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선희의 미래인재 교육]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의 '디커플링'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1997년 고시된 ‘7차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른 선택형 교육과정을 도입한 뒤 수차례 부분 개정을 통해 교육의 다양성 추구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교육적 시도를 해오고 있다. 최근 ‘2022개정교육과정’은 ‘고교학점제’를 도입, 학생이 진로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취득·졸업하게 해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 선택권’을 더욱 강화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도 개별 학습을 가능하게 한 점에서 교육 과정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교육 과정은 시대 변화에 맞춰 창의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성과 개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8 대입 개편안’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수능 선택과목을 폐지해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 논란을 막는다. 둘째, 5지선다형을 유지해 추가적인 사교육 발생을 막는다. 셋째,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로 병기해 성적 부풀리기를 막는다. 교육 과정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하는데, 대학 입시는 논란을 막는 방어적 개편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모든 학생이 같은 과목 시험을 보고, 그 점수로만 선발하는 정시 전형은 1995년 ‘5·31 교육개혁’ 이전의 ‘한 줄 세우기’ 입시로 회귀한 것이다. 한 줄 세우기 입시가 얼마나 학생들을 무력화시켰는지 우리는 오랫동안 경험해왔다.

교육 과정은 창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미래 사회를 향하는데, 대학 입시는 산업사회의 표준화, 획일화에서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 과정과 평가를 일체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98년 교육 과정·평가 연구와 수능 출제 기능을 통합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출제 오류로 원장이 교체되거나, 장관까지 비판받는 풍토에서는 교육 과정 변화에 맞춘 혁신적인 수능 개혁안이 나오기 어렵다. 입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과도하다 보니 교육부와 평가원은 혁신보다는 공정성 방어 입장에서 한발짝도 못 나아가고 있다. 결국 교육 과정과 대학 입시의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은 점점 고착화되고, 교육 과정에서 추구하는 교육은 학교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교육 평가 분야의 영향력 있는 학자인 랠프 타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교육의 목표가 변하면 반드시 평가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미래 사회의 패러다임에 따라 교육 목표가 변하는데, 평가가 따라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교육 목표는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

100여 년 전 미국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 있다. 20세기 초 미국 진보주의교육협회는 당시 고등학교가 학생 적성과 상관없이 대입 준비에만 치우치고 학교 교육이 창의성을 길러주지 못함을 비판하며, 고교 교육 과정을 개혁하고 대입 기준을 새로 세우는 대규모 종단연구를 시작한다. 이 연구가 미국 중등교육 개혁 과정을 보여주는 ‘8년 연구’다. 이때도 고교 교육이 대입 시험과 연동돼 새 교육 과정 실천이 난관에 부딪혔으나, 고등학교와 대학 간 ‘실험학교 졸업생은 학교장 추천만으로 협력대학에 입학을 허가한다’는 협약을 맺어 새로운 실험이 가능했다. 연구 결과 실험학교 졸업생의 대학 만족도와 성취도가 더 높았다. 고교 교육 과정과 대학 입시가 일체화될 때 학교 교육이 성공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는 중장기 교육 발전을 위해 2022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입 제도가 미래 교육의 발전 방향에 걸맞게 혁신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교육 과정과 대학 입시의 고착화된 디커플링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국교위의 시급한 임무다. 현재 국교위는 교육부의 ‘2028 대입 개편안’을 심의 중이다. ‘국가 교육 발전’이라는 큰 틀 안에서 혁신적인 대입 개편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