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못 버텨"…대기업도 희망퇴직 카드 꺼낸 이유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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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도 못 버틴 치열한 경쟁
한국 유통산업의 '거대한 전환'
한국 유통산업의 '거대한 전환'
SK그룹 계열의 e커머스 기업인 11번가가 희망퇴직 카드를 꺼냈다. 11번가가 어떤 회사인가. 2008년 오픈마켓 시장에 뛰어들어 2017년엔 거래액 기준으로 G마켓을 따라잡고, 1위에 올랐었다. SK라는 모기업의 막강한 후광에다 아마존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11번가는 국내 오픈마켓 업체 중 최초 상장이라는 꿈에 거의 다다른 듯했다.
11번가의 ‘일보 후퇴’는 한국 유통 산업이 구조적으로 거대한 변환점에 서 있음을 방증한다. 2010년 ‘창업 동기생’인 위메프, 티몬에 이어 11번가마저 사실상 시장 지배력을 상실함으로써 오픈마켓이라 불리는 간접 유통 시장의 판도가 쿠팡과 네이버라는 양극 체제로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직접 유통 시장은 이마트를 필두로 대형마트 3사가 시장을 석권했다. 2019년 대형마트 3사의 매장은 424개로 정점을 찍었다. 그해 이마트의 매출(연결기준)은 19조원이었다. 홈플러스(7조3000억원, 2019년 3월~2020년 2월)와 롯데마트(6조3310억원)를 합하면 3사의 매출은 30조원을 웃돌았다. 사실상 독과점 체제였다. 온라인 직접 유통 시장을 개척한 쿠팡이 뛰어들면서 대형마트 3사의 지배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직접 유통 시장은 여전히 팽팽한 세력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오픈 마켓은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다. G마켓, 옥션, 인터파크 등 1세대들조차 여전히 나름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했다. 여기에 11번가와 2010년 창업 동기생인 위메프, 티몬, 쿠팡까지 가세했다. 코로나 3년은 오픈 마켓을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몰고 갔다. 종합몰 형태의 온라인 중개 플랫폼뿐만 아니라 패션, 인테리어, 신선식품, 여행, 뷰티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버티컬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스마트스토어를 앞세운 네이버조차 오픈 마켓에선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다.
11번가의 구조조정은 오픈 마켓 시장의 판도 변화에 관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직접 유통 시장처럼 몇몇 상위 업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형태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모험 자본으로의 자본 이동이 제한되면서 ‘플랫폼과 미래 가치’라는 두 가지 컨셉트로 자금을 유치하려던 오픈 마켓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 공개(IPO) 계획이 무산되자 투자가 위축되고, 이로 인해 거래액 감소와 적자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현금 실탄이 넉넉지 못한 버티컬 플랫폼들이 장악하던 영역은 쿠팡, 네이버, 컬리 등 상위 업체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11번가마저 영향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면서 K셀러들은 쿠팡 아니면 네이버라는 양자택일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국 유통 기업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올 3분기) 8조원을 기록한 쿠팡은 직접 유통 시장에 이어 오픈 마켓에서도 점유율을 상당히 끌어올릴 전망이다. 오픈 마켓의 주요 매출원은 광고와 수수료다. 규모의 경제만 갖추면 들인 밑천에 비해 얻는 수익이 상당하다. 쿠팡은 오픈 마켓에서 벌어들인 돈을 직접 유통과 멤버십 서비스에 더 쏟아부음으로써 ‘플라이휠’의 회전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쿠팡의 유일한 대항마는 네이버 쇼핑이다. 강력한 경쟁자인 카카오가 위기에 처한 사이에 네이버는 ‘AI(인공지능) 쇼핑’을 강화하면서 오픈 마켓의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수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쿠팡은 클라우드 부문에서도 아마존에 의존했듯이, LLM(거대언어모델)에 기반한 생성형 AI에서도 직접 개발보다는 빅테크의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근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공세는 또 하나의 변수다. 알리가 K셀러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에 따라 쿠팡, 네이버의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11번가의 ‘일보 후퇴’는 한국 유통 산업이 구조적으로 거대한 변환점에 서 있음을 방증한다. 2010년 ‘창업 동기생’인 위메프, 티몬에 이어 11번가마저 사실상 시장 지배력을 상실함으로써 오픈마켓이라 불리는 간접 유통 시장의 판도가 쿠팡과 네이버라는 양극 체제로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춘추전국' 오픈 마켓 시장의 재편
국내 유통 산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이마트처럼 제조사나 대형 벤더로부터 상품을 매입해 재고 부담을 감수하면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직접 유통이 한 축이다. 다른 한쪽은 글로벌 유통기업인 이베이와 아마존이 창안한 오픈마켓이다. IT(정보기술)로 무장한 e커머스 업체가 플랫폼을 만들어 놓으면, 그 위에서 수많은 셀러와 소비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판다.직접 유통 시장은 이마트를 필두로 대형마트 3사가 시장을 석권했다. 2019년 대형마트 3사의 매장은 424개로 정점을 찍었다. 그해 이마트의 매출(연결기준)은 19조원이었다. 홈플러스(7조3000억원, 2019년 3월~2020년 2월)와 롯데마트(6조3310억원)를 합하면 3사의 매출은 30조원을 웃돌았다. 사실상 독과점 체제였다. 온라인 직접 유통 시장을 개척한 쿠팡이 뛰어들면서 대형마트 3사의 지배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직접 유통 시장은 여전히 팽팽한 세력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오픈 마켓은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다. G마켓, 옥션, 인터파크 등 1세대들조차 여전히 나름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했다. 여기에 11번가와 2010년 창업 동기생인 위메프, 티몬, 쿠팡까지 가세했다. 코로나 3년은 오픈 마켓을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몰고 갔다. 종합몰 형태의 온라인 중개 플랫폼뿐만 아니라 패션, 인테리어, 신선식품, 여행, 뷰티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버티컬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스마트스토어를 앞세운 네이버조차 오픈 마켓에선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다.
11번가의 구조조정은 오픈 마켓 시장의 판도 변화에 관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직접 유통 시장처럼 몇몇 상위 업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형태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모험 자본으로의 자본 이동이 제한되면서 ‘플랫폼과 미래 가치’라는 두 가지 컨셉트로 자금을 유치하려던 오픈 마켓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 공개(IPO) 계획이 무산되자 투자가 위축되고, 이로 인해 거래액 감소와 적자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현금 실탄이 넉넉지 못한 버티컬 플랫폼들이 장악하던 영역은 쿠팡, 네이버, 컬리 등 상위 업체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쿠팡에 날아 든 또 한번의 엄청난 기회
국내 오픈 마켓의 재편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는 쿠팡의 행보다. 쿠팡은 창사 이래 두 가지 의문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연간 수조 원 규모의 적자를 내면서 버틸 기업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의혹이었고, 한국의 유통 산업은 언제까지나 춘추전국시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쿠팡의 성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질문이다.11번가마저 영향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면서 K셀러들은 쿠팡 아니면 네이버라는 양자택일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국 유통 기업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올 3분기) 8조원을 기록한 쿠팡은 직접 유통 시장에 이어 오픈 마켓에서도 점유율을 상당히 끌어올릴 전망이다. 오픈 마켓의 주요 매출원은 광고와 수수료다. 규모의 경제만 갖추면 들인 밑천에 비해 얻는 수익이 상당하다. 쿠팡은 오픈 마켓에서 벌어들인 돈을 직접 유통과 멤버십 서비스에 더 쏟아부음으로써 ‘플라이휠’의 회전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쿠팡의 유일한 대항마는 네이버 쇼핑이다. 강력한 경쟁자인 카카오가 위기에 처한 사이에 네이버는 ‘AI(인공지능) 쇼핑’을 강화하면서 오픈 마켓의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수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쿠팡은 클라우드 부문에서도 아마존에 의존했듯이, LLM(거대언어모델)에 기반한 생성형 AI에서도 직접 개발보다는 빅테크의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근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공세는 또 하나의 변수다. 알리가 K셀러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에 따라 쿠팡, 네이버의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