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럽에서 만난 '전통시장'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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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성 서울 중구청장
전통시장, 마트·온라인과 가격경쟁 어려워
네덜란드 '마켓홀' 영국 '버로우마켓'
독특한 분위기로 관광객 발길
상인들의 자부심, 의사결정체제 중요
젊은 층 의견 더해지면 풍성한 해법
전통시장, 마트·온라인과 가격경쟁 어려워
네덜란드 '마켓홀' 영국 '버로우마켓'
독특한 분위기로 관광객 발길
상인들의 자부심, 의사결정체제 중요
젊은 층 의견 더해지면 풍성한 해법
“저희는 문제가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네덜란드 엠브이알디브이(MVRDV) 건축 설계사를 찾아가 어떻게 전통시장에 ‘마켓홀’과 같은 창의적인 발상을 도입했는지 묻자, 이교석 아시아 담당 이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대답이 큰 힘이 됐다. 서울 중구는 ‘시장부자’다. 전통시장, 지하상가, 골목형상점가까지 무려 50개에 달한다. 남대문시장, 동대문권역 시장, 중부시장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장부터 골목길에서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상점가까지, 지자체 단위로는 가장 많은 시장을 품고 있다. 시장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서울 자치구에서 유일하게 전통시장 전담 부서가 있을 정도다.
그동안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과 부단히 경쟁하며 버텨왔다. 전통시장에 닥친 문제는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600년이 넘는 서울의 역사와 함께해 온 시장은 점점 노후화되고 있다. 시장마다 처한 상황도 다 달라서 해법도 맞춤형으로 찾아야 한다.
지난 4월 신중앙시장에 ‘경사’가 났다. ‘서울시 디자인 혁신 전통시장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대규모 지원을 받게 된 것. 고민도 깊어졌다. 도심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전통시장 노후화 개선 숙제에 신중앙시장을 세계적인 관광시장으로 변모시켜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보태졌다. 시장에 어떤 매력을 입히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월 유럽을 방문했다.
첫 방문지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시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건축물 전시장과도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건축 혁신으로 재건했다더니, 그 규모와 외관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시를 관광의 중심으로 이끈 곳이 바로 ‘마켓홀’ 이다. ‘마켓홀’은 말발굽 모양의 독특한 아치형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건물 내에서 쇼핑과 식사, 휴식까지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으로 꼽혀 로테르담시는 ‘마켓홀 효과’로 매년 약 7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도심공동화로 슬럼화되면서 골머리를 앓던 이곳은 2014년 마켓홀이 들어선 후 ‘상전벽해’를 이뤘다. 2004년부터 10년에 걸친 공사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기존 상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주차 공간을 확보해 도심에 새로운 주민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결과물이 바로 마켓홀 건물이다. 유럽의 경우 시장 땅을 공공이 소유하고 있어 우리보다 대규모 개발이 훨씬 수월하긴 하다. 신중앙시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우리 전통시장이 마켓홀이 지니고 있던 문제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속속들이 눈여겨볼 점이 많다.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의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당장이라도 물건을 사고 싶게 만드는 진열방식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프레지덩-윌슨 시장, 네덜란드의 알버트 큐이프 마켓에선 시각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채소와 과일이 색과 크기를 조화롭게 맞춰 알록달록하게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진열대도 우리 시장처럼 바닥에 놓여있지 않고 고객의 눈높이에 일치시켜 신선식품이 고객과 눈을 맞추며 싱그러운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연 채광이 들어오도록 지붕을 개조한 런던의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도 인상적이었다. 밝고 탁 트인 공간이 주는 활기찬 분위기가 주변 상권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천 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런던의 버로우 마켓은 유럽 시장의 ‘끝판왕’이었다. 밝고 청량한 시장 분위기, 철저한 가격표시, 친절한 상인들의 모습으로도 시장에 다시 올 이유는 충분했다. 골목골목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것은 그 때문인 듯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다. 유럽 전통시장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3개국 6개 시장을 둘러보며 필자는 그것이 ‘상인들의 높은 자부심’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프레지덩-윌슨 마켓에서 들른 가게는 3대에 걸쳐 치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에게 시식을 권하던 사장은 치즈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을 풀어 놓았다. 상품 진열이나 품질 관리 등은 우리 전통시장에서도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시장 상인들 개개인의 주인의식, 경쟁력과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의 시장에는 공공의 지원이 따로 없다. 시장의 운영에 관한 사항은 상인들이 직접 결정한다. 상인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나 지자체가 시장을 지원하는 주요한 목적이지만 이 역시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최근 전통시장엔 MZ세대가 주도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이들이 전통시장에 열광하는 것은 낡은 느낌의 시장과 세련된 현대적 요소가 어우러진 묘한 매력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의 전통시장을 둘러보며 얻은 중요한 수확이 있다면 ‘문제 해결 과정에 충실하면 답도 자연히 따라온다’라는 믿음이다.
마켓홀의 건립 과정이 생생하게 보여준 교훈을 우리 시장에도 적용해 보려 한다. 시장 구성원들과 치열하게 논의하는 순간순간이 어떤 무늬를 그려낼지 궁금해진다. 전통시장의 미래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 같다. 우리라고 못 할 것 없다. ‘시장부자’ 중구가 이제 그 시장들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날이 머지않았다. 모처럼 관심의 대상이 된 우리 전통시장에도 거대한 ‘마켓홀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네덜란드 엠브이알디브이(MVRDV) 건축 설계사를 찾아가 어떻게 전통시장에 ‘마켓홀’과 같은 창의적인 발상을 도입했는지 묻자, 이교석 아시아 담당 이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대답이 큰 힘이 됐다. 서울 중구는 ‘시장부자’다. 전통시장, 지하상가, 골목형상점가까지 무려 50개에 달한다. 남대문시장, 동대문권역 시장, 중부시장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장부터 골목길에서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상점가까지, 지자체 단위로는 가장 많은 시장을 품고 있다. 시장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서울 자치구에서 유일하게 전통시장 전담 부서가 있을 정도다.
그동안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과 부단히 경쟁하며 버텨왔다. 전통시장에 닥친 문제는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600년이 넘는 서울의 역사와 함께해 온 시장은 점점 노후화되고 있다. 시장마다 처한 상황도 다 달라서 해법도 맞춤형으로 찾아야 한다.
지난 4월 신중앙시장에 ‘경사’가 났다. ‘서울시 디자인 혁신 전통시장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대규모 지원을 받게 된 것. 고민도 깊어졌다. 도심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전통시장 노후화 개선 숙제에 신중앙시장을 세계적인 관광시장으로 변모시켜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보태졌다. 시장에 어떤 매력을 입히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월 유럽을 방문했다.
첫 방문지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시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건축물 전시장과도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건축 혁신으로 재건했다더니, 그 규모와 외관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시를 관광의 중심으로 이끈 곳이 바로 ‘마켓홀’ 이다. ‘마켓홀’은 말발굽 모양의 독특한 아치형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건물 내에서 쇼핑과 식사, 휴식까지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으로 꼽혀 로테르담시는 ‘마켓홀 효과’로 매년 약 7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도심공동화로 슬럼화되면서 골머리를 앓던 이곳은 2014년 마켓홀이 들어선 후 ‘상전벽해’를 이뤘다. 2004년부터 10년에 걸친 공사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기존 상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주차 공간을 확보해 도심에 새로운 주민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결과물이 바로 마켓홀 건물이다. 유럽의 경우 시장 땅을 공공이 소유하고 있어 우리보다 대규모 개발이 훨씬 수월하긴 하다. 신중앙시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우리 전통시장이 마켓홀이 지니고 있던 문제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속속들이 눈여겨볼 점이 많다.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의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당장이라도 물건을 사고 싶게 만드는 진열방식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프레지덩-윌슨 시장, 네덜란드의 알버트 큐이프 마켓에선 시각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채소와 과일이 색과 크기를 조화롭게 맞춰 알록달록하게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진열대도 우리 시장처럼 바닥에 놓여있지 않고 고객의 눈높이에 일치시켜 신선식품이 고객과 눈을 맞추며 싱그러운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연 채광이 들어오도록 지붕을 개조한 런던의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도 인상적이었다. 밝고 탁 트인 공간이 주는 활기찬 분위기가 주변 상권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천 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런던의 버로우 마켓은 유럽 시장의 ‘끝판왕’이었다. 밝고 청량한 시장 분위기, 철저한 가격표시, 친절한 상인들의 모습으로도 시장에 다시 올 이유는 충분했다. 골목골목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것은 그 때문인 듯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다. 유럽 전통시장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3개국 6개 시장을 둘러보며 필자는 그것이 ‘상인들의 높은 자부심’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프레지덩-윌슨 마켓에서 들른 가게는 3대에 걸쳐 치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에게 시식을 권하던 사장은 치즈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을 풀어 놓았다. 상품 진열이나 품질 관리 등은 우리 전통시장에서도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시장 상인들 개개인의 주인의식, 경쟁력과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의 시장에는 공공의 지원이 따로 없다. 시장의 운영에 관한 사항은 상인들이 직접 결정한다. 상인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나 지자체가 시장을 지원하는 주요한 목적이지만 이 역시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최근 전통시장엔 MZ세대가 주도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이들이 전통시장에 열광하는 것은 낡은 느낌의 시장과 세련된 현대적 요소가 어우러진 묘한 매력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의 전통시장을 둘러보며 얻은 중요한 수확이 있다면 ‘문제 해결 과정에 충실하면 답도 자연히 따라온다’라는 믿음이다.
마켓홀의 건립 과정이 생생하게 보여준 교훈을 우리 시장에도 적용해 보려 한다. 시장 구성원들과 치열하게 논의하는 순간순간이 어떤 무늬를 그려낼지 궁금해진다. 전통시장의 미래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 같다. 우리라고 못 할 것 없다. ‘시장부자’ 중구가 이제 그 시장들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날이 머지않았다. 모처럼 관심의 대상이 된 우리 전통시장에도 거대한 ‘마켓홀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