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노래하는 맛" 예멘 커피…디 진테제 하이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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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
대체로 구전된 것에는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사용된다. 목동이 기르던 염소가 특정 열매만 먹으면 날뛰었는데, 그 열매가 수도승에 전해져 커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커피 열매를 먹고 동물이 흥분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목동과 수도승이 거닐었던 그곳이 에티오피아의 고원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답을 할 수는 없다. 그 불명확함을 해결하기 위해 저널리스트 에두아르드 하인리히 야콥은 마로파 수도승이자 신학교수인 ‘안토니우스 파우스투스 나이로네’가 전한 이야기를 근거로 커피의 근원을 추정해본다. 에두아르드 또한 1710년에 세상을 뜬 신학자의 기록에 의문을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 명확한 사실을 구분해낸다. 염소의 이미지가 커피 나무와 어울린다는 것과 선지자 모하메드의 설화에 커피가 기록됐다는 것, 커피가 ‘이슬람의 포도주’ 불릴 만큼 당대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에 대해서만 확언한다.
이같은 신화의 불명확함을 넘어서면 기록된 커피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1450년경 처음으로 예멘의 수피교 수도원에서 커피를 가공했다는 것과, 그들이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200년이 지나기까지 다른 지역에서는 커피가 재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월드 커피 리서치(WCR)는 예멘 자비드(Zabid)시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인류학적 최초의 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유전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아라비카의 품종은 대체로 에티오피아에서 기원하지만, 주요 품종 중 하나인 버번(Bourbon)의 유전적 기반은 모카에서 발견된 커피나무에서 유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예멘과 에티오피아는 한때 시바왕국에 속했으니, 일찍이 두 나라의 식물학적 기반이 공유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여하간 사람들의 심장을 자극해 얼굴을 붉게 만들었던 ‘이슬람의 와인’은 홍해를 마주한 예멘의 ‘모카항’를 통해 세계에 전파됐다. 사람들은 대체로 커피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대해 구전된 에티오피아 설화와 야생 커피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예멘에는 그 야생커피가 옮겨와 농작물로 재배되고, 그것을 세계로 전파했던 200여년의 역사가 기록돼 남아있다.
그 예멘에서 온 알라 알무라이시(Ala Almuraish)와 한국에서 온 김예한은 독일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다. 의학과 철학을 전공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통하는 구석이 꽤 있다고 생각했다. 알라가 예한의 손을 잡고 한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라의 한국행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한 것인데, 독일보다는 한국이 파일럿 과정을 밟는데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그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알라와 예한은 그 시간을 커피와 함께 보냈다. 국경은 폐쇄됐지만 한국 커피인들의 교류는 더 활발해졌다. 알라와 예한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커피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예멘 커피에 대해 오해와 짧은 이해가 섞인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예멘이 커피역사에 방점을 찍었던 중요한 산지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그곳의 커피가 거래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고만 생각했다. 커피 외에 예멘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전쟁과 난민을 둘러싼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커피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의 여왕인 ‘모카 마타리’를 마셔봤거나,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예멘 커피를 마시고 ‘천사가 노래하는 맛(this is what angels singing tastes like)’이라고 칭송한 것을 기억한다. 미국의 사는 예멘인 목타르가 블루보틀에 예멘 커피를 소개했다는 내용의 <전쟁말고 커피(원제: The Monk Of Coffee)>가 널리 읽힌 탓이다. 스페셜티커피 업계에 한정해서는 예멘 커피를 다루는 대표 업체로 퀴마(Qima)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예멘 커피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상당부분의 오해를 동반한 이야기인 경우도 많다.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고자 알라와 예한은 ‘디 진테제’를 통해 양질의 예멘 커피를 공급하면서 그 커피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직도 예멘의 커피 열매는 수 백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2천미터가 넘는 험준하고 건조한 지대에서 수작업으로 재배된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때의 그 원시 품종 커피는 건조한 기후의 자연건조 방식 가공을 만나 깊고 진한 와인의 향미를 드러낸다. 지역의 특산품이나 다름없는 커피는 그래서 오래된 유통경로를 따라 꾸준히 판매돼 왔다. 지금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멘 커피를 소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간 재배되는 물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기도 한다. 여전히 예멘커피의 가격은 높은 고도의 산악지대부터 항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개인을 거치며 결정된다. 그러니 예멘 커피의 가격 구조는 여느 다른 산지의 커피와 다르게 책정 될 수밖에 없다. 2015년에 일어난 예멘 내전은 복잡하고 난해한 무역 중계에 무시 못할 영향을 끼쳤지만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예멘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이 있다. 그 물량 중 ‘커피의 여왕’이라 불리는 모카 마타리가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예멘의 수많은 커피 산지 중 하라즈 지역의 마타리 커피만 찾는 것이다. 세계 몇 대 희귀 커피를 찾는 특이한 문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예멘 커피는 원산지와는 상관없이 마타리의 탈을 쓰고 고가에 유통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화를 무너뜨리고 블루보틀에 예멘 커피를 소개한 목타르와 퀴마 등이 스페셜티 등급의 예멘 커피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그에 앞서 예멘 커피 품질 제고를 위해 힘썼던 중동의 커피 전문가 알리 알 디와니(Ali Al-Diwani)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멘 커피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알라와 예한은 예멘 커피가 가진 이야기를 한국을 기반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싶었다. 예멘인 알라와 그를 가장 잘 이해하면서도 우리나라 문화에 익숙한 예한이 있어서 ‘디 진테제’의 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둘은 예멘에 커피 가공시설을 세우고 우리나라에는 커피를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동시에 커피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예멘과 관련한 모든 질문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성수동에 ‘디 진테제 하이카페’를 열어 더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예멘 커피 전파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모여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이야기의 전파도 더욱 빨라졌다. 때로는 카페를 찾은 이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때로는 커피를 주제로 한 이벤트에 참석해 예멘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를 켜켜히 쌓아나가고 있다. ‘디 진테제’는 칸트의 철학 개념에서 따온 단어로 ‘경험의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알라와 예한은 이렇게 예멘 커피에 대한 우리 모두의 경험을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 ‘디 진테제’를 완성해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디 진테제 하이카페가 위치한 곳은 성수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마치 예멘의 고원을 떠올리듯 서울의 먼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이곳은, ‘헤이그라운드’라는 공유오피스의 카페를 겸하고 있어 다양한 직종과 직군의 사람들이 경계 없이 모여든다. 알라와 예한은 그들에게 쉬지 않고 예멘의 커피를 설명해낸다. 공간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니 생각을 늘릴 터전이 생겼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예멘의 산과 골짜기처럼 높고 깊게 쌓여간다.
이같은 신화의 불명확함을 넘어서면 기록된 커피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1450년경 처음으로 예멘의 수피교 수도원에서 커피를 가공했다는 것과, 그들이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200년이 지나기까지 다른 지역에서는 커피가 재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월드 커피 리서치(WCR)는 예멘 자비드(Zabid)시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인류학적 최초의 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유전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아라비카의 품종은 대체로 에티오피아에서 기원하지만, 주요 품종 중 하나인 버번(Bourbon)의 유전적 기반은 모카에서 발견된 커피나무에서 유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예멘과 에티오피아는 한때 시바왕국에 속했으니, 일찍이 두 나라의 식물학적 기반이 공유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여하간 사람들의 심장을 자극해 얼굴을 붉게 만들었던 ‘이슬람의 와인’은 홍해를 마주한 예멘의 ‘모카항’를 통해 세계에 전파됐다. 사람들은 대체로 커피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대해 구전된 에티오피아 설화와 야생 커피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예멘에는 그 야생커피가 옮겨와 농작물로 재배되고, 그것을 세계로 전파했던 200여년의 역사가 기록돼 남아있다.
그 예멘에서 온 알라 알무라이시(Ala Almuraish)와 한국에서 온 김예한은 독일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다. 의학과 철학을 전공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통하는 구석이 꽤 있다고 생각했다. 알라가 예한의 손을 잡고 한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라의 한국행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한 것인데, 독일보다는 한국이 파일럿 과정을 밟는데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그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알라와 예한은 그 시간을 커피와 함께 보냈다. 국경은 폐쇄됐지만 한국 커피인들의 교류는 더 활발해졌다. 알라와 예한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커피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예멘 커피에 대해 오해와 짧은 이해가 섞인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예멘이 커피역사에 방점을 찍었던 중요한 산지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그곳의 커피가 거래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고만 생각했다. 커피 외에 예멘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전쟁과 난민을 둘러싼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커피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의 여왕인 ‘모카 마타리’를 마셔봤거나,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예멘 커피를 마시고 ‘천사가 노래하는 맛(this is what angels singing tastes like)’이라고 칭송한 것을 기억한다. 미국의 사는 예멘인 목타르가 블루보틀에 예멘 커피를 소개했다는 내용의 <전쟁말고 커피(원제: The Monk Of Coffee)>가 널리 읽힌 탓이다. 스페셜티커피 업계에 한정해서는 예멘 커피를 다루는 대표 업체로 퀴마(Qima)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예멘 커피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상당부분의 오해를 동반한 이야기인 경우도 많다.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고자 알라와 예한은 ‘디 진테제’를 통해 양질의 예멘 커피를 공급하면서 그 커피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직도 예멘의 커피 열매는 수 백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2천미터가 넘는 험준하고 건조한 지대에서 수작업으로 재배된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때의 그 원시 품종 커피는 건조한 기후의 자연건조 방식 가공을 만나 깊고 진한 와인의 향미를 드러낸다. 지역의 특산품이나 다름없는 커피는 그래서 오래된 유통경로를 따라 꾸준히 판매돼 왔다. 지금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멘 커피를 소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간 재배되는 물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기도 한다. 여전히 예멘커피의 가격은 높은 고도의 산악지대부터 항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개인을 거치며 결정된다. 그러니 예멘 커피의 가격 구조는 여느 다른 산지의 커피와 다르게 책정 될 수밖에 없다. 2015년에 일어난 예멘 내전은 복잡하고 난해한 무역 중계에 무시 못할 영향을 끼쳤지만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예멘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이 있다. 그 물량 중 ‘커피의 여왕’이라 불리는 모카 마타리가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예멘의 수많은 커피 산지 중 하라즈 지역의 마타리 커피만 찾는 것이다. 세계 몇 대 희귀 커피를 찾는 특이한 문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예멘 커피는 원산지와는 상관없이 마타리의 탈을 쓰고 고가에 유통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화를 무너뜨리고 블루보틀에 예멘 커피를 소개한 목타르와 퀴마 등이 스페셜티 등급의 예멘 커피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그에 앞서 예멘 커피 품질 제고를 위해 힘썼던 중동의 커피 전문가 알리 알 디와니(Ali Al-Diwani)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멘 커피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알라와 예한은 예멘 커피가 가진 이야기를 한국을 기반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싶었다. 예멘인 알라와 그를 가장 잘 이해하면서도 우리나라 문화에 익숙한 예한이 있어서 ‘디 진테제’의 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둘은 예멘에 커피 가공시설을 세우고 우리나라에는 커피를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동시에 커피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예멘과 관련한 모든 질문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성수동에 ‘디 진테제 하이카페’를 열어 더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예멘 커피 전파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모여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이야기의 전파도 더욱 빨라졌다. 때로는 카페를 찾은 이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때로는 커피를 주제로 한 이벤트에 참석해 예멘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를 켜켜히 쌓아나가고 있다. ‘디 진테제’는 칸트의 철학 개념에서 따온 단어로 ‘경험의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알라와 예한은 이렇게 예멘 커피에 대한 우리 모두의 경험을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 ‘디 진테제’를 완성해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디 진테제 하이카페가 위치한 곳은 성수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마치 예멘의 고원을 떠올리듯 서울의 먼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이곳은, ‘헤이그라운드’라는 공유오피스의 카페를 겸하고 있어 다양한 직종과 직군의 사람들이 경계 없이 모여든다. 알라와 예한은 그들에게 쉬지 않고 예멘의 커피를 설명해낸다. 공간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니 생각을 늘릴 터전이 생겼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예멘의 산과 골짜기처럼 높고 깊게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