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면 세상 바꿀 줄 알았는데"…실전은 지옥이었다
소중한 이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 경황이 없는 유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네이버에 ‘장례 비용’을 입력하면 온통 광고 뿐이어서 장례 준비는 시작부터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있다. 가입해 놓은 상조 상품이 있지만 장례지도사는 수의, 유골함 등을 좋은 걸로 업그레이드하라고 유도한다.

송슬옹 고이장례연구소 대표는 2021년 8월 사업을 시작했다. 경남 마산 출신인 송 대표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벤처경영 복수전공)를 졸업한 뒤 아버지를 따라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스무살 무렵 할머니의 장례식을 경험하며 받은 충격이 그가 직접 장례 산업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다. 송 대표는 "유족은 감정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온갖 업무를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국내 장례 문화가 비정상적이라는 걸 체감했다"며 "이별을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장례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경제학 전공하며 동아리서 자영업자 컨설팅

송 대표는 국내 장례·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유족이 불필요하게 부담하는 비용이 많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기존 장례식장·상조회사는 효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고가 제품을 강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고이장례연구소는 고객이 입력하는 예산, 가족 수, 예상 조문객 수 등 여러 조건에 맞춰 최적의 견적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송 대표는 경직된 장례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조의금(弔意金)을 받고 조문객을 받는 형식적인 의례 대신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 음식 등을 함께 추억하는 장례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 창업 공간 '창업히어로5'에서 만난 송슬옹 고이장례연구소 대표.  /최해련 기자
28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 창업 공간 '창업히어로5'에서 만난 송슬옹 고이장례연구소 대표. /최해련 기자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MZ세대를 위한 장례 서비스 플랫폼 ‘고이’를 운영하고 있는 고이장례연구소의 송슬옹(30)입니다. 현재 직원 8명과 함께 앱과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이는 어떤 서비스인가요?
장례 서비스 추천부터 사후 행정 절차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장례지도사 그리고 업체를 유족에게 연결하고. 장례 절차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가이드북 등 각종 콘텐츠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장례 플랫폼을 만들게 됐나요?
장례지도사인 아버지를 따라 많게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빈소를 방문했었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하얀 국화 모두 제게는 익숙한 장례식장의 풍경이었습니다. 다만 스무살 때 할머니의 장례식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죽음을 제 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삼일장이 끝나고 난 뒤에도 할머니와의 이별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습니다. 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할머니를 온전히 추모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경직된 장례 문화가 그제서야 조금은 잘못됐다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장례식을 상상했습니다. 이별을 충분히 애도하면서도 부모님의 인생을 축복하는 특별한 장례식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국내 어느 상조회사에서도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과 학부생으로서 언젠가는 직접 제 손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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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에는 원래부터 뜻이 있었나요?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교과서 밖의 경제 활동에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자영업자를 컨설팅해 주는 동아리 ‘티움’ 가입한 이유입니다. 동네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들에게 경영 전략을 제시하고 직접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운영한 지 얼마 안된 가게를 선택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벤처경영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여러 팀 프로젝트를 통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했습니다.

사업에 바로 뛰어든 건 아니었습니다. 2017년 무렵 '배달의 민족' 같은 모바일 기반의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던 시절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스타트업의 90%는 '죽음의 계곡'을 넘기지 못하고 창업 3년 전에 망하더라고요.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고, 제가 내린 결론은 1~2년 앞서 있는 사람한테 가서 일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스타트업서 경험 쌓고 식물 판매, 진로컨설팅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배우셨나요?
2년반동안 스타트업 두 곳에서 일했습니다. 첫 번째 회사는 바이오 비료를 개발하고 식물을 유통하는 회사였습니다. 컴퓨터 한 대 놓고 사무실 구하고 공장 구하고, 제품생산하고 포장해서 온오프라인으로 유통했습니다.

이후 식물을 판매하는 사업으로 피보팅(전환)을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0에서 15만까지도 키워봤고, 식물 공급업체 찾아서 거래하고 관리하는 일 등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두 번째 회사는 진로 컨설팅 업체였습니다. 팀에 세번째로 합류하면서 수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복학을 해야 겠다고 결심하면서 결국 회사를 나왔습니다.

두 회사를 경험하면서 회사의 본질은 수익 창출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첫 회사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업 계획서를 쓰고 5억 원 규모의 TIPS 지원금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생 신분으로도 데이터 끌어모아서 계획서를 쓰니까 돈을 받았습니다. “사업 쉽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실전은 계획과 달랐습니다. 하는 것마다 실패했어요.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못 이겨내서 먹기만 하고, 성과는 안 나오니까 계속 시간을 갈아넣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입사할 때 80kg였던 몸무게가 나올 때 110kg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사업계획서 쓰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걸 알게 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고객이 느끼는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장례 관련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6개월 동안 상조회사나 장례식장 알바를 뛰기 시작했고,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례지도사나 상조 사장이나 장례식장 사람들이나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용어를 쓰는지 산업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첫 고객과의 경험?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첫 고객을 만났습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해왔던 일이 정보를 잘 습득해서 남에게 전달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소비자 입장에서 느꼈던 페인포인트(불편한 점)은 장례에 필요한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장, 장례 용품 등을 묻는 지식인 질문에 하루 두 세 개씩(하나당 한시간 이상 소요) 답변을 꾸준히 달았어요. 모아보면 100개 좀 넘을 것 같아요. 당시 카카오톡 채널이랑 블로그만 달랑 있었는데, 지식인 댓글을 통해 연결된 분이 제게 연락을 주셨어요.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고, 그분은 제게 흔쾌히 장례 절차를 맡기겠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장례 치르면서 왜 저를 선택했냐고 물어보니 “전화통화를 하자마자 위로부터 건네준 따뜻한 상담”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와 통화하기 전에 그 분은 여러 장례식장에 전화해봤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마치 모텔방을 팔 듯이 영업을 했다고도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돈을 벌 생각으로 그분을 대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과 달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첫 사업 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작년 1월 장례식장 견적 비교 서비스를 처음 출시했습니다. 홍보 문구는 ‘스마트한 장례 준비 고이에서‘였어요. 장례식장, 상조회사 상품 등 데이터를 모아 고객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에서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실시간 코로나 장례식장 방역지침 관련 정보, 남은 빈소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시도했어요. 장례식장 비용과 위치를 안내하는 검색창 등 총 7번을 피봇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재는 어떤 기능을 내세우고 있나요?
서비스를 론칭했을 때 저희는 세상을 바꿀 줄 알았어요. 실패를 너무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착각이었습니다.
고객이 구조화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지역, 가족 수, 종교, 예산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장례식 형태가 달라져요. 조건에 따라 선택해야할 옵션이 너무 많아요. 유족들의 어려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난 뭐 해야 될지 모르겠으니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알아서 다 해줬으면 좋겠어“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고객이 믿고 맡기면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원스톱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만 믿고 이것저것 입력해 주시면 뭔가 자동으로 견적서도 발행되고 그다음에 전화 상담을 진행합니다. 전화를 통해서 좋은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장례 상담까지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장례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저희가 내세우는 두번째 핵심 기능입니다.

“경직된 장례문화 바꾸겠다”

고이가 상조 시장에서 풀려고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투명하고 합리적인 장례 시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장례 절차는 복잡합니다. 장지(납골당), 상조 서비스, 수의와 유골함 등 선택해야 할 품목이 많고, 임종 접수 등 진행해야 할 행정 업무가 많습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2000~3000개나 돼서 고객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해요. 이 과정에서 바가지 요금으로 유족을 괴롭히는 악덕 업체와 장례지도사들도 많고요. 상조회사에서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을 자세히 보면 필요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많아요. 수의나 유골함 등은 효심을 자극해 고가 제품을 강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적의 비용으로 투명한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고이장례연구소의 목표입니다.

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벤처 업계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이장례연구소는
실제로 저희도 작년에 돈이 없어서 펀딩을 시도를 했었는데 실패했었어요.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고, 저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많이들 예상하듯이 시장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기준 흑자로 전환했고, 이제는 한 달 매출이 지난해 누적 매출의 80% 수준입니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수익입니다. 그런 점에서 투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저희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등 노력해 왔습니다.

고이장례연구소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적으로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장례 산업을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큰 그림은 국내 장례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누군가의 죽음이 특별하게 기억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조문을 가면 돈 봉투 먼저 집어들잖아요. 감사한 마음과 별개로 고인이 생전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함께 추억하는데 방점이 찍힌 장례식이 당연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상상하는 부모님의 장례식은 이런 그림입니다. 부모님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잘 기록을 해두는 거죠. 나중에 장례식을 치를 때 기록을 모아 자서전 만들어 드리고, 사진을 전시하는 등 특색있는 장례식을 진행하고 싶어요.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