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밤 부산 연제구 연산동 교차로에서 70대 기사 A씨가 몰던 전기차 '아이오닉5' 택시는 교차로 옆 건물을 들이받자마자 불길에 휩싸이더니 전소했다. /사진=부산경찰청 공식 유튜브 '부산경찰' 캡처
지난 22일 밤 부산 연제구 연산동 교차로에서 70대 기사 A씨가 몰던 전기차 '아이오닉5' 택시는 교차로 옆 건물을 들이받자마자 불길에 휩싸이더니 전소했다. /사진=부산경찰청 공식 유튜브 '부산경찰' 캡처
지난 22일 밤 부산 연제구 연산동 교차로에서 70대 기사 A씨가 몰던 전기차 '아이오닉5' 택시는 교차로 옆 건물을 들이받자마자 불길에 휩싸이더니 전소했다. 사고 발생 직후 시민들이 소화기로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소방 당국이 출동해 차를 이동식 침수조에 담근 뒤에야 50분 만에 꺼졌다.

13일에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 청주-영덕고속도로 사일산 터널 인근에서 전기 택시가 앞서가던 화물차를 들이받으면서 화재가 발생해 1시간 30분 만에 전기차를 모두 태우고 진화됐다. 12일에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공영 지하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 택시에 불이 나 1시간 30분만에 꺼졌다.

최근 전기 택시 사고가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월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8월까지 신규 등록된 택시 2만5873대 중 9743대(약 37.7%)는 전기차였다. 새로 등록된 택시 10대 가운데 4대는 전기차인 셈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공해 차량 구매시1000만원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저렴한 유지비용으로 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 택시는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기온이 떨어지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전기 택시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기차는 사고 발생시 폭발 위험이 높고, 화재 진압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기 택시 보급이 늘고 연식도 쌓이면 화재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방관도 진압하기 어려운 전기차 화재

이동식 침수조를 이용해 전기차 화재진압을 훈련하는 소방관들. /사진=뉴스1
이동식 침수조를 이용해 전기차 화재진압을 훈련하는 소방관들. /사진=뉴스1
전기차는 화재 때 아무리 물을 뿌려도 불씨가 되살아나기 십상이다. 배터리 온도가 순식간에 1000도까지 오르는 ‘배터리 열폭주’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화재 진압이 유독 까다로운 이유다.

배터리 열폭주란 말 그대로 배터리 온도가 순식간에 고온으로 치솟는 것을 말한다. 전기차에는 하부에 가연성 물질인 배터리가 깔려있다. 이 배터리의 일부가 손상되면 섭씨 30~40도였던 배터리팩 내부 온도가 몇 초도 안 돼 800도로 올라간다. 전기차 배터리는 작은 배터리 셀을 이어 붙여 만드는데, 셀 하나에 열이 발생하면 도미노처럼 옆의 셀들도 온도가 치솟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번 스파크가 튀면 불길이 수초 내에 차량 전체로 번진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탈출 '골든타임'이 턱없이 짧은 이유다.

진화도 문제다. 전기차 배터리는 외부의 충격을 견디기 위해 초고장력 강판으로 감싼 구조로 이뤄져 있다. 막상 화재가 발생하면 이 강판 보호막 때문에 진압에 쓰이는 소화약제까지 제대로 침투하지 않는다.

미국 NBC 등 외신에 따르면, 2021년 4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발생한 테슬라S 화재에는 불을 끄는데 물 10만ℓ(리터)가 소모됐다. 내연기관 차 화재에 쓰이는 물의 100배에 이르는 양이다. 당시 보도에서는 "평균적인 미국 가정이 2년간 소비하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고 했다.

"전기차 판매량 주춤하는 지금이 기회"

22일 오후 대전시청 지하주차장에서 둔산소방서 소속 소방관들이 전기차 화재 대비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22일 오후 대전시청 지하주차장에서 둔산소방서 소속 소방관들이 전기차 화재 대비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진압이 까다로운 전기차 화재에 소방 당국과 업계 전문가가 내놓은 방안은 이동식 침수조와 차량용 질식 소화포다. 이 장비 덕에 2020년만 해도 길게는 5시간씩 걸리던 전기차 화재 진압 소요 시간이 1시간 30분~2시간 정도로 줄었다.

이동식 침수조란 불이 난 전기차 주변에 가벽을 치는 장비를 일컫는다. 배터리 전체를 물속에 잠기게 해 불을 진압하는 원리다. 차량용 질식 소화포는 유리섬유 소재의 커다란 천으로 차를 덮어버리는 장비로, 공기를 차단해 불을 끈다. 소화포는 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소 옆 화재에서 주로 쓰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내연기관 차(전소 기준)는 보통 50분 정도면 화재가 진압된다"면서 "미국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진압으로 가장 오래 걸린 게 최대 8시간이다. 구조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자체에서 가연성 물질과 산소가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진압이 어렵다"고 부연했다.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주춤하고 있다"며 "이 기조가 2~3년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업계에선 오히려 전기차 사고에 대한 비상 대처법을 제대로 개발하고 보급할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전기 택시 사고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주행거리가 많으니 사고도 잦을 수밖에 없다"며 "전기차 화재 발생률이 내연기관 차보다 높은 건 절대 아니다. 화재 피해가 커 우려의 인식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기 택시도 보급 대수가 늘고 연식도 쌓이면 화재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전기차의 안전성을 입증하려면 일단 전기차 배터리의 내화성을 강화해 불이 안 나게 만들어야 한다. 불이 났을 때 화마가 번지는 속도를 늦추고, 화재 진압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