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새 전산망 장애만 4건…위기의 '디지털 정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를 표방했던 한국의 위상이 일련의 전산망 장애 사태로 끝 모를 추락 위기에 놓였다.

지난 17일 행정전산망이 마비되며 온오프라인 민원 서비스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나 정부는 사흘 뒤에야 완전 복구를 발표했다. 재발 방지에 온 힘을 쏟겠다고도 다짐했지만, 이같은 말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사고 뒤로 일주일이 넘도록 전산망이 먹통이 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정부 기관의 전산망, 온라인 서비스 곳곳에서 장애가 되풀이된 탓이다.

정부가 디지털 정부 성과 등을 적극 홍보하고자 야심차게 준비했던 부산 정부박람회도 반복된 전산망 장애로 빛이 바랬다.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를 포함해 최근 일주일간 벌어진 정부 기관의 전산망 장애는 총 4건이다. 연중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일주일 새 연달아 터진 것이다.

정부가 20일 행정전산망을 재가동하면서 민원 현장은 제모습을 찾아가는 듯했으나, 22일 서울과 일부 지방의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시스템에 일시 장애가 나타나며 주민등록등본 등 증명서 발급이 한때 중단됐다.

현장 민원인들은 불편을 겪었고, 이들을 마주했던 공무원들은 답답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23일에는 조달청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서 문제가 터졌다.

당일 오전 9시 1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사이트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고, 서류 제출 마감이 도래한 1천600건의 입찰 공고가 연기됐다.

나라장터는 오전이면 입찰이 활발하게 전개돼 트래픽에 과부하가 걸리곤 했는데, 사고가 난 당일은 해외 특정 IP에서 다량의 접속이 쏟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날인 24일에는 디지털 정부의 자랑거리로 볼 수 있는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해 신분증 발급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다. 신분증을 인증하고 발급하는 앱이 장애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작년 7월 시행된 모바일 신분증은 운전면허시험장이나 경찰서 등에서 IC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앱에서 인증을 거친 뒤 일반 플라스틱 신분증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모바일 신분증은 23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정부박람회에서도 홍보 차원에서 현장 발급 서비스가 진행됐으나, 서비스 장애로 발급이 중단됐다. 디지털 정부로서 체면을 단단히 구긴 셈이 됐다.

행정전산망을 관장하는 행안부 이상민 장관은 디지털 정부 성과를 알리는 해외 출장 와중에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조기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행정전산망을 정상화한 이튿날인 21일 영국 정부와 디지털 정부 협력 관련 양해각서 체결 등을 이유로 다시 해외 출장에 나섰으나, 그가 자리를 비운 국내에서는 전산망 장애가 또다시 터졌다.

20일 대책회의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가 평소대로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던 이 장관의 각오가 무색해질 만한 일이었다.

정보통신(IT) 분야 전문가들은 일련의 전산망 장애 사태를 두고 기본이 되지 않은 디지털 행정이 빚어낸 일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일주일 새 4차례나 반복된 행정망 먹통 사태에 대해 "원인이 제각각일지 몰라도 결국 '기본'을 지키지 않았던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최근 전산망 오류 사태를 돌아보면 아쉬운 면이 참 많다"며 "설비부터 관리까지 본질적인 부분을 다시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가 행정전산망 시스템이 문제없이 가동하기 위해 ▲ 서버와 프로그램에 대한 정기 점검 ▲ 운영과 오류 대응 내용이 담긴 매뉴얼 마련 ▲ 이중화된 복구 시스템 채비 등 기본적인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지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사이버 공격에 대한 방어막이 형성됐는지, 오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운영 시스템이 갖춰졌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결국 서버 운영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련 인력을 늘리는 등 단단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용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일주일 새 전산망 장애가 잇따르는 원인에 대해 "초기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촘촘하게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류 사전 차단'과 신속한 '디버깅(오류 수정) 기능'을 시스템 설비 시 마련하지 않은 채 단순히 땜질하는 수준으로 대응한다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잠재적으로 쌓여있던 '버그'가 이번에 한 번에 터지는 게 아닌가 싶다"며 "아예 전산망 인프라를 구축했던 시기로 돌아가 설계부터 완공까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산망을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과 계약을 맺은 수많은 업체가 보안, 운영, 관리, 설비 등을 제각각 나눠서 담당하다 보니 신속한 원인 파악이 힘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조직과 담당 임무 등이 파편화한 탓에 재빨리 원인을 찾고 검수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버그가 어디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노릇"이라고 우려했다.


조시형기자 jsh1990@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