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여자' 쟈닌 얀센과 동시대에 산다는 것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로드 오브 뮤직’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여자”
얼마 전 애정하고 존경하는 선배가 쟈닌 얀센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녀의 연주가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팩트라 이제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로 쟈닌, 그녀는 정말이지 마법같은 음악가다. 음악의 본질과 그녀의 존재감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며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듣는 이의 뇌를 자극할 때 그 마력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의 연주를 처음 라이브로 들었을 때의 충격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그리고 쟈닌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온몸의 털이 다 서는 것 같은 그 연주를 듣고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홀에서 학교까지 깡총깡총 뛰어 돌아가 밤새도록 연습을 했다. 이런 연주가 있다니! 매 순간이 살아있는 듯한 그녀의 소리는 의도와 즉흥이 자유자재로 배합을 이루며 춤을 추었고,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저녁 쟈닌의 마법에서 풀려나오지 못한 상태다. 전기가 찌릿찌릿 통하는 듯한 그녀의 브리튼 콘체르토,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등 실로 경이로운 수준의 연주 실황이 넘쳐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은 본인이 애정하는 뮤지션들과 시공간을 함께하며 그 순간을 유영하는 실내악 공연에서의 쟈닌이다. 음악가들로 가득한 가정 환경 때문일까, 주변의 사람들과 소리를 통해 소통하는 그녀의 연주는 독주보다도 더 특별한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낼때가 많다.
실내악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특성상 현악사중주처럼 항상 함께 하는 앙상블이 아니고서야 레퍼토리마다 나름의 ‘로드맵'이 존재한다. 많은 이들의 경험상,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하는 것이 가장 괜찮더라'는, 약간의 정해진 공식이 있는것이다. 물론 독주나 협주곡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복합적인 음악의 합을 맞추어 내야 하는 5중주나 6중주의 경우 시간에 쫒겨 별다른 생각 없이 ‘저번에 했던대로’, ‘보통 하는대로’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쟈닌의 앨범들은 모두 나름의 특별함이 있지만, 나는 그녀의 앨범 중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그리고 슈베르트의 첼로5중주가 담겨있는 실내악 앨범을 가장 좋아한다. 정말 본인이 좋아하고 편안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들어 낸 앨범이라서 그런지 이 앨범은 특히나 더 그녀의 목소리가 사적으로 친밀하게 다가온다. 마치 그녀가 바로 내 옆에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시의 내용을 때로는 사근사근, 때로는 한껏 들떠 이야기해 주는 듯 말이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로드맵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해석과 연주를 듣는 이에게 선사한다. 현악 앙상블에서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파워풀한 순간들 부터 마치 공기에 떠다니는 빛의 형상처럼 아련하고 투명한 소리의 색깔이 이야기속의 장면을 너무나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은 상상의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곤 한다. 피부를 스치는 연인의 손길, 그 둘을 감싸는 불길한 환희, 내면의 격정,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밤의 둔탁한 공기까지. 마치 보이지 않던 세계에 빛을 밝히듯 그녀의 연주는 내가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아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음악의 색채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우리에게 가지고 온다. 앙상블은 또 어떤가, 이 앨범은 마치 그녀가 친구들에게 바치는 헌정, 그리고 그 친구들이 그녀에게 바치는 애정어린 눈빛처럼 느껴진다. 마치 소리를 젤타입의 접착제로 발라 놓은듯, 그들은 서로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서로의 흐름에 본인의 소리를 맡긴다. 본인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이라고는 1도 없이 서로에게, 그리고 음악의 메세지에 집중하는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다보면 마치 1초가 한시간인듯, 한시간이 1초인듯 행복감이 밀려온다.
실내악이란 그렇다, 서로에게 가장 진심을 다한 사랑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당연하지 않았던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이들의 연주,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쟈닌.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정수 아닐까.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하나로 지정하려고 들지 않는 열린 마음. 절대로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 새로운 소리의 세상으로 항해해 나가고자 하는 호기심과 끈기가 이 앨범의 중심을 이룬다.
나는 한껏 취해 이 앨범을 이리 편하게 듣고 있지만, 이런 해석과 소리를 발견해 내기 위해 그녀가 했어야 했을 고심과 실험, 그리고 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찔끔 난다. 더 나아가 음악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다듬을 것을 다짐하게 되니 이 앨범은 엄청난 힘을 가진, 세기의 앨범이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쟈닌 얀센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얼마전 한국에도 왔다 갔던 그녀의 연주를 아쉽게 놓치게 되어 슬프지만, 앞으로도 그녀가 건강히, 행복하게 연주하는 음악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그녀만의 에너지를 전달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얼마 전 애정하고 존경하는 선배가 쟈닌 얀센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녀의 연주가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팩트라 이제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로 쟈닌, 그녀는 정말이지 마법같은 음악가다. 음악의 본질과 그녀의 존재감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며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듣는 이의 뇌를 자극할 때 그 마력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의 연주를 처음 라이브로 들었을 때의 충격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그리고 쟈닌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온몸의 털이 다 서는 것 같은 그 연주를 듣고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홀에서 학교까지 깡총깡총 뛰어 돌아가 밤새도록 연습을 했다. 이런 연주가 있다니! 매 순간이 살아있는 듯한 그녀의 소리는 의도와 즉흥이 자유자재로 배합을 이루며 춤을 추었고,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저녁 쟈닌의 마법에서 풀려나오지 못한 상태다. 전기가 찌릿찌릿 통하는 듯한 그녀의 브리튼 콘체르토,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등 실로 경이로운 수준의 연주 실황이 넘쳐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은 본인이 애정하는 뮤지션들과 시공간을 함께하며 그 순간을 유영하는 실내악 공연에서의 쟈닌이다. 음악가들로 가득한 가정 환경 때문일까, 주변의 사람들과 소리를 통해 소통하는 그녀의 연주는 독주보다도 더 특별한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낼때가 많다.
실내악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특성상 현악사중주처럼 항상 함께 하는 앙상블이 아니고서야 레퍼토리마다 나름의 ‘로드맵'이 존재한다. 많은 이들의 경험상,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하는 것이 가장 괜찮더라'는, 약간의 정해진 공식이 있는것이다. 물론 독주나 협주곡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복합적인 음악의 합을 맞추어 내야 하는 5중주나 6중주의 경우 시간에 쫒겨 별다른 생각 없이 ‘저번에 했던대로’, ‘보통 하는대로’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쟈닌의 앨범들은 모두 나름의 특별함이 있지만, 나는 그녀의 앨범 중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그리고 슈베르트의 첼로5중주가 담겨있는 실내악 앨범을 가장 좋아한다. 정말 본인이 좋아하고 편안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들어 낸 앨범이라서 그런지 이 앨범은 특히나 더 그녀의 목소리가 사적으로 친밀하게 다가온다. 마치 그녀가 바로 내 옆에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시의 내용을 때로는 사근사근, 때로는 한껏 들떠 이야기해 주는 듯 말이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로드맵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해석과 연주를 듣는 이에게 선사한다. 현악 앙상블에서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파워풀한 순간들 부터 마치 공기에 떠다니는 빛의 형상처럼 아련하고 투명한 소리의 색깔이 이야기속의 장면을 너무나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은 상상의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곤 한다. 피부를 스치는 연인의 손길, 그 둘을 감싸는 불길한 환희, 내면의 격정,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밤의 둔탁한 공기까지. 마치 보이지 않던 세계에 빛을 밝히듯 그녀의 연주는 내가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아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음악의 색채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우리에게 가지고 온다. 앙상블은 또 어떤가, 이 앨범은 마치 그녀가 친구들에게 바치는 헌정, 그리고 그 친구들이 그녀에게 바치는 애정어린 눈빛처럼 느껴진다. 마치 소리를 젤타입의 접착제로 발라 놓은듯, 그들은 서로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서로의 흐름에 본인의 소리를 맡긴다. 본인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이라고는 1도 없이 서로에게, 그리고 음악의 메세지에 집중하는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다보면 마치 1초가 한시간인듯, 한시간이 1초인듯 행복감이 밀려온다.
실내악이란 그렇다, 서로에게 가장 진심을 다한 사랑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당연하지 않았던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이들의 연주,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쟈닌.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정수 아닐까.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하나로 지정하려고 들지 않는 열린 마음. 절대로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 새로운 소리의 세상으로 항해해 나가고자 하는 호기심과 끈기가 이 앨범의 중심을 이룬다.
나는 한껏 취해 이 앨범을 이리 편하게 듣고 있지만, 이런 해석과 소리를 발견해 내기 위해 그녀가 했어야 했을 고심과 실험, 그리고 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찔끔 난다. 더 나아가 음악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다듬을 것을 다짐하게 되니 이 앨범은 엄청난 힘을 가진, 세기의 앨범이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쟈닌 얀센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얼마전 한국에도 왔다 갔던 그녀의 연주를 아쉽게 놓치게 되어 슬프지만, 앞으로도 그녀가 건강히, 행복하게 연주하는 음악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그녀만의 에너지를 전달해주길 간절히 바란다.