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렌트’는 올해 27살이 됐다. 199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뒤 뮤지컬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에서 작품상과 작곡상, 각본상 등을 모두 휩쓸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수작이다.
'라 보엠' 100주년에 탄생한 뮤지컬 '렌트', 5가지 뒷이야기
비록 렌트(임대료)낼 돈은 없지만 열정만큼은 부자인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과 우정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무대 뒤 숨겨진 이야기도 만만찮게 흥미롭다. 마약과 매춘이 횡행하고 에이즈가 유행하는 슬럼가에서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달렸다’고 외치는 렌트. 이 발랄하고도 슬픈 뮤지컬이 국내에서 다섯번째 시즌을 맞았다. 렌트를 보기 전 미리 알고 가면 좋을 팁을 소개한다.
'라 보엠' 100주년에 탄생한 뮤지컬 '렌트', 5가지 뒷이야기

‘라 보엠’의 미미 VS ‘렌트’의 미미

‘렌트’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가 1896년 만든 오페라 ‘라 보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라 보엠’이 19세기 프랑스 파리 라탱 지구에 사는 가난한 시인과 화가, 음악가의 이야기라면, ‘렌트’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힘들게 사는 음악가와 행위예술가, 드래그 퀸의 이야기다. 원작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을 괴롭힌 병은 결핵이었지만, 이 작품에선 에이즈다.
'라 보엠' 100주년에 탄생한 뮤지컬 '렌트', 5가지 뒷이야기
‘라 보엠’에서 바느질로 먹고 사는 미미와 시인 로돌포의 러브스토리는 스트립 댄서 미미와 음악가 로저의 러브스토리로 변형됐다. 미미가 로저에게 불을 빌리러 왔다가 사랑에 빠지는 설정도 원작과 동일하고, 이때 나오는 넘버 ‘라이트 마이 캔들(Light My Candle)’의 멜로디는 오페라곡 ‘그대의 찬 손’ 등에서 가져왔다. 극중에서 로저가 작곡한 넘버 ‘유어 아이즈(Your Eyes)’는 원작의 ‘뮤제타의 왈츠’에서 일부 영감을 받았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막은 하루, 2막은 1년 간의 이야기

렌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등장인물이 많고 서사 전개 방식이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아서 처음 본 사람들은 다소 낯설거나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렌트의 매력이다. 누구 하나를 주인공으로 꼽기 힘들다. 미미와 로저 커플 외에도 레즈비언 조앤과 양성애자 모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 콜린과 드래그퀸 엔젤 등이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여러 번 관람하며 각각 다른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보는 것도 좋다는 얘기다.

작품은 총 2막으로 이뤄진다. 1막은 하루, 2막은 1년 동안의 이야기다. 1막에서 로저와 미미, 콜린과 엔젤 등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처음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시간이 흐른 뒤 2막에선 로저와 미미가 헤어지고, 엔젤은 병으로 죽으며, 1년 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다시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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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는 ‘시즌스 오브 러브(Seasons of Love)’다. 52만5600분으로 이뤄진 1년의 시간,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느냐는 내용의 가사가 담겨있다. 바로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잴 수 있다는 답이다.
'라 보엠' 100주년에 탄생한 뮤지컬 '렌트', 5가지 뒷이야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다. 뮤지컬 렌트의 작가 겸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삶이 떠올라서다. 그는 렌트에 자전적 이야기를 투영했다. 작품의 배경도 자신이 살던 뉴욕 슬럼가의 모습을 반영했고, 가난 속 예술을 꿈꾸던 자신의 모습이 작품 속에 녹아 들었다. 친구들을 에이즈로 잃었던 경험까지도 포함해서…. 그런 그는 렌트의 개막을 하루 앞두고 대동맥 박리로 쓰러져 사망했다. 배우들은 그를 기리는 의미로 첫 공연 시작 전 이 노래를 불렀다. 현재 이 넘버는 2막 맨 첫 부분에 들어가 모든 배우들이 함께 등장해 부르고 있다.

열혈 팬덤 ‘렌트 헤드’를 아시나요

1996년 1월 150석 규모의 오프-브로드웨이 작은 극장에서 시작한 뮤지컬 렌트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더 넓은 극장이 필요해진 ‘렌트’는 같은 해 4월 브로드웨이 네덜란드 씨어터로 옮겨 공연을 이어갔다. 관객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에 매료됐다. 렌트의 열혈팬을 지칭하는 ‘렌트 헤드’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라 보엠' 100주년에 탄생한 뮤지컬 '렌트', 5가지 뒷이야기
전통적으로 공연 시작 몇시간 전에 추첨 혹은 선착순으로 무대 바로 앞 좌석을 다른 티켓보다 훨씬 싼 가격(20달러)에 파는 ‘러쉬 티켓’도 있다. (작품 속 예술가들처럼) 형편이 좀 어려운 사람도 좋은 자리에서 렌트를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이 티켓을 사기 위해서 몇시간 동안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만 국내엔 러쉬 티켓은 없다.

최재림·정선아도 이 뮤지컬로 데뷔

국내에선 2000년 초연했다. 1세대 뮤지컬 스타 배우 남경주가 로저, 최정원이 미미를 맡았다.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만큼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라 보엠' 100주년에 탄생한 뮤지컬 '렌트', 5가지 뒷이야기
수많은 뮤지컬 스타들이 렌트로 데뷔했다. 배우 정선아는 2002년 고등학교 3학년에 오디션을 보고 미미로 데뷔했다. 같은 해 배우 김호영은 엔젤로 데뷔했고, 2009년 배우 최재림은 콜린 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들에겐 캐릭터의 개성이 강하고 넘버의 난도가 높아 관객들에게 눈도장 찍기 좋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공연은 내년 2월 25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신한카드아티움에서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