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한은 "AI가 일자리 341만 개 대체"…규제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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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도가 붙은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한국은행이 의미 있는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AI와 노동시장 변화”라는 제목 그대로 최근 급성장해온 AI가 일자리에 어떤 변수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이냐다. 직업별 AI 노출지수로 분석한 결과 보수적으로 봐도 국내 일자리 중 341만 개(12%)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이다. 의사, 화공 기술자, 발전장치 조작원, 금속 재료 기술자, 기관사, 회계사, 자산운용가가 대표적이다. 고학력·고소득 근로자일수록 쉽게 AI로 대체된다는 대목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수긍도 된다. 이런 종류의 예측이나 분석이 나오면 으레 뒤따르는 것이 신기술 규제론이다. AI 기술에 대한 감시·감독 강화 주장은 이미 나온다. 기존 일자리 소멸 우려가 동반된다. 고용안정을 위한 AI 규제론은 논리적인가, 설득력은 있나.
실업이 단기적으로 급증하면 사회적 손실도 만만찮다. 사회적 비용은 국가 혹은 재정의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고용보험에 따른 실업급여 지출 증가가 그런 사례다. 가뜩이나 지출할 데가 많은 정부가 이런 비용까지 제대로 충당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당사자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면서, 경제와 산업 구조에도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흔히 산업구조의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산업구조는 단시일에 바꾸기도 어렵다. 사회 구성원들의 직업적 안정을 감안하면 단기 급변동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불안한 혁명’보다 예측이 가능하고 통제도 가능한 ‘점진적 변화’가 좋다. 더구나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대체될 수 있는 직업군은 지식 기반의 전문직이다. 이들의 대량 실직에 따른 사회적 충격은 심각할 것이다. AI 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지만 이는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당장에 새 일자리가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닌 만큼 피해 계층은 나오기 마련이다. 진화하는 AI 기술의 산업 및 일상생활 적용은 윤리 문제와도 부딪치고 전통적 지적재산권 체계와도 충돌한다. 이런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정비도 중요하다. 이런 문제도 살펴보면서 천천히 이행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포드 시스템, 컨베이어 시스템, 기계화·컴퓨터화 등을 거치며 일자리와 직업의 세계는 놀랍게 변화해왔다. 이제 AI 혁명으로 3차 산업이라는 서비스산업은 또 한번 획기적으로 비약할 것이다. 전통적 관광·교육·여가·레저·금융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의료·법률·지식재산 분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확충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대대적 규제 혁파로 서비스산업에서 새 일자리가 많이 생기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산업혁명 직후 러다이트운동(기계 파괴) 같은 막연한 ‘AI 포비아’는 금물이다. ‘원격의료 반대’ 주장 때문에 12년째 그대로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제정 속도를 내야 하고, 정부와 민간 합동의 서비스산업발전 TF도 실행안을 내놔야 한다. AI 기술을 잘 활용하면 신(新)서비스산업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일자리야말로 좋은 고용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이기도 하다. 기득권을 좇는 그룹의 반발에 부딪쳐 AI 기술을 가로막는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하게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찬성] 특정 그룹 단기 실업 급증은 사회적 부담…윤리 문제 등 파장 살피며 속도 조절을
새로운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학계에서는 ‘displacement effect(전위효과)’라는 이론도 나와 있다. 대체되는 일자리에는 생업으로 종사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다. 모든 직업은 ‘사회적 소속’이다. 이들은 학생 시기와 직업 준비기, 일자리를 택한 뒤에도 수련기를 거치며 공인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 개인의 삶과 가정을 책임지는 생활자다. 이들이 준비할 기간도 없이 기존 일자리에서 갑자기,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난다면 그 충격은 어떠하겠나.실업이 단기적으로 급증하면 사회적 손실도 만만찮다. 사회적 비용은 국가 혹은 재정의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고용보험에 따른 실업급여 지출 증가가 그런 사례다. 가뜩이나 지출할 데가 많은 정부가 이런 비용까지 제대로 충당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당사자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면서, 경제와 산업 구조에도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흔히 산업구조의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산업구조는 단시일에 바꾸기도 어렵다. 사회 구성원들의 직업적 안정을 감안하면 단기 급변동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불안한 혁명’보다 예측이 가능하고 통제도 가능한 ‘점진적 변화’가 좋다. 더구나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대체될 수 있는 직업군은 지식 기반의 전문직이다. 이들의 대량 실직에 따른 사회적 충격은 심각할 것이다. AI 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지만 이는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당장에 새 일자리가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닌 만큼 피해 계층은 나오기 마련이다. 진화하는 AI 기술의 산업 및 일상생활 적용은 윤리 문제와도 부딪치고 전통적 지적재산권 체계와도 충돌한다. 이런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정비도 중요하다. 이런 문제도 살펴보면서 천천히 이행해야 한다.
[반대] 산업·정보혁명, 새로운 일자리 창출…'AI 포비아'가 미래 발전 막는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관점에서만 보면 AI 혁명은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신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혁신한다. 산업혁명기를 보자. 제3의 물결(앨빈 토플러)이라는 정보혁명은 어떤 결과를 낳았나. 농어업 시대에는 농사와 어로 외엔 살아갈 방도가 없었지만 탈농업의 시대를 거치며 2차 산업 쪽에서 좋은 일자리가 수없이 생겨났다. 산업혁명(제2의 물결,토플러)과 정보혁명으로 서비스산업이라는 3차 산업에 무수히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다. 한국도 이미 3차 산업에 종사자가 일자리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고, 이제는 고용의 70%를 넘었다. 한국의 3차 산업 GDP 비중은 62.5%(2021년)에 달하지만 영국(81%)·미국(78%) 등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산업혁명 이후 포드 시스템, 컨베이어 시스템, 기계화·컴퓨터화 등을 거치며 일자리와 직업의 세계는 놀랍게 변화해왔다. 이제 AI 혁명으로 3차 산업이라는 서비스산업은 또 한번 획기적으로 비약할 것이다. 전통적 관광·교육·여가·레저·금융 부문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의료·법률·지식재산 분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확충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대대적 규제 혁파로 서비스산업에서 새 일자리가 많이 생기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산업혁명 직후 러다이트운동(기계 파괴) 같은 막연한 ‘AI 포비아’는 금물이다. ‘원격의료 반대’ 주장 때문에 12년째 그대로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제정 속도를 내야 하고, 정부와 민간 합동의 서비스산업발전 TF도 실행안을 내놔야 한다. AI 기술을 잘 활용하면 신(新)서비스산업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일자리야말로 좋은 고용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이기도 하다. 기득권을 좇는 그룹의 반발에 부딪쳐 AI 기술을 가로막는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하게 된다.
√ 생각하기 - AI혁명 눈여겨봐야…기득권 집단 '지대추구'는 경계 대상
한은이 발표한 이런 종류 연구물은 직업 준비를 하는 학생들과 각급 학교가 먼저 눈여겨볼 만하다. 인적자원 확보와 제조·서비스 혁신에 몰두하는 기업에도 당연히 도움 될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관련 예산을 배분하며 일자리정책을 주도하는 고용노동부·교육부·기획재정부 같은 정부 부처도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AI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과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한 일자리로 나눠서 살펴야 한다. 말끝마다 혁신과 신기술 외치며 막상 큰 혁신기술이 나오면 겁부터 내는 풍토는 곤란하다. 또 한번 규제혁파가 중요해졌다. 규제 법률과 간섭 행정을 청산하고 적극적으로 서비스산업을 키우면 새 일자리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산업의 고도화는 큰 숙제이며, 기술 진전도 기업 국가 개인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기득권 집단의 ‘직역 이익 지키기’, 곧 ‘지대추구(rent seeking)는 언제나 어디서나 경계의 대상이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