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이우환 작품이었다니"… 프레스센터 앞 4m짜리 철판의 정체 [이선아의 걷다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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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관계항-만남의 탑'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이우환 화백
서울대 중퇴 후 日로 건너가 철학 전공
사물의 본질적 美 탐구하는 모노하 이끌어
프레스센터 앞 조각 '관계항'에선
돌과 철을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
"와서 보고 느끼는 게 첫 단계"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이우환 화백
서울대 중퇴 후 日로 건너가 철학 전공
사물의 본질적 美 탐구하는 모노하 이끌어
프레스센터 앞 조각 '관계항'에선
돌과 철을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
"와서 보고 느끼는 게 첫 단계"
서울 도심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시청역 프레스센터. 이곳 앞엔 거대한 철판과 돌이 놓여있다. 높이가 4m에 달할 만큼 크지만,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듯 어색함 하나 없이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래서 미술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조차 이곳에 이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렇게 말한다. "프레스센터 앞에 이우환의 조각이 있다고?"
맞다. 이 작품을 만든 건 바로 세계적인 예술가 이우환이다. 그것도 그의 대표 연작인 '관계항'이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베르사유궁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그림 한 점이 수십 억원에 달하는 작가의 대표작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프레스센터 앞 '관계항-만남의 탑'은 그런 그가 1985년 만든 작품이다. 당시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신사옥인 프레스센터를 준공할 때 그에게 의뢰했다. 40년 가까이 프레스센터 앞을 지키고 있는 철판과 돌, 그 앞에 서면 여러 궁금증이 떠오른다.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의 대표작이 된 걸까. '관계항'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미대도 아니고 철학과라니. 의아할 법 하지만, 이게 이우환의 강점이 됐다. 당시 일본에선 '모노하'라는 미술운동이 유행했다. '모노'(物)는 '사물'이라는 뜻. 말 그대로 작가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나무·돌·철 등 사물의 본질적인 미(美)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탄탄한 철학 지식으로 무장한 이우환은 1969년 일본 미술계에 모노하에 대한 평론을 써냈다. "한국에서 온 어린 놈이 뭘 아느냐"는 비난의 눈초리도 적지 않았지만, 하이데거·메를로 퐁티 등 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모노하 운동을 해석한 참신한 비평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국에서 건너온 시골 청년이 '일본 모노하의 대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만만찮다. 일단 물감부터 작가가 직접 공수해온 돌을 일일이 갈아서 만든 것이다. 이후 특수 제작한 붓으로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다. 단번에 완성한 게 아니라, 느리고 수고스럽게 만든 작품이란 얘기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는 '관계'. 흔히들 관계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 떠올리지만, 이우환에게 관계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공간, 사물과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점과 선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고, 그게 캔버스 위 여백을 통해 관객과 마주했을 때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예술은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무슨 정보입니까'가 아닙니다. 와서 보고 느끼고, 자기가 알지 못하더라도 떨림이 일어나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 게 제일 첫 단계예요. 저는 '이것입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하는 것 이전에 느끼는 차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맞다. 이 작품을 만든 건 바로 세계적인 예술가 이우환이다. 그것도 그의 대표 연작인 '관계항'이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베르사유궁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그림 한 점이 수십 억원에 달하는 작가의 대표작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렘브란트와 어깨 나란히 한 '거장'
미술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 이우환. 그는 명실상부 한국 미술의 거목이다. 2000년 유네스코 미술상, 2007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개인전, 2013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2014년 베르사유궁 개인전…. 그가 세운 업적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지금 독일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에서 이우환의 '관계항'과 렘브란트의 대표작 '벨벳 베레모를 쓴 자화상'이 나란히 놓인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프레스센터 앞 '관계항-만남의 탑'은 그런 그가 1985년 만든 작품이다. 당시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신사옥인 프레스센터를 준공할 때 그에게 의뢰했다. 40년 가까이 프레스센터 앞을 지키고 있는 철판과 돌, 그 앞에 서면 여러 궁금증이 떠오른다.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의 대표작이 된 걸까. '관계항'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3개월 만에 서울대 중퇴하고 일본으로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이우환이 어떻게 세계적인 예술가가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이야 '한국 대표 예술가'로 꼽히지만, 그의 무대는 오랫동안 일본이었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3개월 만에 중퇴했다. 그가 향한 곳은 일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니혼대 문학부 철학과 신입생으로 다시 입학했다.미대도 아니고 철학과라니. 의아할 법 하지만, 이게 이우환의 강점이 됐다. 당시 일본에선 '모노하'라는 미술운동이 유행했다. '모노'(物)는 '사물'이라는 뜻. 말 그대로 작가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나무·돌·철 등 사물의 본질적인 미(美)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탄탄한 철학 지식으로 무장한 이우환은 1969년 일본 미술계에 모노하에 대한 평론을 써냈다. "한국에서 온 어린 놈이 뭘 아느냐"는 비난의 눈초리도 적지 않았지만, 하이데거·메를로 퐁티 등 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모노하 운동을 해석한 참신한 비평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국에서 건너온 시골 청년이 '일본 모노하의 대부'가 된 것이다.
◆점 하나에 담은 무한함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우환은 직접 붓을 들었다. 그의 대표작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다. 언뜻 보면 너무 단순하고 쉽다. 그래서 그의 예술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2016년 위작 사건에 휘말리기까지 했다.하지만 사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만만찮다. 일단 물감부터 작가가 직접 공수해온 돌을 일일이 갈아서 만든 것이다. 이후 특수 제작한 붓으로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다. 단번에 완성한 게 아니라, 느리고 수고스럽게 만든 작품이란 얘기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는 '관계'. 흔히들 관계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 떠올리지만, 이우환에게 관계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공간, 사물과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점과 선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고, 그게 캔버스 위 여백을 통해 관객과 마주했을 때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돌과 철은 아버지와 아들"
프레스센터 앞 '관계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의 관계일까. 힌트는 재료에 있다. 철판과 돌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듯 하지만, 사실 철판은 돌의 성분을 뽑아내 만든 것이다. 근원이 같다는 얘기다. 게다가 돌은 태고적부터 존재한 '자연의 재료'고, 철판은 '산업사회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우환은 "돌과 철판은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라고 말한다. "돌과 철판의 만남은 문명과 자연의 대화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여주는 게 내 작품"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그냥 와서 보고, 느껴보세요"
하지만 굳이 작품 앞에서 이렇게 깊은 메시지를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는 언제나 강조한다. 그저 작품 앞에 서서, 보고,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느끼면 그게 예술작품 감상의 첫 단계라고. 최근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맞아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말이다."내가 하는 예술은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무슨 정보입니까'가 아닙니다. 와서 보고 느끼고, 자기가 알지 못하더라도 떨림이 일어나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 게 제일 첫 단계예요. 저는 '이것입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하는 것 이전에 느끼는 차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