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한류 원조' 이응노展, 프랑스서 미공개작까지 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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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1904~1989)는 '미술 한류(韓流)'의 원조로 꼽히는 화가다. 1958년 54세의 나이로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에 진출해 현지 미술계의 ‘슈퍼스타’가 됐다. 당대 최고 화랑이었던 파케티 갤러리의 러브콜을 받으며 계약을 맺었고, 전시를 할 때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평론가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응노가 파리에 동양미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을 때 수강생이 구름처럼 몰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1989년 이응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프랑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어 조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응노의 국내 인지도는 국제적 위상에 한참 못 미친다. 작품세계 전반을 돌아보는 전시도 드물었다. 사연 많은 인생 탓이었다. 이응노는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2년 반의 옥고를 치렀다. 아내인 박인경의 주도로 1977년 윤정희·백건우 부부가 납북될 뻔한 사건에 연루된 적도 있었다. 정부는 그의 입국과 국내 전시 및 작품 거래를 한때 금지시키도 했다. 1983년 프랑스로 귀화한 이응노는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89년 1월 10일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모처럼 열린 이응노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명하는 전시다. 이응노를 기리는 미술관인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그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60여점의 전시작 중 대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라리오뮤지엄, 프랑스 퐁피두 센터, 체르누스키 파리시립 아시아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빌려온 것. 김지윤 학예연구사는 “이응노가 프랑스로 이주하기 전 작품과 이후 작품을 골고루 소개하는 전시”라며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작품 4점 등 국내 전시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이응노가 수묵으로 화선지에 인간 군상을 그린 ‘군상’(1985)을 비롯한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종이로 싼 캔버스 위에 종이를 찢어서 붙인 ‘무제’(1960), 캔버스에 모래를 붙여 마모된 돌의 질감을 주는 ‘구성’(1963), 1989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이응노 추모전에 전시된 1964년작 ‘구성’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이응노의 스케치 모음도 흥미롭다. 외투와 모자를 쓴 서양인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수묵으로 스케치한 ‘파리 사람’(1976)이 대표적이다.
다음으로는 이응노가 프랑스 이주 전 그린 한국화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1932년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대죽’은 초기 대나무 그림 경향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1950년대 초반 그린 ‘지게꾼들’은 서민과 약자에 대한 이응노의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다. 전시 마지막에는 그가 프랑스에서 운영했던 동양미술학교 관련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가 나와 있다. 이응노의 시기별 작품세계를 시대별로 충실하게 소개한 전시다. 다만 전시장의 전반적인 조명 밝기가 지나치게 어두운 점이 아쉽다. 미술관 측은 “그림을 빌려준 해외 미술관들이 작품 보존을 위해 조도를 낮춰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부 어두운 색감의 작품들은 세부 사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미술관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온다. 그래서 흐린 날보다 미술관에 볕이 잘 드는 맑은 날 보면 더 좋을 전시다.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하지만 이응노의 국내 인지도는 국제적 위상에 한참 못 미친다. 작품세계 전반을 돌아보는 전시도 드물었다. 사연 많은 인생 탓이었다. 이응노는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2년 반의 옥고를 치렀다. 아내인 박인경의 주도로 1977년 윤정희·백건우 부부가 납북될 뻔한 사건에 연루된 적도 있었다. 정부는 그의 입국과 국내 전시 및 작품 거래를 한때 금지시키도 했다. 1983년 프랑스로 귀화한 이응노는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89년 1월 10일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모처럼 열린 이응노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명하는 전시다. 이응노를 기리는 미술관인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그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60여점의 전시작 중 대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라리오뮤지엄, 프랑스 퐁피두 센터, 체르누스키 파리시립 아시아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빌려온 것. 김지윤 학예연구사는 “이응노가 프랑스로 이주하기 전 작품과 이후 작품을 골고루 소개하는 전시”라며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작품 4점 등 국내 전시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이응노가 수묵으로 화선지에 인간 군상을 그린 ‘군상’(1985)을 비롯한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종이로 싼 캔버스 위에 종이를 찢어서 붙인 ‘무제’(1960), 캔버스에 모래를 붙여 마모된 돌의 질감을 주는 ‘구성’(1963), 1989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이응노 추모전에 전시된 1964년작 ‘구성’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이응노의 스케치 모음도 흥미롭다. 외투와 모자를 쓴 서양인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수묵으로 스케치한 ‘파리 사람’(1976)이 대표적이다.
다음으로는 이응노가 프랑스 이주 전 그린 한국화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1932년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대죽’은 초기 대나무 그림 경향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1950년대 초반 그린 ‘지게꾼들’은 서민과 약자에 대한 이응노의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다. 전시 마지막에는 그가 프랑스에서 운영했던 동양미술학교 관련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가 나와 있다. 이응노의 시기별 작품세계를 시대별로 충실하게 소개한 전시다. 다만 전시장의 전반적인 조명 밝기가 지나치게 어두운 점이 아쉽다. 미술관 측은 “그림을 빌려준 해외 미술관들이 작품 보존을 위해 조도를 낮춰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부 어두운 색감의 작품들은 세부 사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미술관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온다. 그래서 흐린 날보다 미술관에 볕이 잘 드는 맑은 날 보면 더 좋을 전시다.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