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VIP 중 72% 차지"…잘 벌고 잘 쓰는 이 사람들 '주목' [그래서 투자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그래서 투자했다 (17)
임채경 패스트벤처스 심사역
임채경 패스트벤처스 심사역
한경 긱스(Geeks)의 [그래서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임채경 패스트벤처스 심사역이 4565 남성 패션 커머스 플랫폼 '애슬러' 운영사 바인드에 투자한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 말이 정말인지 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직접 투자를 하면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바인드 투자는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말을 크게 이해할 수 있었던 투자다.바인드의 김시화 대표를 처음 만났던 건 UNSIT에서였다. 울산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UNIST에 있는 여러 대학생 창업팀을 만났다. 그날은 새벽같이 일어나 울산에 내려갔었고, 하루 종일 미팅했던 터라 오후 4시쯤 됐을때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김시화 대표를 만나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투자하고 싶은 대표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년간 어떤 시도를 왜 했는지 설명하는 김 대표의 방식과 태도가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꿈이 크고, 본인과 사업에 대한 객관화가 잘 돼 있었다. 어린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또 팀원들에게 강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꼭 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피벗을 고려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바로 투자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 당시 패스트벤처스는 START라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론칭했었고, 아이템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 트랙이 있었다. 마침 그날은 START 지원 마감 하루 전날이었고, 김시화 대표에게 꼭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합격한다면 아이템 찾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간곡한 부탁으로 바인드 팀은 START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800대 3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아이템을 정하기까지의 3개월
보통은 투자하기까지보다 투자하고 나서가 더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초기 스타트업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함께 직면하기 때문이다. 바인드의 경우 아이템부터 새로 정했어야 했기에 그 어려움이 더 컸다. START 프로그램은 3개월간 사무실과 밀착 멘토링을 제공한다. 사무실이 가까웠기에 거의 매일 같이 만나서 사업 이야기를 나눴다. 가까이에서 김시화 대표를 지켜보다보니 투자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김 대표는 창업자로서 여러 강점이 있는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실행력과 학습 능력, 그리고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이었다. 바인드 팀이 처음에 했던 접근은 CB인사이트의 유니콘 리스트에 명시된 모든 모델을 다 뜯어보는 것이었다. 1063개의 회사 중 괜찮은 모델을 20개 정도로 추려내고, 빠르게 테스트 해봤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김시화 대표(사진)의 실행력이 인상 깊었다. 의류 커머스 모델에 꽂히면 그날 당장 동대문에 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프로덕트를 빠르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3일 만에 밤을 새워서 앱을 만드는 식이었다.그리고 그 실행을 통한 시행착오를 통해 매일 학습하고 성장했다. 학습 능력의 좋은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객관화를 잘한다는 것인데, 김시화 대표는 본인과 팀, 사업에 대한 객관화가 뛰어났다.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컸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 것 같은 사람을 수소문해서 빠르게 배웠다. 오늘과 내일이 다른 사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정말 매일 같이 성장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강점은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이었다. 실행하고, 실패하고, 학습하는 과정은 고되다. 매일매일 실패를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이다. 그래서 투자하기 전에 창업자에게 왜 이 사업을 하시냐고 물어본다. 강한 원동력이 없으면 창업을 지속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시화 대표의 경우 매일 같이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성공에 대한 집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집념이 원동력이 되어 곧 좋은 아이템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크지만 비어 있던 시장
바인드 팀이 유니콘 리스트의 모델을 다 훓어본 뒤 주목한 것은 시니어 시장이었다. 베이비부머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세대다. 전체 세대 중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어떤 세대보다 부유하다. 베이비부머 수는 대략 1700만명에 이르고, 순자산 기준으로 보았을 때 MZ 세대보다 2.4배 높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시간적 여유까지 갖추게 됐다. 자연스럽게 소비시장에서 베이비부머의 영향력은 더 커졌는데, 실제로 백화점 VIP의 72%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시니어 시장이 매력적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직 플레이어가 많이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스타트업이 타깃하기 어려운 세대로 여겨져 왔다. 디지털 문해력이 낮아 온라인 소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베이비부머들은 자연스럽게 온라인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4대 온라인 커머스의 연령별 소비 증가율을 보게 되면 2021년 기준으로 전체 평균의 2.3배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성을 바탕으로 대기업들도 이 세대를 타겟으로 하는 브랜드나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고, 퀸잇 등 4050 여성을 타겟하는 패션 플랫폼들이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기도 했다.그러나 아직 4050 남성을 타겟하는 서비스는 없었다. 여성보다 온라인 소비를 덜 하기는 하나, 4050 남성 역시 빠르게 온라인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데이터가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4050 남성의 인터넷 쇼핑 이용자 비율이 2019년 이후 2년 만에 50% 성장했다. 또, 2030을 위한 플랫폼을 보면 여성 타깃의 경우 여러 개의 서비스가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나 남성 타깃의 플랫폼은 무신사 외에는 이렇다 할 서비스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보다 남성 고객의 플랫폼 충성도가 높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했다. 인구 수도 많고, 소비력도 좋은데, 플랫폼 충성도까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타겟은 4050 남성이 유일하다고 판단했다. 바인드 팀은 이 4050 남성을 사로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중년 남성이 인터넷에서 옷을 산다고?
바인드 팀은 4050 남성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그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영역을 고민했다. 스포츠 영역과 패션 영역에서 가장 큰 지출이 있었다. 처음에는 스포츠용품으로 시작했다 (이 당시에는 바인드 팀 역시 중년 남성이 온라인에서 옷을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러한 결정 이후 바인드 팀은 빠르게 서비스를 만들었다. 불과 2~3일 만에 50명이 넘는 다양한 페르소나의 4050 남성을 만나고, 2주 만에 앱을 출시했다. PG사 연동도 기다리지 않고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주문하고 이체하면 상품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때부터 물건이 불티나게 팔렸다.그렇게 스포츠용품을 주로 판매하던 중, 김시화 대표가 재밌는 결과를 공유했다. 패션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돌려보니 훨씬 좋은 지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ROAS, CAC, ARPPU가 모두 스포츠용품보다 패션에서 높게 나왔다. 이때 바인드는 과감하게 스포츠용품 플랫폼이 아니라 패션 플랫폼으로 피벗을 하게 된다.
중년 남성 패션 시장을 뜯어보니 그 기회가 더 크게 다가왔다. 일단 4050 남성 소매시장 카테고리 1위가 의류로 8.2조원에 달했다. 큰 시장이었다. 더불어 아직 온라인 침투율이 낮았다. 패션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이 50%가 넘었지만, 4050 남성을 타겟하는 브랜드들은 아직 온라인 침투율이 15%밖에 되지 않았다. 오프라인의 브랜드들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 남성들을 타겟하는 새로운 브랜드들의 등장도 눈에 띄었다. SSF, 한섬 등에서 새로운 남성 브랜드를 출시했고, 남성복의 5대 TD 브랜드(폴로, 타미, 라코스테, 헤지스, 빈폴)의 시장 점유율이 6년 내내 떨어지고 있었다.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였고, 그 변화의 앞단에 서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인드가 운영하는 4050 남성을 위한 패션 플랫폼 애슬러는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출시 이후 거래액이 매 달 50% 이상씩 성장해 왔고, MAU는 15만명에 이른다. 가장 눈에 띄는 지표는 단연 재구매율이다. 매달 20%에 달하는 재구매율을 보여주고 있다. 플랫폼 충성도가 높다는 4050 남성의 소비성향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장 뒤에는 좋은 브랜드를 빠르게 영업함과 동시에 섬세하게 고객의 니즈 잡아내고 빠르게 반영하는 바인드 팀의 노력이 있다.
초기투자의 묘미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말 뒤에는 뛰어난 사람이 큰 사업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물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투자자의 욕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 이후 창업자와 교류하며 배우고 얻는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투자의 가장 큰 묘미는 매력적이고 뛰어난 창업자의 성장을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나도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좋은 자극을 받는다. 또 초기에 투자하는 경우 사업을 함께 만들어 갈 여지도 크다. 사업은 대표와 팀이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초기에는 함께 고민할 부분이 확연히 많다. 그 과정에서 심사역도 성장한다. 바인드의 경우 시장분석과 아이템 선정부터 함께 했고, 스스로도 많이 배워 의미가 남다른 투자다.편견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 바인드팀은 '중년 남성은 온라인으로 패션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편견 뒤에 숨은 기회를 발견하고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그 기회가 얼마나 큰 성장으로 돌아올지, 심사역으로서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애슬러가 4050 남성을 위한 멋진 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임채경 패스트벤처스 심사역 ㅣ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하고 KAIST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이후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뒤 패스트벤처스에 입사해 심사역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서비스부터 브랜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초기 기업에 투자해왔으며, 최근에는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