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병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병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제 개편안과 관련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후 당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방송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서 '위성정당 방지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또는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인정하는 체제로 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자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가 시사한 대로 '병립형 회귀' 등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진성준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을 약속한 것과, 당면한 총선 현실에서 지금 무엇이 가장 선차적인 정치적 과제냐를 놓고 비교 판단해야 한다"며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 의원은 "(준연동형 유지 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하는 당초의 당의 방침이나 목표와는 영 상반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할 경우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당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 비례 의석을 많이 가져가게 되니까"라며 "그렇게 되면 윤석열 정권을 견제하거나 그 퇴행을 막기는커녕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영진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도 2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선거제는 여야가 합의해서 가는 게임의 룰인데, 게임의 룰을 민주당만의 가치, 민주당만의 방향으로 '이것이 아니면 나쁜 것이다, 선과 악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선거법 단독 통과라는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며 "잘못된 것이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여야가 합의해서 가자는 정신을 살리고 논의하고, 병립형이든 준연동형이든 다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당내 70여 명의 의원은 위성정당 방지와 준연동형제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비명계'인 김종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 승리를 위해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거제 퇴행으로 가겠다는 얘기다. 이건 우리가 알던 민주당이 아니"라며 이 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옳지도 않거니와 이렇게 하면 이길 수도 없다. 소탐대실의 길"이라며 "조그만 장사를 하더라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 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속이고 원칙이고 모르겠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덤비면 민주당은 영원히 못 이긴다"며 "아무리 선거에서 이겨도, 의석수가 많아도 신뢰를 잃으면 정치는 무너지는 것이다. 이겨서 신뢰를 얻는 게 아니라 신뢰를 얻어야 이긴다"고 일갈했다.

한편, 민주당은 당초 이날로 예정됐던 의원총회를 하루 미뤘다. 원내지도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 불발로 인해 전 국민이 상심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거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