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내년도 예산안과 재정 개혁의 타이밍
내년도 예산 편성과 관련해 논쟁이 이어지면서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요약하면 재정적자가 심각하지만 경기 침체가 우려되니 확장적 재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견해와 재정건전성이 시급하지만 적자를 일시에 줄이는 데 따르는 부담을 고려해 일부만 적자를 용인하는 예산 편성 방향 간의 충돌로 보인다. 이런 주장에 대해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만약 현 상황이 일시적 경기 침체라면 적자를 무릅쓰고라도 좀 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이 과거 누적된 재정 운용 문제로 인해 생겨난 것이고 미래 재정 환경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이라면 지출 재구조화와 재정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먼저 재정의 지속 가능성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나 볼 수 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3% 근처 또는 이를 훨씬 웃도는 재정적자가 6년째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도 과거 세수 추세에 비해 100조원 이상 더 걷고도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탓하기에는 그 전과 이후에 계속된 적자의 지속성을 보면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새 정부에서도 이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재정 지출에 대한 기대가 경제 실상에 비해 너무 높게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부채 논의에서 빠져 있는 연금재정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초고령화를 앞두고 저부담·고급여 구조의 연금개혁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고작 고갈 시점을 수년 뒤로 미루는 것 이상의 실질적 노력은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세금을 더 걷더라도 현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지방재정은 국세의 40%가량을 이전받되 불황 시 세수 부족분은 차후에 채워 넣어야 하는 구조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크고 작은 경제적 충격이 반복되는 와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으로 국가부채는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출산·고령화 추세에서 어느새 성장이 사라진 사회로 이전했고, 국민부담률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도 전에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에 도달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장래 재정 상황은 재정 문제로 허덕이는 OECD 국가들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으며, 재정 운용의 경직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 개혁 외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확장적 재정정책 논쟁에 묶여 있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현 재정 상황은 일시적 어려움에 처한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공고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먼저 GDP 대비 1~2% 내 적자로 복귀하도록 해야 한다. 그다음, 사회적 선호에 따라 복지를 더 늘릴 것인지 아니면 성장을 꾀할 것인지 선택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우리는 과연 성장을 위해 연구개발(R&D)을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분배를 위해 복지예산을 늘릴 것인지 양자 간 선택해야 하는, 재정 운용의 본질적 문제에 직면했다. 둘 다 중요하지만 모두 취하는 순간 국가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수 여건 아래에서 재분배 수준을 선택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재정구조가 돼야 한다.

끝으로 이런 고려조차 할 여유가 없더라도, 예산안 확정이 제때 이뤄져 주어진 예산의 집행이라도 순조롭게 해야 한다. 경기대응적 재정 운용의 중요성에도 불황 시 예산 집행이 차질을 빚는다면 이는 너무나 큰 긴축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