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세율이 50%에 달하는 징벌적 상속·증여세 체계 개편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제기됐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세수 감소와 부자 감세 프레임을 우려해 상속·증여세 개편 논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오히려 민주당 의원들이 관련 아젠다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경기 성남 분당과 서울 목동을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지역 표심을 겨냥해 내놓은 주장이어서 당 차원의 논의로 이어지진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민주당 김병욱(성남 분당을)·황희(서울 양천갑)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상속·증여세와 부동산 과세 개선’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는 상속·증여세가 이념화된 탓에 진영 논리에 막혀 실효성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왔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담을 지우는 상속·증여세 체계 개편 필요성이 큰데도 ‘부자 감세’ ‘부의 대물림’ 틀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 세율은 50%로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최대주주 할증(20%)이 적용되면 세율이 60%까지 치솟는다. 이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가업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에 이른다.

김 의원은 “능력 있는 오너가 최대주주로서 추진력과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업 지배구조”라며 “징벌적 최대주주 할증을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 재산 전체에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상속인별로 쪼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했다. 상속세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을 채택한 나라는 한국과 미국, 영국, 덴마크뿐이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20개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이다.

황 의원도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 성장이 어려워) 재계 서열이 지난 수십년간 바뀌지 않고 있다”며 “전 세계 산업 구조와 형태가 바뀌는 가운데 세금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필요하다면 상속·증여세 폐지라는 과감한 시도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부자 감세’라고 비판해 온 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전오 한국조세연구소 상임운영위원장은 토론자로 나와 “국민의힘에서 주최한 줄 알았다”고 했다. 직전 원내대표를 지낸 박광온 의원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상속·증여세 개편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