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휘할 때 리오넬 메시의 리더십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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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윤한결의 지휘와 작곡 사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아르떼'에 글을 올립니다. 올해 드리는 마지막 글이 아닐까 싶네요. 올해 썼던 4개의 글들을 보니 제 커리어와 음악에 관련된 글들 뿐이라 오늘은 지난 1년간의 제 삶을 돌아보며 어느정도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드릴까 싶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모든 게 이어져 있다보니,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지난 1년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이야기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딱 1년 전인 2022년 11월말~12월초. 제가 응원해온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조별예선 2차전 아르헨티나 vs 멕시코전입니다.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약팀에게 뜬끔없이 패했던 터라 2차전에서 강팀인 멕시코에게 또 패한다면 16년 넘게 응원해온 메시가 평생의 꿈을 이루는 것을 못볼 상황이었죠.
당시에 부산시향과의 데뷔 연주를 하러 한국에 가야했는데, 하필 그 경기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습니다.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 가장 비싼 방송을 구독한 상태였기에 기내 인터넷이 잘 터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기내 인터넷은 다행히 잘 됐습니다. 막상막하의 경기였는데, 메시가 후반전 패색이 짙을 때 말도 안되는 각도에서 중거리슛 골을 넣어 결국 아르헨티나가 승리했죠.
너무나 갑자기 뜬끔없이 골이 들어가서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다른 승객들이 놀랄까봐 입을 막고 혼자 속으로만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바로 옆에 분은 주체없이 흔들리는 의자 때문에 자다가 깨셔서 사과했습니다) 메시 스스로도 이 골이 대회 모든 순간중에 가장 중요했다고 할 정도였죠.
부산시향 연주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와 결승전을 관람하였는데, 아시다시피 엄청난 경기였고 결국 메시와 아르헨티나가 36년만에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독일 유학 시절 내내 우상이었던 선수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격적이더라고요. 웃기지만, 언제나 메시가 큰 성과를 내면 제게도 음악가로서 좋은 일이 꼭 일어났기에 2023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메시가 유럽 축구 최고의 대회인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2008~2009 시즌 이후 서울예고에 합격했고, 2010~2011 시즌 우승 후엔 뮌헨음대 작곡과로 합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승한 2014~2015시즌 이후엔 제가 참가한 3개의 작곡 관련 국제 콩쿠르들에서 다 입상했습니다. 자연스레 메시의 월드컵 우승 덕분에 제가 카라얀 젊은지휘자상을 받은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완전히 다른 분야이지만, 메시는 음악가로서의 제 방향성과 목표를 정할 때도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메시는 팀의 중심으로서 경기를 조율하고 이끌며 팀원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맨 앞에서 해결하는, 말도 안되는 능력을 가진 선수죠. 저도 평소에는 연주자들이 최고의 연주를 할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지휘를 추구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번뜩이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지휘자가 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메시의 월드컵 우승 이후 올 1~2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사이먼 래틀 경의 유럽투어에 부지휘자로 동행했습니다.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지그프리드를 했는데요, 리허설 전부터 파트보에 문제가 생겨 제가 혼자 다 지우고 쓰고 고치는 허드렛일을 몇주동안 밤새며 했는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래틀을 위한 것이니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허드렛일이 끝나고 리허설이 시작됐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음악을 감상하며 래틀 경에게 드릴 노트를 적고 있었는데, 래틀 경이 리허설 이틀차에 갑자기 부르더니 "지휘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작년 3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심포니 연주 때 무대 뒤 금관밴드를 지휘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1분짜리 음악이었습니다. 이런 톱 클래스 오케스트라에서 이런 작품을 하는데 부지휘자에게 리허설을 시키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당시에는 갑자기 지휘하게 돼서 현실감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덕분에 투어 연주가 시작된 뒤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닉과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연주 직전 드레스 리허설을 아예 제게 맡겼습니다. 공식 데뷔는 아니지만 이런 오케스트라와 이런 작품을 이런 연주장에서 래틀 경이 보는 앞에서 지휘한다는 건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제가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꿈 꾸도록 만들어준 '꿈의 오케스트라'가 저를 믿어줬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더욱 뜻 깊었습니다. 투어가 끝나고 2023년 2월25일, 저는 같은 일을 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초 처음 만난 제 아내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과 같이 경험한 수많은 소중한 추억들이 없었다면 저는 분명 이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게 다른 방식의 지휘와 음악적 표현력을 알려주었고, 제가 안정적인 커리어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하지만 보상도 그만큼 큰 도전을 많이 하도록 믿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도 그만큼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고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이후 2023년 3월12일, 제 생일 딱 1주일 전에 외국생활 내내 저의 동기부여이자 활력소였던, 제 친동생과도 같던 흰색 슈나우저 강아지 마린이와 작별했습니다. 부모님이 친아들처럼 잘 키워주셨는데요, 작년 8월 갑작스레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예상보다 7개월을 더 살다 갔지요.
4월초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카라얀 지휘자상 오디션(준결승)이 있었던터라 많이 신경쓰였는데, 그걸 알았는지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넉넉히 주고 떠났습니다. 무엇보다 작년 말 한국에서 여러 악단들과 연주했는데, 매일 몇시간씩 들여 대구에서 출퇴근하며 마린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2월 결혼식 전후로 같이 며칠 지내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4월초, 오랜 목표였던 카라얀 지휘상 오디션이 있었습니다. 저는 감정변화도 적고 워낙 무뎌서 잘 긴장하지 않는데, 평생 처음으로 정말 많이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직전에 워낙 많은 일들이 있고 또한 많은 기대가 있어서인지, 혹은 제 오랜 목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룰 기회를 얻어서인 지는 모르지만 정말 긴장돼서 심호흡도 연속으로 세번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저의 필살기인 남독일·오스트리아 방언으로 인사한 덕분에 다들 웃고 분위기가 곧바로 좋아져서 아무 탈 없이 잘 끝났습니다. 하지만 결선에서 겨루는 동료중 제가 아는 친구만 해도 비엔나 극장 수석지휘자, 도이체 오퍼 암 라인 수석지휘자, 도이체 오퍼 암 라인 차기 음악감독,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객원지휘자 등 실력자들이 많이 있어서 되겠나 싶더라구요. 다들 멋지게 차려입고 왔는데, 거기서 위축되면 안되니까 '근데 나는 바로 얼마전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지휘해봤다! 너희들은 해봤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악단들과 데뷔 연주를 했는데요, 그중 서울시향과의 연주가 기억에 남습니다. 연주도,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악단이 '서울에 혼자 음악공부 하러온 중학생 대구 촌놈의 주변 친구들이 우러러 보던 그 오케스트라구나'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만큼 영광이기도 하고요. 제가 워낙 감정이 무뎌서 만족스러웠지만 감격스러워하지 못하는게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좋은 연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발표해도 되는지 몰라서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정말 좋은 분들과 좋은 오케스트라들과 연주를 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2월에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8월에 잘츠부르크에서, 9월에 뮌헨에서, 12월에 룩셈부르크에서 확정된 연주들이 있기에 혹시 이 시기에 유럽에 계시면 보러오세요!
딱 1년 전인 2022년 11월말~12월초. 제가 응원해온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조별예선 2차전 아르헨티나 vs 멕시코전입니다.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약팀에게 뜬끔없이 패했던 터라 2차전에서 강팀인 멕시코에게 또 패한다면 16년 넘게 응원해온 메시가 평생의 꿈을 이루는 것을 못볼 상황이었죠.
당시에 부산시향과의 데뷔 연주를 하러 한국에 가야했는데, 하필 그 경기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습니다.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 가장 비싼 방송을 구독한 상태였기에 기내 인터넷이 잘 터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기내 인터넷은 다행히 잘 됐습니다. 막상막하의 경기였는데, 메시가 후반전 패색이 짙을 때 말도 안되는 각도에서 중거리슛 골을 넣어 결국 아르헨티나가 승리했죠.
너무나 갑자기 뜬끔없이 골이 들어가서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다른 승객들이 놀랄까봐 입을 막고 혼자 속으로만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바로 옆에 분은 주체없이 흔들리는 의자 때문에 자다가 깨셔서 사과했습니다) 메시 스스로도 이 골이 대회 모든 순간중에 가장 중요했다고 할 정도였죠.
부산시향 연주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와 결승전을 관람하였는데, 아시다시피 엄청난 경기였고 결국 메시와 아르헨티나가 36년만에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독일 유학 시절 내내 우상이었던 선수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격적이더라고요. 웃기지만, 언제나 메시가 큰 성과를 내면 제게도 음악가로서 좋은 일이 꼭 일어났기에 2023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메시가 유럽 축구 최고의 대회인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2008~2009 시즌 이후 서울예고에 합격했고, 2010~2011 시즌 우승 후엔 뮌헨음대 작곡과로 합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승한 2014~2015시즌 이후엔 제가 참가한 3개의 작곡 관련 국제 콩쿠르들에서 다 입상했습니다. 자연스레 메시의 월드컵 우승 덕분에 제가 카라얀 젊은지휘자상을 받은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완전히 다른 분야이지만, 메시는 음악가로서의 제 방향성과 목표를 정할 때도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메시는 팀의 중심으로서 경기를 조율하고 이끌며 팀원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맨 앞에서 해결하는, 말도 안되는 능력을 가진 선수죠. 저도 평소에는 연주자들이 최고의 연주를 할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지휘를 추구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번뜩이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지휘자가 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메시의 월드컵 우승 이후 올 1~2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사이먼 래틀 경의 유럽투어에 부지휘자로 동행했습니다.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지그프리드를 했는데요, 리허설 전부터 파트보에 문제가 생겨 제가 혼자 다 지우고 쓰고 고치는 허드렛일을 몇주동안 밤새며 했는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래틀을 위한 것이니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허드렛일이 끝나고 리허설이 시작됐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음악을 감상하며 래틀 경에게 드릴 노트를 적고 있었는데, 래틀 경이 리허설 이틀차에 갑자기 부르더니 "지휘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작년 3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심포니 연주 때 무대 뒤 금관밴드를 지휘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1분짜리 음악이었습니다. 이런 톱 클래스 오케스트라에서 이런 작품을 하는데 부지휘자에게 리허설을 시키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당시에는 갑자기 지휘하게 돼서 현실감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덕분에 투어 연주가 시작된 뒤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닉과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연주 직전 드레스 리허설을 아예 제게 맡겼습니다. 공식 데뷔는 아니지만 이런 오케스트라와 이런 작품을 이런 연주장에서 래틀 경이 보는 앞에서 지휘한다는 건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제가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꿈 꾸도록 만들어준 '꿈의 오케스트라'가 저를 믿어줬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더욱 뜻 깊었습니다. 투어가 끝나고 2023년 2월25일, 저는 같은 일을 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초 처음 만난 제 아내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과 같이 경험한 수많은 소중한 추억들이 없었다면 저는 분명 이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게 다른 방식의 지휘와 음악적 표현력을 알려주었고, 제가 안정적인 커리어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하지만 보상도 그만큼 큰 도전을 많이 하도록 믿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도 그만큼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고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이후 2023년 3월12일, 제 생일 딱 1주일 전에 외국생활 내내 저의 동기부여이자 활력소였던, 제 친동생과도 같던 흰색 슈나우저 강아지 마린이와 작별했습니다. 부모님이 친아들처럼 잘 키워주셨는데요, 작년 8월 갑작스레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예상보다 7개월을 더 살다 갔지요.
4월초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카라얀 지휘자상 오디션(준결승)이 있었던터라 많이 신경쓰였는데, 그걸 알았는지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넉넉히 주고 떠났습니다. 무엇보다 작년 말 한국에서 여러 악단들과 연주했는데, 매일 몇시간씩 들여 대구에서 출퇴근하며 마린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2월 결혼식 전후로 같이 며칠 지내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4월초, 오랜 목표였던 카라얀 지휘상 오디션이 있었습니다. 저는 감정변화도 적고 워낙 무뎌서 잘 긴장하지 않는데, 평생 처음으로 정말 많이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직전에 워낙 많은 일들이 있고 또한 많은 기대가 있어서인지, 혹은 제 오랜 목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룰 기회를 얻어서인 지는 모르지만 정말 긴장돼서 심호흡도 연속으로 세번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저의 필살기인 남독일·오스트리아 방언으로 인사한 덕분에 다들 웃고 분위기가 곧바로 좋아져서 아무 탈 없이 잘 끝났습니다. 하지만 결선에서 겨루는 동료중 제가 아는 친구만 해도 비엔나 극장 수석지휘자, 도이체 오퍼 암 라인 수석지휘자, 도이체 오퍼 암 라인 차기 음악감독,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객원지휘자 등 실력자들이 많이 있어서 되겠나 싶더라구요. 다들 멋지게 차려입고 왔는데, 거기서 위축되면 안되니까 '근데 나는 바로 얼마전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지휘해봤다! 너희들은 해봤냐?'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악단들과 데뷔 연주를 했는데요, 그중 서울시향과의 연주가 기억에 남습니다. 연주도,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악단이 '서울에 혼자 음악공부 하러온 중학생 대구 촌놈의 주변 친구들이 우러러 보던 그 오케스트라구나'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만큼 영광이기도 하고요. 제가 워낙 감정이 무뎌서 만족스러웠지만 감격스러워하지 못하는게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좋은 연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발표해도 되는지 몰라서 아직 말씀드릴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정말 좋은 분들과 좋은 오케스트라들과 연주를 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2월에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8월에 잘츠부르크에서, 9월에 뮌헨에서, 12월에 룩셈부르크에서 확정된 연주들이 있기에 혹시 이 시기에 유럽에 계시면 보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