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러 장을 철심으로 묶는 문구인 스테이플러를 흔히 호치키스라고 부른다. 제조사 이름이 상품의 대명사가 된 사례다. 전차, 불도저 등에 쓰이는 무한궤도 역시 원래 이름보다는 제조사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잦다. 바로 100년 역사의 건설장비 제조사인 캐터필러(티커 CAT)다.

캐터필러는 트랙터로 시작해 현재는 건설·광산 장비와 가스 엔진, 공업용 가스터빈 등을 생산하고 있다. 채굴 장비 시장에서는 따라올 경쟁자가 없는 최강자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전쟁의 수혜주로 떠오르고 있다.

○건설·채굴 장비의 최강자

채굴장비 1위 캐터필러, 전쟁 수혜株로 우뚝
캐터필러는 1925년 홀트트랙터 회사와 CL베스트트랙터 회사가 합쳐져 설립됐다. 홀트트랙터 회사는 무한궤도 기술을 개발한 벤저민 홀트가 세웠다. 궤도 안에 바퀴를 넣어 바퀴가 진창 등에 빠지지 않고 궤도 위를 전진하도록 하는 기술을 무한궤도라고 한다. 무한궤도는 모양이 닮은 캐터필러(애벌레)로도 불린다.

홀트는 트랙터를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농부들을 보며 무한궤도 기술을 농기계에 적용했다. 홀트의 무한궤도 기술은 CL베스트트랙터가 지닌 가솔린·디젤 엔진 기술과 시너지를 냈다. 캐터필러는 두 차례 세계대전 때 군용 중장비를 지원했고, 전쟁이 끝나고는 전후 복구를 위한 건설 장비를 생산했다.

캐터필러는 탄탄한 기술력과 오랜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건설·채굴 장비 시장에서 점유율 선두를 지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캐터필러는 건설장비 시장에서 251억달러(약 32조5000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시장 점유율 20.12%를 기록했다. 채굴 장비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더 압도적이다. 캐터필러는 지난해 채굴 장비 매출로 120억달러(약 12조5300억원)를 거뒀는데 전체 시장의 73.93% 수준이다.

○전장에서도 눈길 끌어

지난달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교전을 시작하자 온라인 군사 커뮤니티에서 캐터필러의 불도저 D9이 주목받았다. 8.1m 길이에 높이가 4m인 D9은 지뢰와 장애물을 제거하고 보병을 보호하는 중장비로 사용된다. 언론들은 이스라엘 군이 시가전에 들어갈 경우 D9의 역할이 막중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캐터필러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지난해 2월 전쟁이 발발하자 캐터필러는 다음달 10일 러시아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발표 전날 209.78달러였던 캐터필러 주가는 2주 만에 222.17달러로 5.9%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재건이 본격화할 경우 캐터필러 중장비가 대거 동원될 수 있다는 전망이 반영됐다.

캐터필러는 지난달 31일 예상을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3분기 매출은 168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 늘었다.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5.52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고, 월가 전망치인 4.75달러를 웃돌았다. 단 3분기 수주잔액이 전년 동기 대비 19억달러, 전분기보다 26억달러 감소한 건 악재로 평가됐다.

이달 들어 28일(현지시간)까지 캐터필러 주가는 9.48% 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널리스트 29명 중 12명(41.8%)이 매수, 13명이 중립 투자의견을 냈다. 4명은 매도를 권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