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Seoulphil
지난 2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Seoulphil
2부 공연 시작을 앞두고 주어지는 15분 간의 인터미션(휴식시간). 몇몇 단원들은 휴식 대신 2부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매주, 매시간, 매분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서울시향의 새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63)의 주문이 머릿속에 박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는 향후 '츠베덴표 서울시향'이 얼마나 뛰어오를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수 있는 무대였다. 악단은 '오케스트라 트레이너'와 함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고 큰 근육부터 키우고 있다는 걸 소리로 들려줬다. 파트 별로 선명해진 사운드, 조화로운 성량, 원숙한 앙상블 등 기본기가 탄탄해진 걸 보니.

75분 동안 이어진 이날 공연은 앙코르 없이 딱 두 개의 교향곡으로만 승부했다. 1부 곡은 하이든 교향곡 제 92번 '옥스퍼드'. 1악장 초반부터 잘 제련된 사운드와 딱 맞아떨어지는 현악 파트의 보잉(활의 움직임)이 귀를 사로 잡았다. 츠베덴은 권투 선수를 연상케 하는 파이팅 넘치는 지휘로 악단을 꽉 쥐듯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탁월한 성량 조절과 알맞은 앙상블로 작품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면모를 십분 살려냈다.

이어 목관의 우아한 선율이 펄쳐지는 2악장, 쫀득한 리듬으로 활기가 가득한 3악장을 거쳐 익살맞은 4악장까지 츠베덴의 타이트한 지휘에 맞춰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갔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사운드가 더 가볍고 산뜻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완성도를 놓고 봤을 때 상당히 안정적인 호연이었다.
ⓒSeoul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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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2부에서 들려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이었다. 프로그램이 공개됐을 때부터 평단에서는 "츠베덴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과거 홍콩필하모닉을 이끌 때도 츠베덴은 쇼스타코비치의 레퍼토리를 여러 번 선보였는데, 그때마다 찰떡같이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곡의 특성이 그의 강직하고 긴장감 높은 지휘 스타일과 잘 어울리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쇼스타코비치의 운명 교향곡', '혁명 교향곡' 등으로 불리는 45분 길이의 대작. 스탈린 치하의 독재 상황에 어쩔수 없이 동참할 수 밖에 없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복잡한 심경이 내포된 곡이다.

1악장 초반 도약하는 음정으로 이뤄진 첫 테마부터 탄탄한 사운드가 돋보였다. 테마는 돌림노래처럼 파트별로 이어지는데, 중반부 이후 피아노, 스내어드럼(작은북), 첼레스타까지 독특한 악기들이 하나둘 끼어들며 긴장감을 높였다.

2악장 스케르초 악장에서는 거친 질감의 사운드로 풍자와 해학을 담았다. 츠데벤은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지휘로 쇼스타코비치의 드라이하고 사실주의적인 정취를 강조했다. 1악장 주선율을 유쾌하게 변형한듯한 주요 선율과 악장의 시니컬한 바이올린 솔로 파트가 돋보였다. 비애감이 흐르는 3악장에서는 목관 주자들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세우며 활약했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공격적인 빌드업으로 귀가 떨어져나갈듯한 클라이맥스까지 이어지는 '마라맛 해석'을 선보였다. 채찍질하듯 현란한 현악기들의 보잉과 영화 '위플래시'를 연상시키는 우렁찬 베이스 드럼(큰북)까지 더해지면서 소리의 향연이 홀을 가득 메웠다. 들어보면, 츠베덴은 어떻게 해야 이 곡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지 아는 게 틀림 없다. 중간중간 한방, 두방 펀치를 먹이듯 임팩트를 자아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하지만 선이 굵고 강직한 츠베덴의 스타일에 대해 미학적으로 의문을 품는 사람도 꽤 많다. 아름답고 세밀한 표현이 어울릴 때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츠베덴이 서울시향과 호흡하면서 기존과 조금은 다른 색깔을 낼 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