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결합증권 헤지 자산 80%가 채권…한은 총재 "점검 결과 영향 적다"
홍콩 H지수 ELS 손실, 증권가는 불완전 판매보다 채권시장 우려(종합)
내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시중은행들의 불완전 판매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증권업계는 채권시장 수급을 우려하고 있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홍콩 H지수 ELS 발행과 운용을 맡고 있지만, 정작 불완전 판매 의혹과는 일제히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불완전 판매는 금융기관이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적합성 원칙(부적합한 상품 권유 금지), 적정성 원칙(상품이 부적합한 경우 그 사실을 고지), 설명의무 등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를 일컫는다.

ELS는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 가격 흐름과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으로, 기초자산 가치가 애초 증권사가 설정한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위험도가 높은 상품으로 분류된다.

특히 홍콩H지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유로스톡스 등과 함께 지수형 ELS의 기초자산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데, 홍콩 증시에 상장된 단 50개 중국 기업을 추려 산출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 규제 등에 따라 변동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편임에도 일부 은행에서는 ELS가 예금 상품보다 더 나은 금리를 기대할 수 있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처럼 둔갑해 판매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취재진에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며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특히 은행과 증권사를 비교하며 "증권사는 노후 자금을 갖고 찾아오는 그런 고객이 없어서 못 판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를 두고 증권업계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증권사는 은행보다 위험투자를 선호하는 성향의 고객이 대부분이고, 실제 투자도 비대면으로 이뤄져 불완전 판매가 일어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요즘엔 대형사들도 ELS를 자체 헤지(위험 회피)하기보다는 백투백(증권사가 개인 고객을 상대로 발행한 파생결합상품과 동일한 조건으로 외국계 증권사와 거래를 맺는 것)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운용단에서 손실이 날 가능성도 낮다"고 부연했다.

특히 이번 홍콩 H지수의 경우 지수가 단기간에 급격히 하락한 것이 아니라 2년여간 꾸준히 우하향해 '반토막'이 난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19 당시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와도 다르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ELS의 헤지 자산에 채권이 대량으로 편입된 만큼, ELS 손실 사태로 향후 채권 매수 여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ELS 등 파생결합증권 발행자금 헤지 자산의 80.9%가 채권이었으며, 채권자산 중 91.5%가 국내 채권이었다.

한 증권사 채권 운용역은 "보통 ELS는 투자했던 고객들이 재투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량의 손실이 발생하고 나면 고객들이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테고, 해당 금액만큼의 채권 수급이 줄어들 수 있다"며 "직접적인 건 아니지만 분명 좋은 영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ELS 채권 자산은 대부분 우량물로 구성돼 있어 시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홍콩 H지수 편입 ELS 문제가) 단기자금시장이나 채권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점검해본 결과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그런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금융 안정의 문제라기보다는 불완전 판매를 통한 금융기관과 소비자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