에 대해선 써뒀던 대본을 들고 가 대사를 확인받기도 하는 식으로요. ▲ 작가님의 전작 단편들을 보면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구성, 인간성에 화두를 던지는 설정을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작가님의 취향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 취향인 것 같습니다. 학교, 궁궐, 군대 등 아주 익숙한 공간을 조금씩 비틀고. 여기서 갈등을 만들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완벽한 주인공보단 다소 나약하고 흔들리는 주인공을 통해 화두를 던지는 게 쓰는 저한테도 몰입이 쉽더라고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다면 살짝 귀띔 부탁드립니다.
사실 '하이쿠키'를 쓰면서 차기작은 반드시 엄청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요. 또 아이러니하게 현재 기획중인 작품은 살짝 어두운 블랙코미디입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너무 어두운 얘기는 아니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의미를 발견하는, 주인공이 두려움을 딛고 한 발씩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