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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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 종료 시점을 예정보다 앞당겨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양적긴축(QT)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유럽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대차대조표 축소 속도를 높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과 함께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통화긴축 수단이다. 중앙은행은 통화완화 정책을 펼칠 때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늘려준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만기가 도래한 채권에 재투자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채권 매입을 줄이면 시중 유동성이 줄어든다. 중앙은행은 자산인 채권을 줄이면 통상 지급준비금 등 부채 항목을 줄이면 대차대조표를 축소한다.

FT는 라가르드의 이날 발언을 두고 “금리 인상을 넘어 통화긴축을 강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ECB는 지난해 통화긴축 페달을 밟으면서 채권 매입을 대부분 중단했다. 그러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매입해온 1조7000억유로(약 2422조원) 규모의 채권을 매입한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에 대한 재투자는 유지해왔다. ECB는 PEPP를 내년 말까지 보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ECB 내 매파(통화긴축 선호) 위원들 사이에서 채권 매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ECB가 단행한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기조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PEPP의 발단이 됐던 팬데믹이 사실상 끝났다는 점도 힘을 실었다.

그러나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위원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경기침체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ECB의 채권 매입은 금융시장의 ‘1차 방어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ECB의 전체 채권 보유규모는 유로존 전체 투자적격 채권의 약 30% 수준이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이탈리아의 국가신용 전망을 ‘안정적’으로 상향한 데도 ECB의 이탈리아 채권 시장을 지원한 이후 정부부채와 금융 부문이 개선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ECB는 이 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ECB가 PEPP 재투자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 옌스 아이젠슈미트는 ECB가 내년 4월부터 6개월 간 채권 재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인 후 10월 완전히 종료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ECB 채권 포트폴리오는 내년 말까지 870억유로, 2025년 말까지 2580억유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딧의 채권 애널리스트 프란체스코 마리아 디벨라는 “(유로존) 국가들이 정부 적자를 줄이며 내년 채권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ECB의 양적 긴축으로 시장 순공급은 증가할 것”이라며 “ECB가 PEPP 재투자를 줄이기로 결정하면 (채권시장)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