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인하 시작" 전망 우세…시장에선 미국 3월 인하 가능성까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30일 기준금리를 다시 동결하면서도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조하며 금리 인하 논의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시장은 불안한 경기 상황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분위기 등으로 미뤄 이런 한은의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메시지를 가계부채·부동산 쏠림 등을 막기 위한 일종의 '겁 주기'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유가 등 예기치 못한 변수로 물가가 치솟고 가계부채가 더 뛰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내년 상반기까지 동결 기조가 이어지다가 하반기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 "금리 더 올릴수도" 경고에도…전문가들 "인상사이클 끝나"
◇ 이창용 총재 "금리 인하 가능성 열어두자던 위원, 의견 철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뺀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4명이 3.75%로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7·8월 당시 "6명 모두가 추가 인상 여지를 뒀다"는 발언보다는 매파적 성향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과반수가 3.75%도 염두에 두고 있어 언제라도 기준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 총재는 "10월 회의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낸 금통위원 1명이 해당 의견을 철회했다"고까지 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도 "물가가 당초 전망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금융안정 리스크(위험), 성장 하방 위험, 가계부채 증가 추이, 주요국 통화정책 운용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기·금융 불안에 못 올릴 것…득보다 실이 더 커"
이처럼 금통위는 2월부터 이날까지 7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3.50%의 금리를 10개월째 유지하면서도 내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은 1월 0.25%포인트(p)를 마지막으로 끝났다는 분석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고, 고물가·고금리가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면서 소비·투자가 계속 부진할 것"이라며 "이처럼 경기와 부동산PF 등 금융·자금시장 등이 아직 불안해 한은으로서는 금리를 올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물가 하락 기조가 이어지고, 소비 경기는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부진하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상의 득실을 따졌을 때 물가 안정이라는 득보다 경기 침체라는 실이 더 많다"고 진단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 역시 "국제 유가의 하향 안정으로 추가 긴축 경계감이 약해졌고, 내수 부진과 부동산 PF 등 금융불안 우려 탓에 한은의 추가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국 3월 인하 전망이 동결 앞서…5월은 80%까지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 폭 축소 등으로 시장에서 연준의 추가 긴축 관측이 거의 사라진 점도 '한은 인상 종료'의 근거로 거론된다.

최근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와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현재의 미국 금리가 성장을 둔화시키고 물가 상승률을 목표(2%)까지 낮추는데 좋은 수준이라는 취지의 평가를 잇달아 내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조사에서도 연준이 내년 3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50%)이 동결(48%)을 웃돌고 있다.

내년 5월 회의의 경우 금리 인하 가능성이 80%에 이른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조사를 보면 미국의 12월과 내년 1월 금리 인상 확률이 '0'으로 나온다"며 "그만큼 시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다고 확신한다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릴 이유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며 "따라서 우리(한은)가 추가 인상할 가능성도 없다.

지금 환율 등이 안정된 상태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좁혀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한은 "금리 더 올릴수도" 경고에도…전문가들 "인상사이클 끝나"
◇ "한은, 연준 내린 뒤 내년 3분기 인하 가능성"…2분기 인하 전망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은의 금리 인하가 내년 하반기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 소장은 "연준은 내년 5월이나 6월 인하를 시작할 것 같고, 한은은 미국 인하를 확인한 뒤 7월 정도 낮추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다만 소비지출을 중심으로 미국의 경기가 빠르게 둔화하면 미국의 인하가 5월 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도 "내년 하반기에 연준이 금리 인하를 강하게 시사하거나 실제로 인하할 것"이라며 "따라서 한국도 미국을 따라 하반기에나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관측했다.

조 연구위원은 "미국이 조만간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는 다소 앞서간 것 같고, 내년 중반께나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며 "한은은 그 뒤에 내년 하반기 정도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도 "소비 둔화 속 성장 부진이 가시화되고 그에 따른 물가 안정세도 나타나는 내년 3분기 이후 한은의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부는 내년 2분기 금리 인하나 미국보다 앞선 인하 가능성도 거론했다.

안예하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완화된 물가 우려와 유동성 리스크(위험) 부각 등에 내년 2분기부터 인하할 것"이라며 "한은도 내수 부진과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속에 내년 2분기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상반기 수출 회복에도 불구, 소비 침체 기조가 뚜렷해질 것"이라며 "최근 부동산 경기가 다시 하락하면서 내수 경기 침체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이 경우 한은이 연준의 피벗(통화정책 전환)보다 앞서 7월부터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