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익 내면 욕먹는' 이상한 나라의 통신사
“벌써 눈앞이 캄캄합니다.” 29일 만난 한 통신사 관계자는 한숨부터 쉬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전날 간담회에서 “LTE(4세대 이동통신) 요금제가 더 내려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탓에 내년 경영 여건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는 설명이었다. 박 차관은 “5G(5세대 이동통신) 요금제를 많이 개선하다 보니 LTE 요금제 쪽이 5G보다 못한 구간이 있다”며 통신사의 요금 추가 인하를 종용했다.

해당 발언은 세 가지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는 게 업계의 항변이다. 첫 번째는 수익성 악화다. 한국 통신사의 수익성은 전 세계 44개 국가 중 42위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에 따르면 한국은 올 3분기 전 세계 통신사 평균 에비타(상각 전 영업이익) 마진율 조사에서 26.57%로 42위에 그쳤다. 44개국 중 39개국이 에비타 마진율 30%를 넘겼지만, 한국은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말 실적까지 계산하면 수익성이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업계 수익성이 떨어진 것은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 탓이 크다. 정부는 가계 통신비 절감을 목표로 5G 요금제 인하를 지속해서 추진해왔다. 통신 3사는 올해 5G 중간 요금제를 잇달아 신설하고, 3만원대 요금제까지 출시했다. 통신사 수익엔 악재로 꼽힌다. 올여름 휴가철엔 로밍비도 크게 낮췄다. 박 차관이 지난 4월과 6월 등 기회가 될 때마다 “로밍비가 과도하게 비싸다”고 지적한 여파다.

6G(6세대 이동통신) 시대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해지는 결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LTE 요금제까지 건드리면 현상 유지에 더 급급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통상 새로운 이동통신 기술 경쟁력을 쌓고 연구개발(R&D), 장비 확보 등을 하려면 막대한 투자금이 든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으론 돈을 벌지 말라고 하고 비통신 부문은 키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민관 합동으로 6G 기술 패권 경쟁을 준비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TE 요금을 낮추면 가입자 역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LTE 체제에 머무르는 이용자가 많아지는 것은 5G 기술 및 경쟁력을 키우고 가입자를 늘려 6G 시대를 준비하자는 정부 정책 방향과는 어긋난다.

당장 ‘요금을 낮춘다’고 하면 이용자들은 환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낮추고 보는 식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업계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통신사들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어야 미래에도 질 좋고 합리적인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면 ‘통신사는 수익을 내면 안 된다’는 이상한 공식만 굳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